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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필 Oct 14. 2024

반대되는 사람과의 사랑

오히려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될지도


누군가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에게 끌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자신과 완전히 반대되는 사람에게 끌리기도 한다. 거기에 대해서는 수많은 연구들과 그를 뒤따르는 결과들이 각각의 의견을 뒷받침해주고 있지만, 그런 것들은 우리에게 있어서 어떠한 근거로도 사용되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어느 한쪽이 지지를 받아 주류 의견이 된다 한들, 나는 어차피 내가 끌리는 사람과 사랑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건 연구 결과들이 정해주는 문제가 아니다. 순전히 나 자신이 어떻게 자라왔고, 어떤 성격으로 어떤 사람들과 만나왔는지의 문제이다. 


결론적으로 양쪽 다 경험해 보아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자신과 닮은 사람과도 사랑에 빠져 보고, 자신과 완전히 상반된 사람과도 사랑에 빠져 보고,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런 사람들과 장기적인 관계를 맺으며 사랑하는 과정도 겪어보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우리는 그러는 과정 속에서 알지 못했던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게 된다.


대부분의 연애 관련 연구들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자신과 비슷하고 친숙한 사람에게 쉽게 사랑에 빠진다고 한다. 딱히 놀라울 것도 없다. 제대로 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누구나 다 정서적으로 자신과 닮아있고 친숙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들을 곁에 두기 마련이니까. 연인이라면 더더욱 그런 현상들이 뚜렷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자신과 반대되는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진귀한 경험, 그리고 그 사람과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해 나가는 과정을 겪어나가는 것은 그렇기 때문에 인생에 있어 좋은 양분이 된다. 자신과 정서적으로 비슷한 사람들과의 교류는 안정적인 만큼 좀처럼 색다른 경험과는 동떨어진 것이니 말이다. 이전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홀로 선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것이 부정적일지 긍정적일지는 순전히 받아들이는 본인의 몫이다. 우리는 그 안에서 지금껏 가까이하지 못했던 색다른 상대방에 대해 알아가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되고, 동시에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자신과도 조우하게 된다.


늘 비슷한 경험들과 반응들에 둘러싸여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 확고하게 정의 내려왔던 과거의 경험들이 전혀 쓸모가 없어지는 순간을 우리는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는 과정에서 기억을 잃어버린 어린아이가 된 듯 이것저것 실험을 거치며 결과를 도출해 낼 수밖에 없다. 나의 사소한 행동들에 좀처럼 예측 가능한 반응들만을 쏟아내 왔던 주변 사람들과는 다르게,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상대방을 마주할지도 모르고, 때로는 아무렇지 않게 흘러갔던 것들에 격한 감동을 보이는 상대방을 마주할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우리는 우리의 인생이 약간이라도 더 넓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지난 연인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해보도록 하자. 정말 지독히도 성격이 맞지 않아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런 치열한 연애 과정에서 나름의 성과는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진심으로 서로를 좋아했고, 그랬기 때문에 더욱더 격정적으로 사랑을 외칠 수 있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이전의 연애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나의 모습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때로는 스스로의 행동에 놀라기도 했고 때로는 반성을 해야만 했다. 관계를 이끌어가지 못하는 나의 무기력함에 좀처럼 어른으로서 그녀를 대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다툼들은 나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재조명하게 해 주었다. 참을성이 뛰어나고, 다른 사람에 대해 인내심이 있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녀 앞에서 좀처럼 참아줄 수 없었고, 나의 감정을 억누르지 못했다.


"오빠 같은 사람 처음 만나 봐."


그녀 역시 마찬가지의 상황을 겪어 나갔다. 아마도 나 역시 그녀가 지금껏 만나온 남자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사람이었겠지. 나는 이전에도 겪은 적이 없었고, 아마 이후에도 겪을 일이 없을 대격변의 만남 속에 생채기를 더해갔다. 우리는 서로 사랑에 빠졌지만, 차마 사랑할 수는 없는 대상을 바라보며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깊숙한 곳에 담겨 있던 검은 말들을 나누었다. 그것은 누가 봐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눌 수 있을 만한 교류가 아니었다. 지쳐가는 와중에 지저분하게 이별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와의 만남이 끝난 뒤, 나는 나 자신과 사랑에 대해 되돌아봐야만 했다. 지금까지 함부로 정의 내려왔던 타인과 사랑에 대한 생각들은 송두리째 뒤바뀌어야 했다.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다독여 왔던 나 자신에 대해서도 성찰의 시간을 반드시 가져야 했다. 상처 주는 말들을 소중한 사람에게 내뱉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던 지난날의 나의 오만에 대해 반성도 해야 했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더 낮은 자세로 사랑을 갈구해 나가야만 했다. 아마도 나와 완전히 반대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결코 하지 못했을 경험들 속에서, 나는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들을 한층 더 깊이 있게 할 수가 있었다. 


물론 반대되는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 자체가 쉽게 성립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안다. 하지만, 그런 기회가 자신에게 찾아온다면 굳이 회피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한껏 신나게 부딪치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결과가 뒤따라 나올 수도 있으니 말이다. 자세히 알고 보니 나와 비슷한 사람이었다거나, 나의 어떤 깊숙한 면과 일치하는 부분들이 발견될지도 모른다. 설령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나를 비추는 거울로써 한층 더 괜찮은 사랑을 꿈꾸기 위한 채비를 하게 할 수도 있다. 어느 면으로 보나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사랑은 사건이 아닌 사고일 뿐이고 언제나 희생자를 낳을 수밖에 없지만, 이왕 부딪치고 깨져야 한다면 보다 묵직한 경험이 더 큰 깨달음을 가져다 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굳건한 모험심을 발휘해 보도록 하자. 애초에 나 자신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우리이니,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경험을 쌓아나가며 스스로에 대해 학습해 나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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