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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평론가 이병현 Dec 19. 2022

슈뢰딩거의 클레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에 대한 메모

여러 개의 장으로 촘촘히 나뉜 이 영화는 비록 자막으로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주인공이 가발을 벗기 전후를 기점으로 해 크게 1부와 2부로 구분된다. 1부에서는 매니저와 연인, 음악 친구가 등장하고, 2부에서는 어릴 적의 친구와 낯선 남자가 등장한다.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주인공이 걸린 병에 관한 것인데, 1부에서는 타로카드 점을 통해 ‘저주에 걸렸다’고 묘사되며 몹시 불길한 암시가 깔리지만, 2부에서는 막상 의사를 찾아가니 2주면 치료된다며 가볍게 해소되어버린다.


누구나 눈치챌 수 있을 법한 이 영화의 특징은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든다는 것이다. 1부와 2부를 가르는 기점이 검은 커튼을 확 제끼는 식으로 제시되는 것처럼, 이 모든 장면들이 다 뻔뻔하게 등장한다. 타로카드를 보여주는 장면에서 흑백과 컬러의 경계를 넘나들고, 계단을 내려올 때 시간이 반복되는 것, 카페에서 대화를 나눌 때 자연스럽게 뒤편에 있는 연인의 대화로 프레임의 초점이 변화하며 사운드가 집중되는 등등. 눈에 띄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이는 아마도 1부와 2부의 차이를 가르는 것 같기도 하다. 가설적으로 말해보자면, 운명론과 우연의 차이, 영화적으로는 고전과 모던을 가르는 차이가 아닐까? 역설적인 것은 상대적으로 2부보다 1부에 앞서 언급한 뻔뻔한 기법들이 주로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마치 영화를 안에서 무너뜨리기 위한 씨앗을 미리 심어두는 것처럼.


이런 형식에 대한 가설은 내용적으로도 얼추 뒷받침되는데, 타로카드로 점친 내용이 모두 들어맞는다는 것은 굉장히 운명론적인 세계관으로 보일 수 있지만(직업, 연애에 관한 것들), 사실 영화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자세히 뜯어보면 대단히 우연적이다. 그이가 나를 사랑할까, 하지 않을까를 점치는 것, 고양이와 깨진 거울 등의 온갖 징크스들 역시 언뜻 운명론적인 행위지만, 한편으로는 순전히 우연에 기대어 행운과 불운을 점치는 행위이기도 하다. 초기 관측 지점에 따라 이렇게도 저렇게도 보일 수 있는 불확정적 상태에 클레오는 놓여있다. 영화의 모던한 지점은 여기서 시작되는 것 같다. 타로카드가 점친 내용 중 유일하게 틀리는 것이 바로 병에 대한 불길한 암시다. 이것은 결말에 가서야 ‘틀렸다’고 확정되는 내용인데, 이 운명이 빗겨나게 되는 원인은 아마도 우연한 만남에 의한 클레오의 결심일 것이다. 클레오가 가발을 벗지 않고, 거리로 나서지 않고, 공원을 산책하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검사 결과는 안 좋게 나왔으리란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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