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눈박이 나라에 간 두눈박이

누구나 낯선 환경에 처할 수 있다

by 봉필


대부분의 누군가에게 '전학'이라는 것은 나 아닌 다른 사람이 겪는 일일 뿐이다. 기억 속에서 '우와, 전학생이다' 정도로 정리될 수 있을만한 단어. 대체로 겪을 일이 없으니, 이 글을 읽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감히 '내가 그 전학생이었다면'과 같은 상상조차 지난날을 통틀어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 이야기가 그런 사람들에게 꽤 괜찮은 간접 경험이 되었으면 한다. 나는 10살 남짓한 어린 나이에 '전학'이라는 것을 수차례 경험해야 했다. 스스로 원한 적도 없고, 전학 당일까지도 감히 내가 겪어야 할 일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해야만 했다. 그것 말고 다른 선택지는 나에게 없었으니까.


전라남도 목포, 그곳이 나의 첫 전학지였다. 나는 십 년 평생을 함안에서 산 경상남도토박이였고, 내 눈앞의 아이들은 아마도 비슷한 세월을 그곳에서 지낸 전라남도토박이였다(한 명인가 부산에서 전학 왔다던 애가 있기는 했었던 것도 같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2학기에 겨울방학이 끝나고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 애매한 자투리 기간에 전학을 갔었다. 그런 기간이어서였는지, 아니면 당시 담임 선생님이 나에게 별 관심이 없었던 것이었지는 지금도 여전히 알 수가 없다. 다만 어른으로서 어린 나에게 내가 지금 기억하고 있는 것보다 더 나은 기억 정도는 얼마든지 심어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 정도는 안다. 전학생인 나를 교실로 안내한 선생님은 마땅한 자리가 없다고 투덜대면서 책상과 의자를 어디선가 가져와 자신의 교탁 옆에 나란히 붙이며 말했다.


"너는 여기 앉으렴."


나는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자리에 앉았다. 그 뒤로는 선생님에게서 말끔히 나의 존재 자체는 잊힌 듯했다. 변변한 자기소개의 시간조차도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내가 나서서 소개한다고 해야 하나, 잠시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왠지 눈에 띄는 행동은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만뒀다. 교탁 옆자리는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심지어 칠판이 있는 쪽과는 반대로 책걸상이 놓여있어, 40여 명의 시선을 계속해서 느껴야 하는 심히 불편한 상황 속에 나는 무방비로 노출되어야만 했었으니까. 나는 그렇게 전학 첫날, 하교하는 순간까지 단 한마디 음성도 내뱉지 않았다. 아니, 내뱉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선생조차도 외면한 나라는 존재에게 아이들은 좀처럼 말을 걸지 않았고, 지나가다 가끔씩 귀에 꽂혔던 전라도 사투리는 왠지 모르게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아버지의 고향인 전라남도 진도, 그곳에서 지냈던 사촌 형과 여동생 간에 나름대로 교류가 있어서 전라도 사투리는 나에게 그리 생소한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잦은 교류는 아니었기에 익숙해지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처했던 그 교실에서의 환경이 전라도 사투리에 대한 나의 기억을 공포스럽게 조작한 면도 있지는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점은 그 상태로 일주일만 지내면 5학년이 되어 새 학기가 시작된다는 사실과 학기 끝무렵이라 점심시간 이전에 학교에서의 일과가 마무리된다는 것 정도였다. 수업시간이면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내용으로 선생님과 아이들은 소통했고, 나는 40여 명의 시선들과 마주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교실 뒤편의 사물함을 계속해서 응시할 뿐이었다.


