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나 어린 나이에 손에 쥐어야만 했었던
새 학기는 어김없이 밝았지만 여전히 나는 그곳에서 철저한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다. 교탁 옆자리에서 고개를 처박고 책만 읽어갔던 지난 학년에서는 어떠한 돌파구도 찾아낼 수 없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같은 반이 되어 반갑다며 왁자지껄 떠드는 아이들, 2년 연달아 같은 반이냐며 장난스럽게 투닥거리는 아이들,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지 투덜대며 옆반에 친한 친구를 만나러 가는 아이들, 그리고 얌전히 앉아있는 선택밖에 할 수 없는 나. 여전히 전라도 사투리는 귀에 익지 않은 상태였고, 그것을 구사하고 있는 아이들과는 어떤 식으로 소통해야 하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어느 순간 외계에 갑자기 툭-하고 떨어졌는데, 겉모습은 그 외계인들과 다를 바 없지만 언어를 말하면 그들과 다른 사람임이 들통나버리는 상황. 좀처럼 해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으며 한숨만 쉬고 있던 차에 선생님이 들어왔다. 귓가에 어지럽게 맴돌던 아이들의 전라도 사투리는 선생님이 몰고 온 침묵에 일순 완전히 잡아먹혔더랬다.
내 모든 학창 시절을 통틀어 가장 잘 만났다고 생각하는 선생님, 나를 정말 잘 챙겨주고 예뻐해 주셨던 선생님으로 지금까지도 비교적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낯선 환경에 놓였던 탓도 있었겠지만 첫인상부터 왠지 모르게 더 정감이 가는, 그런 사람이었달까. 잘생긴 호감형 외모에 웃을 때면 어쩐지 인자함이 자연스럽게 묻어 나왔던 사람. '이런 어른이라면 따라도 되겠다' 어린 마음에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발표'를 특히나 강조했던 분이었다. 덕분에 우리 교실에서는 수업시간 중에 좀처럼 볼 수 없는 진풍경이 펼쳐지곤 했다.
그 시절 수업시간이면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로 긴장을 안겨주었던, 좀처럼 피해 갈 수 없었던 것이 바로 선생님의 발표자 지목 순간이었다(요즘 학생들의 발표는 어떤 식인지 모르겠다). 그 5학년 이전까지 겪은 바로는, 주번이나 그날의 날짜로 지목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이자 법칙과도 같았다. 하지만 이 선생님은 이전 선생님들과는 발표를 바라보는 태도부터가 남달른 사람이었다. 발표에 대해서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있었던 선생님은 '발표는 자신감'이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수업 중 모든 질문에 모든 학생들이 손을 들어야 함을 요구했다. 지목은 어디까지나 선생님 마음이었다. 일단 손을 든 다음에 답변을 생각해도 늦지 않는다. 주저하기 때문에 자신감이 떨어져 발표를 못하는 것이고, 미처 생각이 이르지 못하는 것이라고 선생님은 늘 강조했었다. 지금 생각해도 100% 맞다고 납득할 수는 없지만, 딱히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지목당한 뒤에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면, 당당히 큰 목소리로 "잘 모르겠습니다"를 외치면 된다는, 나름대로의 도주로도 다행히 열어주었다. 그런 연유로 당시 5학년 3반이었던 우리 반 아이들은 파블로프의 개와도 같은 자동반사적인 반응을 필수적으로 탑재해야만 했다. 선생님의 질문과 함께 "발표해 볼 사람?"이라는 구령이 떨어지면 학급 모두가 일제히 오른손(혹은 왼손)을 힘차게 추켜올려야 했으니 말이다. 아직까지도 그 시절을 떠올리면, 무수히 많은 팔들이 하늘을 향해있던 그 광경이 가장 먼저 눈앞에 펼쳐지곤 한다.
학기 초였던 터라 학급에는 어색한 기류가 감돌고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의 그와 같은 요구는 수업시간에 학급 아이들 모두로부터 높은 집중력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혹시나 덜 떨어진 모습을 보였다가는 자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약점을 잡힐지도 모르기에 너도나도 정신줄을 부여잡고 수업 시간에 집중해야 했다. 학기 초의 그런 분위기는 어린 나에게 하나의 기회와도 같았다. 아무도 나의 존재에 대해 모르지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수업 시간을 통해 그 누구에게든 나의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킬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 생각으로 수업 시간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다른 아이들보다 더 나은 발표를 수행하기 위해 쉬는 시간을 활용해 진도에 맞춰 미리 예습을 하기도 했다. 역시 인생에 있어, 위기는 기회가 맞다.
내 전략은 다행히 적중했다. 나는 어느샌가 주변 아이들로부터 발표도, 공부도 잘한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전까지 스스로 공부를 잘한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나였지만, 수업시간에 집중을 하다 보니 다른 아이들보다 이해하는 속도나 깊이에서 앞서나가게 되었고, 시험을 치를 때에도 특별히 시간을 내어 공부를 하지 않았지만 꽤 괜찮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나는 정말 공부를 잘하는 아아인 건가? 떠가는 의문과 함께 약간의 확신을 더해가면서 한번 정해진 정체성을 쉽게 놓아버리고 싶지 않아 수업 시간에 집중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어느새 공부는 당시 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할 만큼 대단히 중요한 아이덴티티가 되었다. '공부를 잘하는'이라는 타이틀은 그때부터 한동안 나의 이름과 함께 붙어 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로 공부에 재능이 있는 것인지, 아니면 부단한 노력으로 잘하게 된 것인지는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다만, 그 어린 나이에 공부라는 행위에 어떤 식으로 접근하는지를 깨달음으로써 훗날 수차례 수험 생활을 거칠 때에도 나름대로 자신감을 가질 수가 있었다. 수업 시간에 집중하는 습관이나 누군가로부터 강의를 들을 때 어떤 태도와 생각으로 수업에 임해야 하는지 나름대로 더 나은 방향을 생각하며 습관을 들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학습하는 데에 있어서 남들에 비해 수월할 수 있었다는 느낌이다. 그 습관을 바탕으로 한 모든 경험들이 당시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이 경험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 당시의 경험은 나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주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고, 그 기대에 맞춰 나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동시에 그 기대에 부응했을 때 내가 얻을 수 있는 성취들이 어떤 것들인지 깨닫게 했다. 꽤나 기분이 좋았다. 세상에 나고 처음으로 하나의 공략법을 찾은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를 둘러싼 환경을 정확히 파악한 다음, 철저히 공략해 냈고 나름의 성취도 거두었다. 여전히 많은 문제들이 뒤따르고 있었지만, 남들에게 꽤 괜찮은 인상을 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성공인 셈이었다. 덕분에 지금도 나는 그 시절을 꽤 괜찮은 추억, 그리고 값진 경험으로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