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평론가 이병현 May 08. 2024

제25회 전주영화제 후기

<새벽의 모든>

엑스트라 활용을 참 잘한다. 덕분에 외화면을 상상하게 돼서 세계가 더 리얼하게 보이도록 만든다.

이야기 자체는 평범한 '힐링물' 수준인데, 일본 흥행 성적이 좋지 않아 약간 낙심했을 듯하다.


<그녀는 코난>

스틸샷 보고 상상한 것과는 달리 허접한 B급 느낌은 아니었다.

탐미주의적인 경향인데 그런 것치고는 또 서사 구조가 어렵지도 않다.

<야만인 코난> 팬이 봐도 동인지 느낌으로 좋아할 것 같다.


<악이 도사리고 있을 때>

아르헨티나 호러 영화. 설정이 시리즈물을 노린 듯한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악령의 존재를 모든 이가 알고 있고 정부가 보내는 전문 처리인이 따로 있다니 상당히 참신하지 않나 싶다. 대개는 아무것도 모르다가 당하는 걸로 초반 동력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설정을 갖고도 초반에 긴장감을 유지하는 걸 보면 상당한 호러 공력이 느껴진다.

주인공의 자폐증 아들이 무언가 더 역할을 할 줄 알았는데, 마지막 장면의 섬뜩함이 나쁘진 않았지만 약간 아쉬운 감이 있다.

보는 내내 전주가 아닌 부천에 있나 싶었다.


<곤돌라>

대사가 없는 영화인 걸 모르고 봤다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게 이미 정보를 아는 상태에서 봤다.

초반에 관이 지나갈 때 말 없느 모자를 벗는다든가 하는 제스처만으로 경의를 표하는 방식은 좋았다. 음악이 반복되며 점점 더 점입가경으로 향하는 코미디도 좋았고.

동화 같은 결말이 갑작스러워서 아쉽긴 한데(악역이 서있는 위치가 너무 인위적이지 않나?), 전반적으로 소품에 가까운 분위기였던지라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게르니카 앞에서>

꾸벅꾸벅 졸면서 봤다.


<데이비 스트리트의 창녀들>

이 영화를 두고 '성노동 비범죄화'를 지지하는 측에서 호의적으로 쓴 리뷰도 봤는데, 영화 자체가 그런 결론을 유도하고 있는 걸로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인터뷰이의 과거사와 미성년자 성판매에 반대한다는 그들의 입장을 듣고 있자면 '노르딕 모델' 지지자 측에서도 얼마든지 그런 쪽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건 다시 말해서 영화가 당사자의 이야기를 어느 특정 담론에 경도되지 않고 깊이있게 담아냈다는 뜻이기도 하다. 특히 여성과 트랜스젠더 여성이 길거리에서 공생하는 관계를 설명하는 대목과 '데이비 스트리트에 포주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나름의 철학을 설파하는 대목은 이들이 이곳에서 잠시 만들어낸 공동체를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주는 훌륭한 장면이다.


<사담 후세인 숨기기>

일단 소재 자체가 흥미롭다. 사담 후세인을 숨겨줬던 사람을 직접 인터뷰 하다니, 썰만 2시간 들어도 당연히 재미있지 않겠는가? 살면서 어떻게 이런 사람을 만나볼 수 있겠는가?

영화는 실제로 그렇게 한다. 자료화면과 재연영상이 삽입되기는 하지만 사담 후세인을 숨겨줬던 농부 이야기만 계속 듣는다. 단순한 아이디어지만, 말했다시피 소재 자체가 강력해서 아이디어 하나로만 밀어붙여서 성립되는 다큐였다.

"사담 후세인이 복권하면 가장 가까운 측근, 오른팔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했다"라고 말하는 등, 상당히 진솔한 태도를 보여줘서 (그리고 딱히 거짓말 할 이유도 없어 보여서) 후세인과 관련된 다른 증언에도 신빙성이 있지 않을까 상상하게 됐다. 영어로는 내내 'master'라고 번역되는 호칭 문제를 생각해보면, 다큐 주인공 입장에서는 충분히 상황을 그렇게(자신과 후세인이 가족처럼 가까운 사이가 됐다고) 해석할 수 있겠단 추정도 가능하고.

특히 "솔직히 말해서 그때 사담 후세인은 나 없으면 아무 것도 못했어요"라고 머뭇거리며 얘기하는 대목은 흥미롭다. 아마 그 시점부터 "나는 폭탄이야"라는 협박 탓에 마지못해 숨겨주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인간적 친밀함을 느끼기 시작한 것 아닐까.