이틀째가 되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나는 여전히 교실에서 모두에게 철저히 외면당하는 상태였다. 가만히 교실 뒤편을 응시하고 있는 것도 지겨워서 1교시가 끝난 뒤, 교실 한편에 있던 책장에서 책 한 권을 가져와 수업 시간에 읽기 시작했다. 아무도 그런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아니면 그토록 지독한 소외에 좌절해야 할지 어린 나는 감히 판단을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나를 제외한 이들은 여전히 서로 소통하며 그들이 하던 과업을 진행해 나갔다. 아무래도 좋았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는 더욱더 독서에 빠져들었다. 너희들이 날 무시한 만큼 나도 너희들을 철저히 무시해 주겠다, 하는 마음으로. 나는 그 교실에서 오로지 독서라는 행위만이 나의 존재를 증명한다는 듯이 눈으로 글자를 따라 읽고, 책장을 넘기는 행위를 계속해서 반복했다. 한 권을 다 읽으면 책장에 꽂혀 있던 다른 책을 가져와 읽었다. 책장에는 30여 권의 책들이 꽂혀 있었기 때문에 다행히도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읽어나갈 책들이 소진될 일은 없었다.


처음 한두 권째 수업 시간 중 책을 다 읽었을 때에는 다음 쉬는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책장에서 새 책을 가져오며 나름대로의 조심성을 보였지만, 몇 권째부터인가는 수업 중에 완독을 해내면 그들의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수업시간에도 아무렇지 않은 듯 책장까지 터덜터덜 왕래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래도 너네들 나 무시할 거야? 한편으로는 그런 마음도 있었지 싶다. 그러다 3일째, 혹은 4일째 되던 날에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어 그런 나의 행동에 대해 선생님에게 항의를 표했다. 왜 저 아이는 책만 읽나요? 나는 당황했지만, 드디어 나의 존재를 알아채준 그 아이에게 약간의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이 교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 넌 내가 이렇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었구나. 왠지 한쪽 가슴이 찡한 듯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뒤이은 선생의 차가운 답변이 잠시 달아오른 내 마음을 순식간에 얼려버렸다.


"쟤는 신경 쓰지 마. 내버려 둬."


언제 꺼내어봐도 이 기억은 참 몹쓸 기억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선생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그럴 수 있었을까. 당시 나는 그들의 문답에 관심 없다는 듯 머리를 처박은 채 책에만 시선을 두고 있었지만, 사실상 나의 두 귀는 예민하게 쫑긋거리며 그들의 문답만을 쫓고 있었다. 머리가 띵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철저히 무시할 만한 존재로 남아야만 했다. 책 속의 글자들을 애써 쫓아갔다. 아무런 말도 듣지 못했다는 듯, 마치 거기에 나는 처음부터 없었던 존재라는 듯이 계속해서 읽어나갈 뿐이었다. 내 기억에 그 일주일 동안 읽어나간 책이 다섯 권 정도였지만, 기억에 제대로 남아있는 것은 단 한 권도, 단 한 줄도 없다. 내 눈은 철저히 글자들을 읽어나갔지만, 내 머리에 저장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은 무서울 정도로 잔잔하고 차가웠던 그 교실의 공기뿐이다.


다행히도 이런 위기 속에서도 나는 나 자신을 지켜낼 수 있었다. 내가 무언가 잘못을 했거나 못된 아이여서 그들이 나를 무시한 것이 아니라, 철저히 그들이 다수의 힘으로 멀쩡했던 나를 무시했었던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어린 나는 멀쩡히 눈이 두 개가 박혀있는 사람이었고, 오히려 그들이 얼굴에 눈이 하나밖에 달려있지 않은 사람들일 뿐이었다. 이제와 돌이켜 보면, 그들에 동화되어 내 눈 한쪽을 도려내지 않을 수 있었음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우리는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다수라는 힘으로 무장하여 멀쩡한 사람을 몰아세우고 상처 준 일이 있었는지, 혹은 그런 상황 속에 누군가를 몰아넣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나는 그러지 않기 위해 그날의 씁쓸했던 기억을 곱씹으며 다시 생각하고 성찰한다. 언제 어디에서든 나의 경험과 같은 일을 나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에게 저지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나 자신을 잘 지켜가면서, 동시에 다른 누군가를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함부로 탄압하지는 말자고, 그날 이후로 잊을 만하면 그런 다짐을 가슴에 다시 새기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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