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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필 Oct 04. 2024

인정(認定)은 언제나 따뜻하다

내려놓음으로써 함께 올라가기


누구에게나 자존심은 있다. 자존심 하나 없이 이 험난한 세상을 헤쳐나간다는 것은 좀처럼 상상하기가 어렵다. 지나치게 남들 앞에 내세울 정도로 강하거나, 너무 빈약한 수준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의 자존심은 언제나 인생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만나면서 마주하는 모든 사람들 앞에 당당히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힘이 다 자존심 덕분에 나온다는 것을 안다면 충분히 납득할 수가 있다. 최근 들어, 자존감과 자존심을 비교하며 자존심을 나쁘게만 바라보는 시각이 있는 것은 상당히 유감스럽지만 말이다. 비슷해 보이지만 애초에 결이 다른 두 단어를 이 글에서 굳이 비교하고 싶지는 않다.


자존심 : 남에게 굽히지 아니하고, 자신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는 마음


비단 자존심뿐만이 아니라, 모든 감정이나 생각들이 지나치면 화를 불러오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존감 과잉 역시 자존심 과잉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자존심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험난한 세상 속에서 스스로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아주 중요한 요소라 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는 때에도 지나치게 과하지만 않다면 자존심은 꽤 좋은 영향을 준다. 자신감 넘치는 모습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마음 편히 있을 수 있게 하고, 때로 힘들 때면 마음 놓고 기댈 수 있는 존재로 인식하게 하니까.


자존심의 부정적인 측면은 빈약할 때는 자신을 향하고 과할 때는 남을 향하게 된다. 중용(中庸)의 미덕이 언제 어느 때이고 어떤 것에 적용하든 정답에 가까운 말이라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전혀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 스스로를 지나치게 높임으로써 상대방을 밑에 두게 되면 당연히 사랑은 순탄하게 나아가기가 힘들어진다.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관계는 언제나 동등한 위치에서 바라볼 때에 빛을 발하는 법이다. 수많은 인정과 이해를 동반해야 하는 사랑의 여정 속에서 지나친 자존심은 역시나 독이 된다. 내가 하는 말은 모두 맞고, 네가 하는 말은 모두 틀리다. 그런 오류로 쉽게 빠지곤 하는 것이 자존심 과잉, 즉 자만이다.


인생의 대부분의 일들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낮춤으로써 손해를 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차선 양보를 해줬다가 신호가 바뀌기 전에 진입을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고, 자신이 손수 정성을 들인 프로젝트를 다른 사람의 공으로 올렸다가 자신의 진급이 누락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경제적, 기술적 요인들로 사회가 지나치게 발달해 일시적인 관계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불과 몇백 년 전만 해도 같은 동네에서 나고 자라 일생을 마감하는 사례는 생각보다 흔했다. 그런 환경 속에서는 주변사람들에게 정을 베풀면 언제나 자신에게 돌아오기 마련이었다. 같은 동네에서 거의 평생을 함께 해야 할 사이에 굳이 얼굴 붉힐 일을 만들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좋은 게 좋은 것, 그런 미덕이 통하던 시대였다. 그에 비하면 지금의 세상이 보다 각박해졌다고 보는 것이 맞다. 손해 보기 싫어하는 마음이해가 간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를 낮춤으로써 올라가는 사람이 나의 소중한 사람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어떤 사람이든 실수와 잘못을 하기 마련이다. 상대방의 작은 실수나 사소한 잘못들을 책잡아 비판적인 태도로 일관할 필요는 없다. 나 역시 비슷한 수준의 실수와 잘못들을 상대방에게 했거나, 혹은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자신을 낮추어 보자. 어차피 우리들은 서로 실수와 잘못, 그리고 약간의 호의들을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워나가야 하는 동반자이지 않은가. 자존심을 지나치게 내세우며 상대를 밀어낼 필요가 전혀 없다.


자신의 잘못과 실수에 대해 인정을 하는 태도 역시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누구나 실수와 잘못을 저지르며 살아간다. 절대로 자신은 잘못을 할 리가 없다는 오만한 생각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던져버리도록 하자. 잘못에 대해 철저히 인정하고 반성할 때 우리는 보다 나은 사람이 된다. 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 소중한 사람을 더 소중히 대해주도록 하자. 


지속적으로 대가를 바라기까지는 할 수는 없겠지만, 자존심을 내려놓는 태도를 견지해 나가라는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상대방 역시도 나를 사랑과 존중으로 대해주는 사람일 때에만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철저히 자신을 망가뜨리는 사람에게 인정과 이해를 베푸는 것은 둘 모두에게 극심한 후유증을 남긴다. 그 사람은 당연하게 돌아오는 인정과 이해에 좀처럼 내려놓는 법을 배우지 못할 것이고, 나는 자존심을 바닥에 처박아 지독히도 고통스러운 인생을 계속해서 살아가게 될 것이니 말이다. 내려놓을 때는 함께 내려놓으며 서로를 높여주면 되고, 내세우려고 날이 서 있는 사람을 마주할 때에는 과감히 스스로를 내세워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따뜻한 인정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에게 내 소중한 감정을 내어주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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