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파이(PIE)

인간관계의 균형

by 봉필


사랑이 깊어갈수록 기존에 있던 우리 인생의 많은 부분들은 그 달콤함에 서서히 잡아먹히게 된다. 가족, 우정, 그리고 혼자만의 시간은 사랑이라는 정복자 앞에 차례차례 함락되어 가기 마련이다. 사랑을 시작하기 전에 일정 부분 스스로 머릿속으로 그려놓은 계획은 아주 낮을 확률로 지켜질 수 있겠지만, 언제나 사랑은 우리의 예상을 한참 뛰어넘는 파괴력을 보여주며 순식간에 우리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곤 한다. 애초에 인생에 계획대로 되는 일이 몇이나 되겠는가.


사랑에 빠지는 단계에서 인생의 균형을 유지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거센 폭풍 속에서 두 발을 땅에 딛고 서 있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때는 커다란 감정에 휩쓸려 머리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거나, 오로지 감정으로만 움직이기 때문에 이성적인 사고는 언제나 뒷전일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는 감수하면서 나아가야 한다. 당장 눈앞의 사랑보다 중요한 것은 없는 시기이니 말이다. 그렇게 있는 것, 없는 것 모두 땔감으로 던져가며 열심히 사랑의 불꽃을 키워나가다 보면, 우리는 어느 시점엔가 더는 커지지 못하고 점차 사그라드는 가련한 불꽃과 마주하게 된다. 문제는 바로 그때부터 시작된다.


중국사에서 자주 언급되는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라는 말이 있다. 중국의 대륙이 삼등분의 균형을 이룰 때 안정을 이룰 수 있다는 뜻인데, 사랑을 하는 우리의 인생에도 마찬가지로 적용해 볼 수가 있다. 사랑, 우정, 가족. 이 세 단어로 이루어진 관계에 있어서의 균형을 우리는 늘 염두에 두며 살아가야 한다. 어느 한쪽에 지나치게 치우치면, 우리의 관계라는 균형은 어느 쪽으로든 금이 가기 마련이다. 내가 그 사람에게 중요한 만큼, 그 사람의 친구들도 그 사람에게는 중요하며, 가족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가 사랑, 우정, 가족을 통해서 나누는 감정들이 때때로 비슷해 보이기는 하지만 각각 다른 고유성과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연인과의 일상 가운데 가족과 우정이 끼어든다고 해서 서운할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연인이 되기 이전에 형성되어 있던 상대방의 관계들에 대해서 존중할 줄 아는 자세가 진정한 신뢰 관계에서는 필요하다 하겠다. 나를 위한 사람이지만, 나만을 위한 사람은 아니다.


"왜 가족 여행은 가면서 나랑은 여행 안 가?"


물론, 때때로 상황 자체가 서운하게 흘러갈 수는 있다. 나의 파이에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대방이, 자신에게는 파이의 작은 부분밖에 내어주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 서운한 감정은 어김없이 관계에 적막감을 드리운다. 언제나 더 사랑하는 쪽은 그런 부분들을 감수하며 살아가야 하는 숙명이다. 언제나 여러 사정들이 얽혀있을 수 있으니 사소한 이유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다만, 어느 경우에서든 기본적으로 각 관계들을 서로 비교하는 행위 자체는 불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 사람이 사랑과 우정, 가족 관계를 어떤 비율로 할애하고 있는지는 순전히 그 사람의 몫이다. 그 어떤 이유에서도 그것에 대해 왈가왈부할 권리는 우리에게 있지 않다. 그런 기본적인 이해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무늬만 사랑일 뿐인 무서운 폭력적인 감정으로 인해 관계는 산산조각이 나고 말 것이다.


모순적이게도 우리가 처음 반했던 사람은 나와 사랑을 나누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인생을 살던 사람의 모습이었다. 사랑이라는 파이를 그 사람의 인생에 우리의 개인적인 욕심으로 심어놓았을 뿐이다. 내가 그 사람에게 큰 부분이 되고 싶다면 순전히 스스로의 노력으로 그렇게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지 억지를 써가며 떼를 써서는 안 되는 일이다. 이미 사랑의 한 부분을 욕심으로 얻어낸 주제에, 다른 부분을 줄이기를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친구나 가족 관계에서의 시간을 줄여 자신과의 시간을 늘려줄 것을 억지로 요구하기보다는 자신과 함께하는 사랑의 시간을 더 소중하게 느끼도록 이해와 배려로 감싸 안아야 한다. 나그네의 옷을 벗게 하는 것은 매섭도록 강인한 바람이 아니라 따뜻하게 나그네를 바라볼 줄 아는 태양이지 않았는가. 지나치게 사랑을 갈구하는 행위는 자신이 마음에 들어 집어든 장난감을 스스로 부수는 행위와도 다를 바가 없다. 어디까지나 상대방의 인생이 제대로 가꾸어져 있는 상태에서만 그 사람과의 로맨스를 단단히 구축해 가며 밝은 미래를 그려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 반대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로 상대방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누군가가 자신의 파이로 들어오기를 청했고 그에 마땅히 동의를 했다면, 자신의 일상을 어느 정도 나누어줄 각오 정도는 해야 한다. 내 일상을 조금도 포기하지 않으면서 그 사람의 사랑과 관심만을 받아먹겠다는 이기적인 생각은 버리도록 하자. 그런 식으로 이루어진 사랑은 결코 제대로 된 사랑의 형태라 말할 수 없다. 상대방이 소중한 자신의 인생을 할애하고 있으니, 그것에 대한 고마움을 바탕으로 자신의 마음 한편을 내어주는 것에 주저해서는 안 된다. 애초에 그런 마음이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면, 그 사람을 위해서라도 관계를 끝내는 것이 맞다.


언제나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사랑을 얻은 시점에서부터 사랑의 파이는 우리 인생 속에서 기존에 있던 친구나 가족 관계의 파이들을 갉아먹으며 무럭무럭 성장해 나갈 것이다. 우리가 초인적인 힘으로 특별히 잠을 줄인다거나 하며 이전보다 일상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단숨에 커다랗게 늘리는 것도, 늘리는 것을 좀처럼 용납하지 않으며 억누르는 것도 어느 쪽이든 부작용을 동반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너무 서두를 필요도 없고, 지나치게 경계하며 주춤거릴 필요도 없다. 항상 그 균형을 유지하려는 노력과 함께 다가오는 마음에 보답하고, 기꺼이 주는 마음을 주저하지 않는다면 꽤 괜찮은 관계의 파이가 맛있게 구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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