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쪽이든 당연한 것은 없다
서로 주고받는 것이 사랑이라지만, 우리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다. 가정환경, 성별에서 오는 특성, 혹은 사랑에 대해 쌓아 온 경험들이 우리를 그렇게 만들 것이기 때문에. 완벽한 극단에 치우치는 것은 언제나 경계해야 하며, 서로의 특성에 대해 알았다고 해서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역시도 주의해야 한다. 이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무언가를 누군가에게 줌으로써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고, 그저 주는 것을 하나의 목적으로 남에게 기쁨을 선사하는 산타클로스와도 같은 사람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바라보기에는 천사와도 같은 사람일지도 모르겠으나, 실상은 그렇게 마냥 좋지만도 않다. 누군가가 적절히 말려주거나 혹은 주의를 주지 않으면 이 사람들은 주체하지 못하고 말라비틀어져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실, 내가 그렇다.
사랑에 빠지는 데에 주저함이 없고, 그 사람의 감정이 어떻든 나의 마음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아낌없이 주곤 했다. 상대방이 어느 정도의 부담을 느끼는지, 혹은 어떤 반응인지 정도는 살피긴 했었지만, 상대방이 어떻게 해주기를 바란다거나 특정 대가를 바라면서 하는 일은 결코 아니었다. 그저 나는 그런 나의 모습을 좋아했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누군가를 위해 이토록 아낌없이 줄 수 있는 나 자신을 보며, 스스로를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딱 그 정도의 나르시시즘을 가지고 산다. 물론, 상대방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았다. 나의 대가를 바라지 않는 호의에 더없이 기뻐하는 사람들을 보면, 주는 사랑의 참 맛을 제대로 느낄 수가 있었다.
나와는 반대로 누군가에게 받음으로써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충분히 사랑받고 자란 사람들은 사랑을 받는 데에도 두려움이 전혀 없다. 그런 성향이 지속적으로 발달하게 되면 받는 데에 익숙한 사람이 된다. 혹은 지나치게 결핍된 사람들이 그런 것들에 집착함으로써 받는 사람이 되기도 하겠지만, 일반적으로 받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 때, 기쁘게 받을 수 있는 자세 또한 아름다운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는 것은 그 자체로 스스로의 존재감을 한 껏 고양시켜 준다. 이런 사실에 추가적인 설명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크리스마스에 산타클로스의 선물을 열어보며 기뻐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테니 말이다.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은 지나치게 그런 쪽으로 치우친 사람들이다. 주는 것에만 치우쳐 받는 것은 어딘가 어색한 사람들이라거나, 받는 것에만 치우쳐 주는 것이 좀처럼 되지 않는 사람들. 서로의 나고 자라온 환경과 사고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사랑의 과정 속에서 이들을 달래고 이해시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응당 받아야 할 상황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주기만 하다가 지쳐버리거나 가끔씩은 호의를 베풀기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받는 태도만을 유지한다거나 하면서 꽤 괜찮은 관계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가 버린다. 그런 관성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사랑이라는 꽃을 채 피워내지도 못한 채 망가진 서로를 마주하게 될 뿐이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에는 이기적인 생각에 갇혀 자신의 태도가 당연한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상대방의 태도 역시 당연하고 일방적이어도 괜찮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사람들은 어느 쪽이든 폭력적으로 돌변할 수 있다. 일평생을 주는 것에만 몰두하며 살아왔고, 무조건 주기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결코 일방통행일 수 없는 관계의 속성을 깨닫기 전까지 고통에 몸부림치게 된다. 좀처럼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이들에게 강압적인 태도를 드러낼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주는 것이 당연하듯, 상대방이 받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고(思考)는 하나의 사건으로 번지기도 한다.
당연하게 받기만 하는 쪽 역시 마찬가지이다. 단편적으로 생각하면 수동적인 태도를 유지할 뿐이라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서로의 감정을 확인한 사이라고 한다면 오히려 주기만 하는 쪽보다 훨씬 더 폭력적일 수 있다. 별다른 어려움 없이 관계에서 당연하게 받아가며 원하기만 하는 상대방은, 끝없는 갈구를 통해 주는 쪽의 영혼 구석구석까지 빨아먹어 버릴지도 모른다. 상대방이 지쳐 쓰러져 불구의 상태가 될 때까지도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 자신을 당당히 내세우면서 말이다.
어느 쪽으로든 우리는 치우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극단적인 경우까지 치닫는 것은 경계하도록 하자. 우리 앞에 있는 그 사람은 어느 면으로 보나 존재부터가 당연하지 않다. 그 사람이 주는 것에는 마땅히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면서 언제든 그 사랑에 보답할 것을 마음먹어야 하며, 그 사람이 받는 것에는 마땅히 기쁨을 느끼며 거기에 상대방이 응답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관계를 다져나가야 한다. 어느 정도의 기대와 수용, 그리고 배려는 언제나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