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호, 북 스마트, 어카운턴트 등
<승리호>, 용가리의 유지를 이어받아
'당신에게 있어 가장 첫번째 기억을 떠올려보라'는 질문을 좋아한다. 이걸 떠올리다보면 기억이 작동하는 방식이라는 것이 서랍에 들어있는 박제된 무언가를 그대로 꺼내와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매번 재구성해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종종 이 질문을 '당신이 본 첫번째 영화의 기억'으로 변화시켜 (셀프로) 물어보길 즐기는데, 가끔씩 여기에 대한 대답은 <용가리>가 된다. 개봉일에 봤던 것인지 재개봉일에 봤던 것인지는 불분명하지만, 나이를 고려해보면 아마도 재개봉일에 봤을 것이라 추측한다. 2001년이면 벌써 20년 전이다. <응답하라 2001> 시리즈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시간이 지난 것이다.
이상하게도 내게 이 용가리의 기억은 영화에 대한 것이 아니라, 극장에 들어가며 봤던 용가리 포스터에 대한 것에 더 가깝다. 그리고 최근 넷플릭스로 <승리호>를 보면서 나는 이제 꽤 많은 이들에게 '첫번째 영화의 기억'이 더 이상 '극장의 기억'이 아니게 되리란 사실을 실감했다. 이렇듯 많은 것이 변했지만 변하지 않는 한 가지는 재미없는 영화는 스크린으로 보나 모니터로 보나 매한가지로 재미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래픽 기술에 대해서는 정말 놀랐다. 처참한 내용물을 대충 얼버무리는 듯한 필사적인 포장이 굉장히 인상적이라고나 할까.
일찍이 <아바타>를 보고서 오시이 마모루는 역시 할리우드의 CG는 쫓아갈 수가 없다며 '패배 선언'을 한 바 있다. 나는 그걸 보고 상당히 황당했는데, 이번에 <승리호>를 보면서는 정말로 안타까운 마음을 느꼈다.'아, 우리도 오시이 마모루처럼 진작에 패배선언을 했어야 하는 건데. 이제 CG 핑계도 못 대고 창피해서 어떡하나' 싶어서.
넷플릭스에 팔아서 제작비 건진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겠다. 어찌됐건 "<쥬라기 공원> 한 편이 벌어들인 수익이 현대자동차 1년 수익과 맞먹는다" 운운하며 시작된 <용가리>의 유지는 <승리호>가 잘 이어받았다고 생각하자. 돌고돌아 외화벌이는 제대로 한 셈이다.
<북 스마트>
범생이, 헛똑똑이, 이렇게 번역해도 될 걸 굳이 <북 스마트>라고 음차하는 이런 트렌드는 대체 언제쯤 끝날 것인가? 이쯤되면 차라리 오역해도 좋으니 제발 영화 제목을 번역을 좀 했으면 좋겠다. 보기 괴로운 트렌드다.
영화는 정말로 즐거웠다. <레이디 버드>를 2018년 연초에 보며 즐겁게 한해를 시작했던 기억이 있는데, 오랜만에 연초부터 즐거운 영화로 시작했다. 극장에 간 것도 정말 오랜만이고.
자기가 은근히 내려다보던 아이들이 알고 보니 자기랑 똑같이 명문대에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 영화는 슬슬 '한 여름밤의 꿈'처럼 몽환적인 상태에 접어드는데, 균형이 절묘하다.
