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이병현 Jan 05. 2019

2018 영화 결산

연말에 베스트 영화 목록을 작성하는 건 즐거운 일이지만, 나는 그것을 어디까지나 은밀한 즐거움으로 남겨두려 한다. KMDB 사사로운 리스트를 읽으나 씨네21 리스트를 읽으나 납득이 가지 않기는 매한가지고, 외국 잡지 리스트를 봐도 마찬가지다. 줄 세우기 놀이는 역시 개인적으로나, 혹은 지인들끼리나 해야한다. 이런 식으로 영화들이 정전화 되는 것도 불만이다. 정전의 가치를 아예 무시하자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의 카논이 내게 큰 울림을 주진 못한다.


그래서 나는 연말에 베스트 영화 대신 베스트 영화평론을 꼽아보려 했다. 문제는 기억에 남는 글이 없다는 거다.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글은 내가 쓴 글인데, 퇴고를 하느라 하도 많이 읽어서 그런지 원고를 잃어버려도 거의 비슷하게 다시 써서 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뻔뻔하게 내 글을 2018년의 베스트 영화평론으로 꼽자니,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있다. 부산일보에 신춘문예 당선작이 발표되고 지난 3일 간 검색을 열심해 했는데, 말 그대로 아무런 반응도 없더라. 작가와 작가의 지인과 심사위원 말고는 아무도 읽지 않은 글을 그 해의 베스트 글로 뽑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예상은 했지만 허탈한 일이었다. 유운성 평론가가 몇년 전에 썼던 글이 떠오른다.

"이 잡지 덕택에 나는 「뤼미에르 은하의 가장자리에서」처럼 어떤 영화잡지도 용납하지 않았을 형식의 연재글을 자유롭게, 하지만 어느 정도는 망명자의 심정으로 쓸 수 있었다. 이 잡지에 실린 글을 읽었다는 작가나 미술비평가, 큐레이터는 가끔 만난 적이 있지만 영화감독이나 영화비평가는 거의 본 적이 없다."

(비평에 관한 두 개의 글: https://annual-parallax.blogspot.com/2015/05/critique.html)

3년 후에도 이런 말을 하는 걸 보면, 상황은 변함이 없는 모양이다.

"제가 알고 지내던 혹은 알고 있던 동료들 후배들, ‘영화 평론가들이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이어서 답할 수 있겠습니다. 요컨대 냉소적으로 말하면 평론가의 역할은 ‘진행자’ 죠. 영화가 개봉하면 씨네토크 진행, 감독과의 대화 진행, 영화제 하면 모더레이터 진행자 혹은 TV 프로그램의 영화 해설 진행… 활발히 활동하는 분들도 글을 쓰는 빈도수보다 진행자로 활동하는 빈도수가 더 많다고 보여요. 사실 진행자는 조금 부드러운 표현이고요. 간접적으로 수입사와 배급사의 지원을 받는 홍보 요원이라고 봐야하죠. 마음이 아프지만. (…) 반면 영화 쪽에서, 제가 어떤 감독과 십 년 넘게 이 분의 작업이 나올 때 대담을 한 적도 있고 이 분의 작업도 봤지만, 이 분은 10년 넘게 제 글을 읽은게 한 개도 없어요. 가끔 제가 어디서 강연을 할 때 들으러 오신적은 있지만 제 글은 읽어본 적이 없고 본인 작업에 대해 쓴 것만 읽어 보셨다고 해요. 어떻게 보면, 이런 현상이 강화되다 보면서 감독들은 점점 정말 평론가를 ‘진행자’로 인지해요. 전 그게 좀 불편했거든요. 뉴스캐스터나 방송인이 하면 될 일을 왜 평론가가 할까. 이는 대담은 아니죠. 왜냐면 이 분은 내가 물어보면 답변해주는 위치고, 이 분은 나에게 궁금한 게 없고. 제가 뭐 하는 사람인지, 심지어 어떨 때는 여기 앉아있는 사람이 평론가라는 것 조차 모를 때도 있어요. 영화계는 좀 극단적인 경우지만 다른 영역도 크게 차이는 없다고 봐요. (…) 이 정도 크기라면 한 비평에 대해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몇몇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헛소리 퇴치자’랄까요. 누군가가 ‘아니다’라는 얘기를 할 때, 하나하나 캐물어서 비판을 해주는 거죠. 이정도 씬의 크기라면 그런 사람이 있기 마련인데 아시다시피 ‘우리끼리 왜 이래’ 그런 문화가 있기도 하니까요. 특히 같은 영역 안에 있는 동료들이 얘기해주는 것이 중요한데, 내부에서도 잘 안 돼요. 쉽지 않죠. 사실 오큘로 내에서도 자유롭게 나오지 않거든요. 그래서 4호 때는 제가 비판을 하기도 했어요. 분야를 막론하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요컨대 ‘예리하게 지적할 수 있는 비평가’가 필요한 거죠. 그래서 동료들끼리도 서로 눈치를 보고 긴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 영상예술'人'을 만나다 : [OKULO] 유운성 영화평론가 _Interview, http://aliceon.tistory.com/2902)


