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보다는 이성으로
이 세상에 싸우지 않고 헤쳐나갈 수 있는 연애란 없다. 다툼이 없는 연애는 나에게는 유니콘과 유니콘의 연애와 같은 의미이다. 한마디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 아직까지 싸운 적이 없다는 사실은 언젠가는 싸우게 될 것이라는 말이거나, 언젠가는 소리 소문 없이 이별이라는 비극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 내가 유니콘일 수 없듯이 상대도 유니콘일 수 없다. 내가 될 수 없는 것을 상대에게 바라지 말자. 오히려 나의 부족한 점에 대해 잘 헤아려가며 상대방 역시도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갈등의 순간은 언제까지고 비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관계에 있어서 꽤 긴 시간을 함께 했음에도 뚜렷한 다툼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어느 한쪽이 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내가 어떠한 생각이나 행동을 자유로이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있고, 거기에 대해 관계에서 조금의 어긋남도 드러나지 않는다면, 상대방이 각고의 노력으로 인내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스스로에게 질문을 해보도록 하자. 정말로 내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만 관계에 인내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혹, 자신을 속이면서까지 상대방의 참을 수 없는 부분들도 눈감아주며 인연을 붙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한 번쯤은 대화를 통해 그런 속내에 대해서 털어놓고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다툼을 두려워할 필요는 전혀 없다. 상대방을 만나기 전까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 각자의 길로만 평생을 살아왔다. 다른 사람들과 부딪쳐 자신을 지켜낼 정도의 자아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뚜렷한 자아도 가지지 못한 채 관계에 휘둘리고 있다면, 그런 관계는 당장에 멈추고 자신을 먼저 돌보기 바란다). 관계의 시작으로 우리는 서로의 자아를 맞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완벽히 들어맞을 수 없는 인간이기에 갈등을 동반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너무 두려워하지 말자. 싸움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꽤 괜찮은 다툼은 관계를 훨씬 더 나은 쪽으로 성장시킨다.
그 사람과 관계를 맺기로 마음먹은 상태라면, 그 사람과 눈에 띄게 맞지 않는 부분들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보통 문제라고 할 만한 것들은 한두 가지의 범위 내에서 정리가 된다. 주의해야 할 점은 한꺼번에 그 모두를 해결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 차근차근, 천천히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문제가 드러나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 딱 그 문제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낮은 자세로 상대방의 생각을 모두 존중한다는 태도를 보이도록 하자. 내 생각을 그대로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경청하는 태도를 끌어내야 한다. 해당 문제를 다른 문제로까지 파생시켜 상대방의 반발심을 사는 것에 계속적으로 주의하면서, 오직 그 상황에서 자신이 문제가 된다고 느꼈던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도록 하자. 그 부분에 대해서 대화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엄청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과거의 다툼을 현재로 끌어와서도 안 된다. 괜히 상대방에게 있어서도 좋지도 않은 기억을 약점 찌르기식으로 공격할 필요는 전혀 없다. 우리는 이 관계를 통해서 사랑을 하고 싶은 것이지, 상대를 이기고 싶은 것이 아니다. 관계에 있어서는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서로 찌르기만 하는 행동으로는 그 어떤 것도 개선해 나갈 수 없다. 개선은커녕 오히려 서로의 가슴에 생채기만을 늘릴 뿐이다. 어차피 돌아서서 후회할 것이라면, 상대를 찌르는 행위는 그만두도록 하자. 과거의 문제는 과거에 다툰 것으로 매듭짓고 눈앞의 상황에 대해서만 잘 풀어나가도록 하자. 당장에 헤어질 것이 아니라면, 묵혀둔 문제들은 좀 더 괜찮은 상황이 왔을 때 서서히 풀어 나가도 괜찮다.
꽤 괜찮은 대화로 마무리가 되었다면 상대방에게 고마움을 반드시 전하도록 하자. 이 모든 대화 속에서 감정적으로 대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었다는 사실은 깊은 감사를 받아 마땅한 일이다. 서로의 관계를 위해 노력해 주었다는 사실에 대한 감사와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는 긍정적인 맺음은, 다툼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한껏 덜어준다. 또한, 이런 대화 자체만으로도 꽤 괜찮은 관계로 나아가고 있다는 인식을 상대방에게 줄 수 있다.
다툼이 상대방으로 인해 발생할 수도 있지만, 자신으로 인해 비롯될 수 있다는 사실 역시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누구나 잘못과 실수를 반복한다. 나라고 예외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이 자신에게 불쾌할 수 있는 이야기를 털어놓더라도 경청하는 태도를 견지하면서 자신의 생각도 함께 나누도록 하자. 동시에 언제나 자신도 잘못할 수 있음을 알고 상대방의 잘못에 대해 너그러울 수 있어야 한다.
다툼이 발생하는 상황 속에서 이렇듯 이성적으로 접근한다는 것 자체가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싸움이라는 것도 보통 감정적으로 격해졌을 때 나타나는 것이니, 이런 이성적인 해결방법은 막상 닥쳐오는 상황 속에서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조차도 때때로 욱하고 올라오는 감정들에 지배당해 통제하지 못했던 때가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머릿속에 집어넣고 조금이라도 시도해 보려 노력한다면 언젠가는 꽤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다툼도 가능해질 것이라 믿는다. 자신도 잘못과 실수를 할 수 있음을 인정한다면, 이런 생각들을 실천하는 것이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잘못 역시 어느 정도 이성적으로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어른스러운 연애는 그런 식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다만, 너무 지나친 희생으로 자신을 갉아먹게 하는 사랑에 값비싼 노력을 지불할 필요는 없다. 어디까지나 자신의 인내심이 미치는 곳까지만, 이런 노력들을 해나가길 바란다. 현명하고 괜찮은 관계로 나아가기 위해 서로의 노력이 필요하듯이, 현명한 다툼 역시 상대방의 협조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