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백수는 오타쿠가 되기 쉽다

그에 대한 역(逆)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by 봉필


애니메이션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자면, 며칠 밤을 새워 가면서 이야기를 끝없이 이어갈 수가 있다. 내 인생 역사와 애니메이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으니, 나로부터 애니메이션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내 인생사를 듣기 위한 각오와 맞먹는 다짐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 글 역시도 줄이고 줄이고 줄여 쓴 것이란 사실 정도는 미리 밝혀 두어야겠지.


학교에 다녔던 어린 시절부터 줄곧 맞벌이를 하셨던 부모님은 언제나 방과 후에 집에 계신 적이 없었다. 하교 이후에 나와 형은 투니버스와 애니원 채널을 번갈아 오가며 매일 몇 시간씩은 애니메이션으로 시간을 흘려보냈었다. 보통의 또래 아이들은 컴퓨터 삼매경에 빠지곤 했던 시기였지만, 가정 형편상 사양이 좋은 컴퓨터를 장만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 형제는 컴퓨터보다 TV에 좀 더 빠져들기 쉬운 환경에 놓여 있었다. 이누야샤나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 등 TV에서 방영해 주는 어떤 애니메이션이든 중간중간 광고까지 전부 눈에 담아 가며 재미있게 시청했었지. 부모님과 형, 그리고 나, 네 식구가 단칸방에 지냈던 시절이나 곰팡이가 잔뜩 피어 벽으로부터 떨어져 지내야 했던 빌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야만 했지만, 그런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내가 마음을 굽히지 않았던 것은 그 옛날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들이 쉽게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지쳐 쓰러져도 매일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단련해 나가며 기어코 그들이 원하는 무언가를 성취해 나갔다. 어쩌면 그 가난했던 어린 시절 속에서 나는, 그런 만화 속 주인공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릴 적부터 많은 시간을 쏟았기에 애니메이션 시청은 하나의 습관으로 자리 잡아 내가 직업 군인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에도 나의 일상 한편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었다. 성인이 되어 본가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자취를 하는 형태(BOQ에서 4년을 지냈다)로 시작된 나의 사회생활이었기에, 이전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넘치는 자유 속에서 허우적대며 나는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나의 여가 시간의 기준점이 되어 준 것도 오랜 세월 내 곁에 머물러 준 애니메이션이었던 것이다. 어린 시절 반강제적으로 원치 않는 에피소드들이라 할지라도 TV채널에서 방영해 주는 대로 봐야만 했던 답답한 갈증을 마침내 해소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 이름하여 '정주행'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나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애니메이션을 처음부터 끝까지 닥치는 대로 정주행 하기 시작했다. 일단은 당대 가장 유명했던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 순이었고, 그 뒤로는 재미있다고 소문난 애니메이션이라든가 숨은 명작들을 찾아서 찬찬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일본 드라마에까지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고. 그렇게 나는 일본 문화에 흠뻑 빠져들었고, 전역을 한 뒤에 한 번쯤은 일본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 실제 삶 속에서 실천에 옮기기도 했다. 비록 반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이어진 일본의 워킹홀리데이였지만, 나름대로 얻은 것들이 참 많았다. 이제는 흐릿하게 기억의 저편에 묻혀 있는 추억일 뿐이지만, 아직 젊고 어렸던 당시의 내 삶 속에서 하나의 커다란 지지대가 되어준 경험임을 안다. 나의 생존력과 적응력은 군대와 일본에서의 생활을 거친 이후로 늘 남들보다 한층 더 우위에 있었다. 그런 사실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이점들을 삶 속에서 손쉽게 쟁취할 수 있었는지 감히 헤아리기도 벅차다.


애니메이션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었던 군시절을 보내고 난 뒤로는 그 열정이 조금 사그라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일상의 곳곳에 애니메이션은 스며 있었다. 일본에서 귀국한 뒤로 넷플릭스나 왓챠 같은 OTT가 대중들 사이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고, 나는 이전보다 한참은 더 쉽게 그 가슴 설레는 서사들을 손쉽게 접할 수가 있게 되었다. 늘 생활고에 시달렸던 바쁜 대학 생활 가운데서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한두 편, 혹은 자취방에서 홀로 밥을 먹을 때 한두 편. 그런 식으로 계속해서 내 곁에 애니메이션을 두곤 했었다. 애니메이션 속 캐릭터들이 실제 친구들보다 훨씬 더 믿음직스럽고 본받을 만하다는 생각을 밥먹듯이 하기도 했다. 그들은 나의 우상이자, 내 인생의 길잡이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 주었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내 안에 얼마나 많은 캐릭터들이 뒤섞여 빛나고 있었던가. 어쩌면 부모님 이상으로 나에게 인생에 대해 알려준 것도 역시나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아니었을까 싶다.