유운성 평론가의 글을 읽고 반성하게 됐다. 내 글을 아무도 읽지 않았듯이, 나 또한 지난 1년 동안 남의 평론을 많이 읽어보지 않았다. 듀나(http://www.djuna.kr/xe/review), 김혜리(http://www.cine21.com/db/mag/news_section/?section=005003032)의 글을 자주 찾아 읽었지만, 두 사람의 글은 내게 비판을 불러일으키는 류의 글은 아니다. KMDB 영화글 코너(https://www.kmdb.or.kr/story/main)에 올라오는 글들엔 거의 아무런 흥미를 느끼지 못하겠고, 씨네21의 평론 코너(http://www.cine21.com/news/list/?idx=6)는 무언가 영화잡지로서의 의무방어전 느낌이다. 필로Filo는 창간호를 읽고 크게 실망한 나머지 아예 돌아보지 않았고, 오큘로Okulo는 최근 호를 막 사서 읽어봤을 뿐이라 뭐라 덧붙일 말이 없다. 영화웹진 리버스(http://reversemedia.co.kr/)는 KMDB 영화글 코너, 혹은 씨네21에서 연예잡지 느낌을 더 뺀 정도로만 다가온다. 유튜브나 팟캐스트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다. 글로 읽으면 될 걸 왜 듣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다 들어봤자 들으나마나 한 얘기들인 경우가 태반이고. 그밖에 곳곳에 흩어진 영화평론들은 내가 게으른 탓에 그런지 굳이 찾아가서 읽을 생각은 들지 않더라. 아마 구태여 찾아가서 읽었는데 또 다시 '그저 그런 글이구나', 하고 실망하고 싶지 않아서 방어적 태도로 일관하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 평론에 아무 감상이 없는 것도 같은 이유겠지 싶다. 나도 이전까지 씨네21 당선작이면 몰라도 부산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 당선작을 찾아서 읽은 적은 없었으니까. 내가 거기에 투고를 하게 되기 전까지는. 게다가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 당선자들이 당선작 이후로 무슨 활동을 하는지도 알 길이 없단 말이다. 2017년 부산일보 당선자는 브런치에 글 세 편을 남긴 채 종적이 묘연한데(물론 현실에서는 잘 살고 계시겠지만), 자꾸만 거기에 내 미래를 겹쳐보게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이유로 내가 감히 '헛소리 퇴치자'를 자처할 생각은 없다. 갓 등단한 이로서 겸손치레를 하려는 의도가 아니고, 앞서 말했다시피 제대로 읽어본 평론이 없어서다. 2019년에는 사정이 허락하는 한 남의 평론도 열심히 읽어봐야겠다. 2019년 영화평론 결산은 지금처럼 곁가지만 치는 글이 아닌, 핵심을 찌르는 글이 되길!

매거진의 이전글 하스미 시게히코에 대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