어찌됐건 권력자였던 시절 측근이었던 사람과 친척 모두 거부하는 상황에서 끝까지 숨겨주기로 결정한 데에는, 이런 복잡미묘한 감정까지 같이 작용했을 것이다. 단순한 협박이나 혹은 이미 꿰어버린 첫 단추 탓에 흘러간 관성적 상황이나 농부의 전통 같은 걸 넘어선, 무언가 인간적 연민 같은 것.


<야닉>

길게 가면 안 될 소재인데 짧은 러닝타임으로 끊어낸 게 좋다.

아무리 코미디라지만 설정이 우격다짐 격인데, 결말에 무장경찰을 등장시키며 '그래 결국 개입하긴 하는구나' 싶어서 '아니 그래도 너무 억지 아닌가' 싶었던 중간 부분(프린터기 가져다 주는 부분이나 '그냥 튀면 되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었던 무수한 순간)을 그냥저냥 잊게 만드는 것도 좋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자신이 쓴 극본이 상연되는 무대와 웃음을 터뜨리는 객석을 번갈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얼굴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이다.


<할리우드 게이트>

제약이 상당한 걸 감안해야겠지만 소재가 구미를 당기는 것에 비해 막상 그렇게 흥미진진한 내용은 아니다.

다만 열병식 자리에서 '자살폭탄 테러 부대가 행진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오토바이 탄 허름한 부대가 지나가는 초현실적인 장면 같은 게 상당히 많아서 어안이 벙벙해지긴 한다.


<코파 1971>

정말 여러가지 조건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발생한 '평행우주' 같은 사건을 다뤘는데, 11만 관중(성인 남성이 대부분인!)이 여자 축구를 보며 내지르는 웅장한 함성이 극장에 울려퍼질 땐 역설적으로 '월드컵을 비롯한 국가 대항전이 얼마나 남성에게 '뽕'을 채워주는 거대한 남성주의(가부장제) 프로파간다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부장제와 국가주의는 세트로 묶이는 경향이 있는데, 실은 영화 속 선수들처럼 딱히 국가주의(어떤 원초적인 애국심, 소속감 같은 것)를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가부장제의 피해자가 되어버리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서 (영화에선 FIFA로 대변되는) 남성이란 종족은 국가주의보다도 가부장제를 더 큰 원칙으로 삼고 있다는 걸 영화는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덴마크 선수가 말했듯이, 구태여 여자 축구를 탄압하는 건 단순한 국가주의적 사고방식만으로는 딱히 '이해가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얘기가 길어지는데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정리해보자면,

상업적인 의도로 시작해, 여성혐오적 마케팅을 퍼부어 이룩한 단기 이벤트가 여자축구 선수 당사자들에겐 뭐랄까…'미리 보는 여성해방 유토피아' 같은 걸로 작용했다는 아이러니가 이 영화의 핵심인 것처럼,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국가주의에 편승하는 방식으로라도 여성인권 신장을 이룩하려는 그런 전략이 있는 것도 어느 면에서는 이해가 간다는 소리다. 그건 역설적으로 국가보다도 여성을 최우선 가치로 두는, 평행우주 속 지구인의 사고방식을 지닌 자들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틴 루터 킹의 연설엔 대중의 함성이 아주 크게 들리는 버전도 찾아볼 수 있다. 어마어마한 소리라서 연설 소리가 파묻힐 수준인데, 군중이 모여 내지르는 소리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초월적 경험을 시켜주는 본능적인 체험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마치 그 함성을 내지르고 들으며 사람들이 느꼈을 기분을 이 다큐를 통해 대리로 느꼈다고나 할까.

https://www.youtube.com/watch?v=8TbLOX7Gi0A


참고로 위 영상에서 "미국이 위대한 나라가 되려면 이것(=인종차별 철폐)은 현실이 되어야 됩니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위대한 미국'이라는 대의를 흑인해방이라는 급진적 아이디어와 결합시키는 훌륭한 연설 스킬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걸 '국가주의에 대한 투신'으로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금강경>

행자 연작 중에선 이게 제일 좋았다. 나는 누군가 천천히 뭔가를 하는 걸 보고 있으면 덩달아 몸이 꼬이는 사람인데, 이 단편이 가장 고통스러운 체험이었다. 중간에 카메라가 잡는 대상이 밥솥으로 바뀌는 것도 좋았고.


<물 위 걷기>

진짜 참을 수가 없어서 자버렸다.


<무무면>

지하철의 움직임을 이렇게 절묘하게 포착한 건 처음 본다.


