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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이병현 Jun 11. 2019

'오타쿠컬쳐의 대항문화적 기능성'을 찾아서?

{좀비 사회학}(2018), 후지타 나오야

이 책에는 결정적인 한 가지가 빠져있다. 정말 기묘하게도 책에서 '페미니즘'이라는 가늠좌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작가가 페미니즘에 대해 모르나? 접할 기회가 없었나? 니키 드 생팔 전도 봤다고 하고 크리스테바도 인용하는 걸 보면, 전혀 무지한 건 아니다. 단지 그걸 자기가 분석하고 있는 대상인 일본 오타쿠 컬쳐에는 제대로 적용시키지 않을 뿐이지. 나는 그 이유가 궁금하다. 하이스쿨 DxD인지 뭐시긴지 하는 라이트노벨들이 소프트 포르노라는 건 알면서도, 여전히 그 소프트 포르노와 하등 다를 것 없는 미소녀 좀비니 마법소녀물이니 하는 괴상망측한 여성혐오 작품들에서도 기어코 '가능성'의 내핵인지 중심인지를 찾아내려는 집착이 무시무시할 지경이다. 왜 미국은 모든 걸 좀비로 만들고 일본은 모든 걸 모에화 해서 미소녀(여기에 괄호 치고 '미소년'을 넣는 건 스스로도 민망하지 않았나? 애당초 소년소남이 아니라 소년소녀라는 것부터가 한일 양국의 일상어휘에까지 스며든 여성혐오의 진수 중 하나다.)로 만드는지, 정말 모르나?


그건 다름이 아니라 일본이 여혐국가이기 때문이지 다른 게 아니다. 오타쿠 컬쳐에 무슨 대항문화로서의 가능성을 부여하려는 책의 결론이자 목표 자체가 황당무계하다. 그렇다고 그 과정에 무슨 색다른 인사이트가 있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다만, 마치 그 옛날 포스트모더니즘이 유행하던 시절, '원조교제 소녀'나 '빨간 마후라 사건', 'O양 비디오 사건' 등에서 청소년(혹은 여성)의 성적 자기주체성인지 나발인지를 기어코 찾아내어 성적 자유주의라는 '사이비 해방'의 나발을 불어대던 역겨운 논평들이 떠오를 지경이다. 실상은 이런 오타쿠문화나 몇몇 사건들에서 찾을 수 있는 건 극도로 심각한 여성혐오 뿐이며, 거기에 무슨 문화적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면 오직 '강간문화'로서의 가능성이 있을 따름이다. 평론가라는 그럴듯한 직함을 달고 논리적 곡예를 부리면 합리화 할 수 없고 가능성을 찾아내지 못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그렇게 하다하다 보면 여성할례나 명예살인에 대해서도 합리화가 가능해질 수 있을 것이고, 실제로 {이슬람과 페미니즘}이라는 책에서 비판하는 것 중 하나가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적 교설들이다. 이런 교설들이 실제로 현실을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끼칠 악영향을 고려하면 이따위 교설들에 단호히 아니라고 말해야만 한다.


"O양은 포르노의 페미니즘적 기능성에 대한 선구자가 되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조흡 씨의 결론은 광주항쟁을 보면서 우리 군의 시가전 능력을 검증 할 수 있었다는 의의를 찾자는 것과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습니다(감점적으로 격한 상태라 제 비유가 지나치게 비약적임은 인정합니다만, 다른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 SASAS. (2000). 조흡님의 'O양 비디오'관련 글을 비판하며. 인물과사상, (), 157-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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