<어카운턴트>
벤 에플렉은 꼴보기가 싫지만 그냥 머리 비우고 액션영화 보고 싶어서 봤는데, 깜짝 놀랐다. 감독 이름을 찾아봤을 정도. 필모그래피에서 <워리어>라는 제목은 친숙한데 한번 챙겨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인 갓 어 건>도 흥미로워 보이고.(티빙, 네이버 시리즈온, 카카오페이지, 유튜브 영화 등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은데, 네이버 영화는 시리즈온만 링크하고 다음 영화는 카카오페이지만 링크하는 건 그렇다 쳐도 왓챠피디아는 왜 티빙만 링크하는 걸까? 스트리밍 서비스만 표기하지 말고 네이버랑 카카오페이지, 유튜브 영화 같은 개별 결제 가능한 사이트도 링크해주면 한결 보기 편할 텐데. 어차피 경쟁사인 넷플릭스 링크도 다 걸어주는 마당에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 같진 않고)
<비밀의 숲 2>
시즌1도 이랬는진 기억이 안 나는데 초장부터 너무 '우연'이 많지 않나? 잘 집중이 안 돼서 마저 못 봤다.
<삼진그룹 영어 토익반>
기대했던 것에 비해 별로였다.
<삼겹살 랩소디>
KBS 다큐멘터리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 만들었다.
<지.아이.제인>
이 영화를 뭐라고 평가해야 할지.
<국가부도의 날>
악역을 그리는 방식이 터무니없다. 권선징악 동화가 아니라면 이런 악역 캐릭터는 만들지말자.
<화씨 11/9: 트럼프의 시대>
뒤늦은 타이밍에 봐서 그런지 엄청난 호들갑으로 느껴진다.
<어 퓨 굿 맨>
낭비가 없는 헐리웃 법정물.
<서바이벌 패밀리>
재난영화에서 이런 무방비한 캐릭터들이 살아남는다는 건 장르에 대한 모욕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화가 났다. 마치 호러영화에서 일행들과 떨어져 혼자 오줌을 누러간 사람이 최후의 생존자가 되는 결말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고생을 하긴 한다)
대담한 설정으로 시작하는 SF물인데, 일본이라는 사회를 두고 벌이는 사고실험이 그럴 듯해서 웃었다. 눈 먼 노인들이 나오는 터널 장면 같은 기억에 남는 장면들도 있고. 야구치 시노부는 보수적이지만 따뜻하면서도 유머러스한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이고 기대를 잘 충족시키는 편이다.
<소울>
즐겁게 보긴 했다만 왜 하필 주인공이 이런 행운을 가져야만 했는지 잘 모르겠다. 정말 임의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인물이 어떤 특정 작품의 주인공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여러 가지 행운을 받아도 되나?
픽사 작품 중에선 <인사이드 아웃>과 비슷한 류인 것 같은데, 그것보다는 훨씬 거부감이 덜했다. 인사이드 아웃은 한 인간의 내면을 무슨 공식처럼 추상화시켜서 거대한 세계처럼 확장시킨다는 것이 무슨 얼치기 우화 같아서 이상했는데, 이 작품에서 그리는 사후세계와 생전세계는 그래도 납득이 갔다. 어차피 설정상 얼마든지 거창하게 만들건, 어떤 방식으로 추상화해서 지어내건 상관없는 가상세계니까. 그 가상세계에서 만나는 배를 타고 다니는 조력자들(무슨 뉴에이지 추종자들인지 히피들인지 잘 모를 양반들)이 왜 거진 영어를 쓰는 인간들인지는 잘 모르겠다만.
뉴욕에 사는 그래도 살만한 사람이 아니라 딱히 살만하지 않은 사람이 같은 '행운'을 받게 됐다면, "역시 인생의 모든 순간순간은 소중한 거야" 이런 '교훈'을 얻을 수 있었겠냐고. 더 말할 것도 없이 '22'가 과연 '조'처럼 '살만한 환경'에서 태어나 자라나게 될지 불안해지지 않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같은 책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확률적으로 "그래도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삶을 살게 될 확률은 많이 봐줘도 반반인데.
제발 '22'가 좋아하는 피자를 실컷 먹으며 살 수 있는 환경에서 태어났길 기원해본다.
이래저래 캘리포니아에 있는 픽사 스튜디오에서 따사로운 햇살 받으며 한가롭게 떠올렸을 법한 이야기라 괜히 트집을 잡고 싶어진다.(구글 이미지 검색창에 픽사 스튜디오를 쳐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