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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필 Oct 02. 2024

매일 이별한다는 마음으로

이별은 늘 우리 곁에 있다


'이별'이라는 단어는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이 단어를 적극적으로 회피하고자 하는 마음에 대해서는 나 역시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는 편이다. 이별의 'ㅇ'도 떠올리려 하지 않고, 늘 사랑만 하면서 사는 이상적인 꿈을 그렸던 때가 나라고 없었던 게 아니니까. 하지만, 그랬던 사랑은 늘 예상을 비껴가곤 했다. 이별로부터 멀어지려 하면 할수록 오히려 점점 다가오는 이별을 눈치채지 못했었고, 예기치도 못한 시점에 허무하게 헤어져야만 했다. 기억하자, 이별은 늘 우리 곁을 맴돌고 있다는 사실을. 


이별에 대한 결심을 매일같이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언제 이별할지 모르니 그 순간을 더 소중히, 더 뜨겁게 사랑하라는 메시지가 이 글의 요지이다. 너무 진부한 이야기 같은가? 아주 조금만 더 깊이 파고들어 보자. 


지독히 회피하고 싶은 무언가를 매번 마주치게 되는 경험은 우리에게 꽤나 익숙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경험으로 좋지 않은 무언가가 계속해서 닥쳐오고 있다면, 그 대상을 지나치게 회피했기 때문이 아닐지 생각해 보자. 그것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해 무방비의 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보니 좀처럼 회피가 되지 않는 것이다. 어느 직장을 가든 꽉 막힌 직장 상사의 타깃이 된다든가, 좀처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버거운 과제를 떠맡는 게 된다든가 하는 문제들이 이어지는 것은 철저히 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부터 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사실들은 사랑에 대해서도 충분히 적용해 볼 수 있다. 사랑에 있어서 가장 큰 적은 무엇일까? 골똘히 고심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곧바로 이별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다. 그렇다. 이별은 가장 큰 적이니, 우리는 그 적에 대비해야만 한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볼드모트처럼 언급을 회피한다고 해서 볼드모트의 존재 자체가 사라지지 않듯이, 우리의 기억 속에서 억지로 그 단어를 지운다고 해서 그 단어가 내 인생에 오지 않으리란 법은 절대로 없다. 오히려 그것의 속성이나 패턴에 대해 학습하여 철저히 사랑을 단련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해리포터가 볼드모트를 무찌르기 위해 단련해 나갔던 것처럼. 


유한한 존재인 우리는 어떤 것을 시작하든 끝을 향해 달릴 수밖에 없다. 인생의 모든 일들은 내 인생이 끝남과 동시에 마무리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사랑은 반드시 이별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하다. 이별을 완벽히 제거한다는 개념은 우리의 손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것이기에, 목적지는 어디까지나 최대한 내 인생과 사랑이 함께 막을 내리도록 이끄는 것이 되겠지. 이렇게 현실적인 목표만 하나 세웠을 뿐인데, 꽤 괜찮은 사랑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지 않은가? 그러고 보면, "죽을 때까지 사랑할게."라는 말로 이미 우리의 목적이 무엇인지 우리는 인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뒤에 이어지는 "죽은 다음에는?"에 대한 대답은 자유에 맡기겠다.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와 같다고 어찌 확신할 수 있겠는가"


내 개인적인 생각을 덧붙이자면, 나는 매일매일 나 자신과 이별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니, 주변 사람들과의 이별은 두말할 것도 없다. 존재론적인 관점에서는 사실 우리가 스스로를 존재한다고 인식하는 것부터가 상당한 모순점을 안고 있다. 철저히 자신의 기억으로만 '나'라는 사실을 인지할 뿐이니 말이다. 쉽게 말해, 누군가 오늘 아침에 기억이 비어 있던 나의 머릿속에 지난날의 기억을 심었을 뿐이라면, 우리는 정확히 기억 속의 내가 나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을까. 따지고 보면, 1초 전의 자신도 정확히 나라고 말할 수 없는 처지임이 분명하다.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는 세상이니, 이별을 보다 담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음과 동시에 모든 잃어가는 것들을 소중히 여길 수밖에 없다. 더욱더 과감히 사랑할밖에. 


여기까지 읽었으면 눈치챘겠지만, 사실상 이별에 대한 완벽한 대비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별의 상황도 언젠가는 닥칠 이별을 당겨서 맞이하였을 뿐이고, 그러는 과정에서 우리는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저 이별할 운명을 받아들이고 좀 더 과감하게 사랑하라는 뻔한 마무리 말로 글을 매듭지어볼까 한다. 


이별에 대한 학습만큼은 반드시 해야 한다는 것과 회피하려 한다고 회피가 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은 분명 더 나은 사랑을 하는 데에 보탬이 될 것이다. 지나치게 이별에 잠식되어, 이별할 운명이니 슬픔에 빠져 사랑을 비참하도록 얼룩지게 만들 필요는 없다.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모르겠으니 현재에 충실하라는 말은 매일 잃어가는 우리에게 늘 소중한 조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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