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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필 Oct 07. 2024

너를 만나는 내가 아름다워야

사랑으로 변화한 내 모습을 사랑할 수 있는가


사랑을 판단하는 기준들은 시대를 막론하고 다양하게 있어 왔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머릿속에도 꽤 많은 기준들이 들어있기도 하고, 유튜브에 조금만 검색해 봐도, 인스타를 조금만 둘러보아도, 꽤 괜찮은 결과물들을 손쉽게 얻어낼 수가 있다. 나는 그중에서 딱 한 가지만을 꼽으라고 한다면, 그 사람과 만나면서 변화하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드는지를 기준으로 삼으라고 말하고 싶다.


누구나 꽤 그럴듯한 자아를 가지고 삶을 이어나간다. 확고한 기준이나 가치관으로 담대하게 맞서 나가는 이가 있는가 하면, 여전히 방황하며 자신의 인생에 대한 정의를 좀처럼 내리지 못하는 이도 있을 것이고, 그 어느 쪽도 아닌 인생을 전반적으로 내려놓은 채 죽지 못해 이어가는 이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어떤 유형의 삶이라 할지라도 사랑에 빠지고, 사랑을 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변화한다고 믿는다. 우리 개개인은 하나의 우주다. 우리 우주가 또 다른 우주와 겹쳐지는 순간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과연 그것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의 삶은 엄청난 사건을 맞이하면 반드시 특정 결과를 도출해 낸다.


누군가를 만나 서로의 우주로 탐사선을 날려 보내는 탐색전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우리는 마침내 서로의 우주를 맞부딪혀보게 된다.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고, 그 속에서 스파크가 튀는 영역, 자연스럽게 융화되는 영역, 자신도 몰랐던 영역들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의 우주는 대격변을 겪게 될 것이다. 세상이 재편되는듯한 느낌까지 받을지도 모른다. 평생에 걸쳐 빚어온 우주가 한순간의 충돌만으로 송두리째 바뀐다는 사실은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기적이라 할 수 있다. 


사랑이라는 대사건은 나의 확고한 삶을 더 확고하게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그 와중에 수정해야 할 부분들을 마주하고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할 수도 있다. 때로는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던 삶 속에서 한 줄기 빛과 같은 인연과 맞닿아 깨달음을 얻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인간은 스스로 강인하다고 믿지만 그 강인하다는 믿음 자체가 나약할 수밖에 없기에, 언제나 흔들리며 타인에 의지하는 삶을 살아간다. 우리의 우주는 언제나 불안정하고, 그래서 함부로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충분히 아름다운가


사랑으로 뒤바뀐 우주, 즉 세상에 대해서 우리는 판단을 내려야만 한다. 이대로 만들어진 것들을 유지해 나가는 데에 전혀 무리가 없는가. 꽤 우수한 우주 공학자라도 된 듯 자연스럽게 계산기를 두드려봐야 할 시기가 언젠가는 찾아올 것이다. 그 시기를 결코 가벼이 넘겨서는 안 된다. 우리가 이전의 세상을 보다 정밀하게 정의 내리려 했듯이, 지금 눈앞에 펼쳐진 환상과도 같은 풍경 역시 철저하게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앞으로 어떤 삶으로 나아가든 꽤 중요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누군가는 이런 대사건 이후에 보다 안정적이길 바랄 수 있고, 누군가는 완전히 뒤집혀버리기를, 혹은 그보다는 덜하게 조금 더 나은 수준의 변화만을 추구할 수 있다. 개인적인 기호에 맞게 자신을 살피게 되겠지만, 결과물에 대해 지나치게, 섣불리 기대를 하는 것만큼은 주의해야 한다. 인간이기에 좀처럼 기대를 내려놓는 것이 많이 어설플 수밖에 없지만, '나는 내 삶이 유지되면서 더 나아지면 좋겠어'와 같은 확정적인 결말만을 그린 채 상대방을 대하다가는 눈앞에 펼쳐지는 전혀 새로운 방식들을 마냥 나쁘게만 바라보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어떤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을 내가 선택할 수 없듯이, 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내 우주가 뒤틀리는 모양이나 모습들을 선택할 수는 없다. 내 우주가 크게 박살 나지 않는 수준으로 기꺼이 받아들이고, 바뀌어버린 내 우주에 대해서 깊이 탐구하는 과정을 통해 판단을 내리려고 해야 한다. 하나의 사건이긴 하지만, 당사자끼리 언제나 대화의 창이 열려있는 만큼 우리는 조율 또한 지속적으로 해나갈 수가 있다. 


우주가 완전히 뒤바뀌든 소소하게 더 나아지는 부분들이 생기든 여전히 잔잔한 우주로 머물러 있든, 당초 생각과는 다른 모습이어도 사랑하면서 변화한 나의 우주마저 사랑할 수 있다면, 꽤 괜찮은 사랑을 해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수많은 일련의 과정들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과감하게 상대방의 우주를 놓아주자. 나를 위해, 그리고 상대방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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