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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필 Oct 09. 2024

너무 아픈 사랑도 사랑일 수 있다

다투고 깨어지고 상처 나고


정말로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된다, 운명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단어이다, 결혼이라는 제도 역시 우리와 같은 사랑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다. 분명히 그랬었는데...


사랑은 언제나 우리의 눈을 멀게 하고 가슴을 뜨겁게 불태운다. 때로는 이성적인 마비까지 불러오는 이 미치도록 강렬한 사랑은 내가 머릿속으로 그려가던 그림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솟구치기도 한다. 사랑에 있어서의 '다툼' 역시 좀처럼 뜨겁지 않으면 잘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좀처럼 관심도, 흥미도 생겨나지 않고, 내 가슴에 불을 지르지도 않은 상대에게 애써 열변을 토로할 이유를 찾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니까. 자신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건, 어떠한 해도 끼칠 수 없다는 말과 진배없다. 우리는 그런 사람에게 열과 성을 다해 소리치기보다는 조용히 소리소문 없이 멀어지는 평온한 결말을 선사할 뿐이다.


본디 인간은 각자의 개성을 지니도록 태어났다. 천생연분이니, 운명이니 하는 말을 붙일 수 있는 그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외계인과 사랑에 빠진 것이 아닌 이상은 말이다. 앞선 글들에서 말했듯,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도 하고, 서로의 결핍에 대해서 마주 앉아 이야기도 하고, 때로는 인정도 해가며 큰 문제없이 서로의 관계를 잘 가꾸어나갈 수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추상적이고 일반론적인 이런 이야기들로 언제까지고 미뤄둘 수 있는 다툼이란 없다. '어긋남'은 언젠가 본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늘 잘하려고 애쓰지만 명확한 한계는 언제나 자신도 모르는 모습들을 끌어내곤 한다. 부처님, 예수님이 종교적, 신화적 존재로 남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우리는 좀처럼 그들과 같은 인자함을 가질 수 없다. 어느 한쪽이 열반에 이르거나 성경과 물아일체를 이룬 존재가 아니라면 당당히 싸워보도록 하자. 그런 투쟁 속에서도 우리 관계는 보다 발전할 수 있다.


수많은 싸움들이 어떤 식으로 벌어지는지 잘 생각하고 함께 고민해 보도록 하자. 어느 한쪽의 잘못이 원인이 되었다고 해서 그쪽 잘못만을 탓하지는 말자. 모든 상황을 전체적으로 조명하려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런 가운데서 서로의 합의점을 찾아나가야 한다. 상처받기를 두려워 말자. 큰 충격이 아니면 좀처럼 내가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상처를 주는 것에서도 주저하지 말자. 그렇지 않으면 상처투성이의 자신과 쓸쓸하게 마주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서로가 사랑하고 믿고 있다는 사실이 기반이 된다면, 싸움은 생각만큼 소모적인 형태가 아닐 것이다. 각자가 머릿속 생각으로만 가지고 있던 것을 털어놓으며 서로가 외면해 왔던 문제들을 수면 위로 부상시킨다는 측면에서 싸움은 보다 긍정적인 면도 충분히 함의하고 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니체의 말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드는 법이다. 심지어 '너무' 아픈 사랑일지라도 우리를 죽이지 못한다면, 우리의 사랑을 한층 더 강하게 만드는 것에 불과하다. 대신 아무렇게나 막무가내로 덤벼들지 말고, '잘' 싸워야 한다.


나도 그 사람을 좋아하고, 그 사람 역시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당당히 그 사실들을 인정할 수 있더라도, 자신을 파멸로 이끄는 관계를 이어가서는 안된다. 그 사람의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을 확인했지만,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좀처럼 사랑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거나, 사랑한다는 이유로 아무렇지 않게 상처를 주는 사람에게는 칼을 맞댈 이유가 없다. 그 사람은 그저 사랑을 방패 삼아 날 찔러 죽이려는 로맨티시스트를 가장한 무자비한 사랑의 테러리스트에 불과하니까.


잦은 싸움으로 갈등을 겪는 연인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장 헤어질 것이 아니라면 제대로 한번 붙어보라고. 그 속에서 좀처럼 끊이지 않았던 갈등의 실마리를 찾아낼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자신이 그런 싸움을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인지 미리 점검해 보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소한 말 한마디, 한마디에 일일이 상처받고 깨어지는 사람이라면, 제대로 된 싸움이 붙기도 전에 이성을 잃게 될 것이 뻔하니 말이다. 그런 사람은 사랑을 나누기 이전에 먼저 자신을 돌볼 필요가 있다. 앞서 말했듯, 우리 인간은 부처나 예수님이 아니니, 어느 누구에게든,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받으며 살아간다. 사랑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완전무결한 상처 하나 없는 사랑을 하고 싶다는 것은, 어린아이가 떼를 쓰는 행동이나 다를 바 없다. 사랑은 상처를 주고받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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