<고코구 신사의 고양이들>

작은 이야기이지만 보편적이다, 라는 말이 찬사로 쓰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의 경우엔 작은 이야기라서 특별하다, 라고 칭찬하는 편이 맞겠다. 보편적이 되려는 의도가 전혀 없이 한 시골마을만 차분히 담아냈기 때문이다. 물론 '보편적 해석'을 얼마든지 할 수 있겠지만, 이 신사를 이렇게 담아낸 것만으로 나는 가치가 있다고 본다.


<룸 999>

진짜 이런저런 말을 많이 들었고, 가장 내 생각과 비슷한 건 우디 앨런과 잉마르 베리만이 한 말을 언급하며 "영화는 언제나 더 나빠지기만 했다. 그래서 나에게 영화의 죽음이란 질문은 별로 진지하게 여겨지지 않는다."라는 대답이지만, 결국 다 보고 나서 기억에 남는 건 선글라스 끼고 춤 춘 사람 뿐이다.

춤 춘 사람 전략이 맞아떨어져서 약간 분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대신 나도 이름 대신 갑자기 웃통 까고 옷 갈아입더니 선글라스 끼고 춤춘 사람이라고만 쓰는 걸로 불만을 표시해보겠다.


<샹탈 아커만이 카메라로 본 첫 번째 시선>

왜 평전이나 위인전 같은 걸 보면 지인과 주고 받은 사소한 편지부터 시작해서 일기장까지 샅샅이 뒤져서 한 인물을 난도질 하지 않는가? 이처럼 유명인의 숙명이란 입학시험을 위해 만든 영화까지 죄다 대중에 공개되어버리는 것이다.


<비바 바르다!>

바르다의 셀프 브랜딩 전략을 지적하는 다큐멘터리는 처음 본다. 드미의 사랑을 신화화 했다는 대목까지 포함해서.

그래도 제목 치고는 대상을 냉정하게 다루려 노력했다는 증거 아닐까.


<블랙 베리>

전형적인 상업영화라 '전주다운' 느낌은 아니었는데, 잘 만든 영화다. 시나리오나 캐릭터도 (실화 기반이지만) 전형성을 빗겨가는 면이 있고, "이 방에 사나이만 남을 때까지!"라는 대사가 나올 때 여성을 클로즈업 하는 등 능수능한하게 카메라를 다루는 솜씨도 좋다. 이런 코미디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할머니 DJ 비카!>

다큐를 찍은 사람과 이걸 가장 큰 상영관에서 튼 프로그래머의 의도는 내가 알 길이 없지만, 아마도 의도 달성엔 실패한 영화라고 본다. 인물 자체가 (시놉시스만 보고 느껴지는 인상과 달리) 결코 '호감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철저한 자기연민과 그에 따른 퇴행적 몸부림을 이 영화는 어쩔 수 없이 종종 담아내고는 있지만, 그 본질로 깊게 파고드는 대신 뒤로 물러나 비카가 원하는 방향대로 아름답게 꾸며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게 꼭 나쁜 일인가? 그건 아니지만 관객에겐 상당히 시시한 작품이 될 수밖에 없다.


전주씨네투어X음악: 김수영 + <비긴 어게인>

지난해 노들섬에서 열린 단독 콘서트 이후 김수영의 단독 공연을 보는 건 두 번째다.

저번과 비슷하게 첫 세 곡 정도는 상당히 긴장하고 떨리는 상태로 불렀는데, 50분이라는 짧은 시간상 막 목이 풀릴 즈음 마무리를 하게 돼서 아쉬웠다.

영화에 나온 음악을 직접 부른 것도 좋은 서비스였다고 생각하고.

그래도 축제의 마지막 순서로는 딱 좋은 이벤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전주 영화제의 정체성과 어울리나?' 이런 걸 너무 고민하지 말고 이런 이벤트가 호응이 좋다면 앞으로도 계속했으면 한다.



<비긴 어게인>은 어떤 편견이 있어서 안 보다가 이번에 처음 봤는데, 다행히 늙은 남성과 젊은 여성의 러브스토리가 아니라 젊은 여성이 러브라인을 거부하고 독립을 하는 내용이라 놀랐다. 상당히 좋았다. 왜 배우 이름값에 비해 글로벌 흥행이 안 됐는지도 깨달았고. 오히려 한국에서 이례적 흥행을 한 이유가 뭘지 궁금하다.

아쉬운 건 여자 주인공이 아무리 그래도 가창력이 너무 떨어져 아쉽다는 것. 영화 삽입곡 중 애덤 리바인이 부른 노래만 히트곡(이것도 한국에서만 히트했지만)이 된 건 이런 이유도 있지 않을까. 야외 녹음 장면도 피날레 무대 장면 못지 않게 멋있게 찍어놨는데.

매거진의 이전글 <추락의 해부>는 뭘 하고 싶은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