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것이 아닌 결핍 마주하기
결핍은 인간을 보다 인간답게 해 준다. 쓰라린 결핍들을 계속해서 가능성으로 치환해 나가는 것이 인생의 과제라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사랑의 과정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결핍들이 그리 밉지만은 않을 것이다. 너만의 결핍, 혹은 나만의 결핍, 그리고 서로의 관계에서 나오는 결핍. 언제나 우리는 그 모든 결핍들을 기꺼이 끌어안을 태세를 갖추어야만 한다. 나 혼자만의 결핍도 버거울진대 내가 아닌 사람의 결핍까지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결코 호락호락할 리 없다.
어느 정도 사랑에 빠져도 보고, 사랑을 하기도 했던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들어맞아서 빈틈조차 생기지 않는 관계란 없다는 사실을. 언제까지고 유니콘만 찾아 헤매다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현실 세계로부터 아득히 멀어져 버릴지도 모른다. 우리가 어떤 인생을 어디에서 어느 시점에 살아가고 있든 간에, 우리에게는 결핍이 있을 수밖에 없으며 마찬가지로 결핍된 사람과 사랑에 빠지게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평생 결핍된 누군가를 사랑해 나가야만 한다. 아주 작은 상대방의 단점에도 기겁하며 쉽사리 '포기'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사람은 평생에 걸쳐 제대로 된 사랑을 이어나갈 수 없을 것이다. 인생의 모든 결핍으로부터 평생 도망쳐 다닌다 해도 결국에는 제자리걸음일 수밖에 없듯이 말이다. 결핍은, 부딪치고 깨어지면서 극복해 낼 때에야 비로소 삶의 온전한 양분이 된다.
콤플렉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크거나 작은 콤플렉스들을 평생에 걸쳐 쌓아 가며 살아간다. 자신도 알지 못하게 형성되는 것에서부터 강렬한 기억이나 경험으로부터 보다 더 두드러지게 형성되는 것까지. 누구나 이름쯤은 들어본 정신의학자 프로이트는 인간을 '콤플렉스 덩어리'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많은 것들을 의식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순간순간을 의식적으로 통제하지 못하며, 오히려 무의식 저편에 잠들어있는 콤플렉스들에 의해 대부분의 행동들을 통제받으며 살아간다. 인간의 타고난 열등감으로 비롯된 그것들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현상들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게 만든다. 또한 일생에 걸친 자아의 안정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언제나 수많은 결핍과 불안정성을 낳는다.
과거에 겪었던 가난, 혹은 가정에서 제대로 받지 못했던 사랑이나 인정, 학창 시절의 배움 등의 결핍은 한 사람의 인생을 충분히 뒤흔들 만한 것들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우리는 한 사람과 교제하면서 그런 것들에 특히나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데, 지나치게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상황이나 특정 주제를 언급했을 때 급격하게 변하는 표정이나 심경의 변화 등을 통해서 상대방의 결핍된 부분을 어느 정도 알아차릴 수 있다. 많은 시간을 보내며 많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라면 굳이 심혈을 기울여 살피지 않아도 상대의 결핍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상대방의 결핍에 대해 주목하기 이전에 나의 결핍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자.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가장 큰 결핍은 어떤 것이었고, 그런 것들을 남에게 공개했을 때의 기분이나 심정 등을 충분히 헤아려보는 것은 좋은 출발점이 된다. 이런 결핍이 있는 나조차 사랑해 주는 상대방에 대한 이해는, 그 사람의 결핍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데에 큰 역할을 하기도 하니 말이다. 나 역시도 내가 바라보고 있는 그 사람과 마찬가지로 결핍을 지니고 있는 존재임을 항상 잊지 말자.
"내가 이 사람을 감당할 수 있을까"
상대의 결핍이 지나칠 정도로 크게 다가오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 중에 하나가, 하나의 결핍된 행동으로 그 사람 전체를 조망하는 일이다. 앞서 말했듯이 인간은 콤플렉스 덩어리이다. 하나의 콤플렉스나 습관적 행동으로 그 사람의 성격이나 삶에 대해 다 안다는 듯이 행동하지 말자. '걸러야 할 남자들 특징'이나 '만나면 고통받는 여자 특징'과 같은 글에 내 연인이 스치듯 했던 행동이 포함되어 있다고 해서 소스라치게 놀랄 필요는 전혀 없다. 같은 행동이라도 전혀 다른 의도가 섞여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우리는 감히 하나의 행동만으로 상대방을 판단할 수 없다. 정신의학자인 아들러가 말하길, 결핍으로 나온 행동 자체를 지적하기보다는 어떠한 의식과 지향점을 바탕으로 행동을 했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결핍으로 비롯된 행동보다는 결핍 그 자체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지금껏 내 연애가 실패로 끝났던 것은 이런 결핍들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돌아보면, 참 많은 연인들에게 나의 결핍을 꺼내어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었고, 그랬기에 그들의 결핍을 오롯이 어루만져주지 못했었다. 그리고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비슷한 성격과 결핍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매력을 느껴왔다. 아마도 그 공통된 결핍에서 나오는 무언가가 나를 사랑에 빠지게 했고, 나는 그 결핍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해 사랑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었던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는 식으로 쉽게 단념한 채 후회하지 말고, 한 번쯤은 극복해 보자는 의지를 가져보도록 하자. 지난 연애들과 지금의 연애를 생각해 보면 분명 공통된 부분들이 떠오를 것이다. 그중에 혹시 공통된 결핍이 있지는 않은가? 그것이 나의 결핍이든, 상대방의 결핍이든 말이다. 만일 그렇다면, 당신은 사람만 바뀌었지 계속해서 같은 연애를 반복해 온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 자신의 결핍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다음 사람도 이전의 연인처럼 똑같은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반대로, 그 사람의 특정 결핍 때문에 헤어진다 해도 앞으로 비슷한 결핍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사랑에 빠져 비슷한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가 매력을 느끼는 이성에 대해 잘 안다고 착각하지만, 그것은 무의식 저편에 있는 영역이라 감히 정의 내릴 수 있는 것으로 단정 짓기는 어렵다. 그러니 연인과 자신의 결핍을 위해 노력하는 행위는 언제나 꽤 해볼 만한 도전이 되는 것이다.
명심하자, 결핍은 회피해야 하는 장애물이 아니라 그 자체로 끌어안고 보듬으면서 동시에 극복해야 할 대상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