내가 원래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내가 어릴 적에 시청했었던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이 소년 만화였기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나는 서사가 진행될수록 성장하고 강해지는,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원했던 무언가를 성취하는 소년 만화 서사를 특히나 마음에 들어 하는 편이다. 불우하거나 보잘것없었던 과거의 어린 시절에서부터 하나의 희망, 혹은 꿈을 향해 나아가는 그들의 발걸음 발걸음에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그런 성장 과정 속에서 피어나는 우정과 사랑, 그리고 용기, 믿음 등 삶 속에서의 고결한 가치들은 퍽퍽한 나의 현실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어떤 단단함의 의미를 일깨워 주기도 했다. 때때로 지나치게 비판적이게 되거나 회의적인 생각을 품기도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세상은 살 만하고 아름답다고 노래하는 이유의 일면에는 그런 서사 속에서 굴하지 않았던 주인공들의 영향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백수가 되어 2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지금, 아무래도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다 보니 애니메이션과 다시금 가까워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 예전처럼 상당히 소모적으로 일상의 대부분을 애니메이션 시청에 쏟는다거나 하지는 않지만, 자기 전에 자장가를 틀어놓는 느낌으로 한두 시간 정도를 애니메이션에 할애하고 있다. 꽤나 바쁘게 머리를 굴리며 정신없이 글을 써댄 날에는 편안한 위로가 되어 주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어떠한 성과도 거두지 못한 날에는 따가운 채찍질이 되어 주기도 한다. 삶과 사랑에 대한 가르침을 책이나 글을 통해 배우기도 하지만, 여전히 일정 부분은 이 애니메이션에 의존하고 있기도 하다. 내가 죽기 직전의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 가장 아쉬울 만한 부분이 뭐가 있을까를 떠올릴 때면, 자연히 그즈음 완결이 나지 않았을 어떤 애니메이션을 생각하는 고통을 떠올릴 정도다. 애니메이션은 어느새 내 삶의 일부가, 그것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서른 하나, 지금까지 나이를 먹어가며 여러 전문적인 책들을 읽고 글을 써 나가며 사고의 확장을 나름대로 꾀했기에, 이제는 한층 더 철학적인 부분들을 검토해 가며 작품을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이 생겼다. 같은 소년 만화 장르라고 하더라도 각각의 작품들에 스며 있는 철학은 저마다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니체의 철학은 소년 만화의 큰 조상님이라고 할 수 있는 만화 <드래곤볼>로부터 파생되어 지금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각각의 작품 안에서도 주인공이나 악역들 개개인의 서사에 정신분석학적인 트라우마라든가 결핍 등이 보다 눈에 띄기도 하고, 이제는 단순히 주인공을 떠나 주조연급 캐릭터들에 대한 세밀한 묘사나 서사적 표현들에 더 주목하게 되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더욱 세련된 형태로 잘 만들어진 작품을 찾아 나서는 일이 요즘 내가 주력하고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식으로 나는 여전히 애니메이션에 대한 흥미를 끌어가고 있다. 잘 만들어진 최신 애니메이션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보다 대중적인 흐름에까지 올라타고 있는 작금의 상황도 나로서는 참으로 반가울 수밖에 없다. 특히나 작년 하반기에 이어졌던 귀주톱 극장가 유행은 나로 하여금 절로 웃음이 나오게 만들기도 했다.


책과 글, 그리고 애니메이션.


이 세 가지는 내 인생 속 삼분의 계가 되어 나를 지탱하고 있다. 그 가운데 어느 쪽도 지나친 쏠림이 없이 균형을 이루어 내가 삶 속에서 마땅히 배우고 깨우쳐 나가야 하는 방향성을 가리키고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꽤나 단순한 논리 하나로 내 삶 속에서 이 셋을 지켜나가 보려 한다. 지금까지 성장해 온 내 모습이 꽤나 마음에 들기 때문에, 셋의 균형을 더욱더 철저히 지켜나갈 미래의 나 역시도 그런 의미에서 기대가 된달까? 백수가 된 뒤로 다시금 오타쿠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어서 너무나 만족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런 시기가 언제까지고 이어질 수 없을 것이란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더욱더 소중히 살아갈 따름이다.

오타쿠의 삶은, 생각보다 살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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