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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살아남기

웬만하면 가지 마세요. 책이나 미디어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by 봉필


인도에서의 나날들은 매일매일, 그리고 매 순간이 고비였다고 할 수 있다. 매번 양치를 할 때에도 인도의 수도 시설이 좋지 않아 슈퍼에서 구매한 생수로 해야 했고(*물갈이를 한번 하고 나서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그냥 수도를 이용했었다), 씻고 길거리에 나서는 순간부터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공해에 맞서 마스크를 콧등까지 올려 써야 했다. 수많은 인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때에는 절도에 대비해 귀중품 간수도 철저히 해야만 했다. 특히나 스마트폰과 같은 고가의 전자기기는 더욱더 조심해야 한다. 한 번은 뉴델리 시내를 친구와 지나다니다 50대 정도는 되어 보이는 노인이 균형을 잃고 넘어지는 척을 하며 내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던 적도 있었다. 내가 재빨리 주머니에 있던 스마트폰을 꺼내며 그 노인을 밀쳤기에 망정이지, 조금이라도 늦었더라면 나의 소중한 추억들과 영영 작별을 할 뻔하였다고. 밀쳐 난 노인은 아무렇지 않은 듯이 나와 눈을 마주치며 쏘리쏘리를 외치면서 시야에서 사라져 갔다. 정말이지 단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나라였다.


공기나 물과 같은 주변 환경도 문제투성이였지만, 역시 가장 큰 문제는 먹거리에 있었다. 기본적으로 위생 개념이 우리나라에 한참은 못 미치는 정도여서, 고가의 깔끔한 식당이 아니고서야(사실 그런 식당에 대해서도 크게 신뢰를 가지고 있지는 못하지만) 대부분의 조리 과정에서 보이는 더러움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면서도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자기 암시를 걸어가며 식사를 해나가야 했다. 길거리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시꺼멓게 더럽혀진 손으로 각종 튀김을 한다거나, 계산을 하기 위해 받아 든 (더러운) 지폐와 동전을 손으로 셈해 가며 씻지 않은 손으로 조리를 이어나갔다. 조리대 근처에 각종 벌레들의 사체가 널려있는 것은 예삿일이었다고. 그들에게 음식이란 그저 씹어 삼킬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면 되는 듯 보였다.


KakaoTalk_20241125_223529321_01.jpg 감자와 튀긴 빵에 커리를 얹은 음식, 그나마 먹을 만했었다


하루는 길거리를 지나다 햄버거인지 샌드위치인지 모를 음식들을 진열해 놓은 작은 푸드 트럭에 이끌려갔던 적이 있다. 오랜만에 보는 깨끗하게 진열된 음식들에 우리는 잔뜩 기대를 하며 계산을 치렀더랬다. 하지만, 계산한 직후 그 음식은 때가 덕지덕지 묻어있던 주인장의 손에 의해 언제 갈았는지 헤아릴 수 없는 더러운 식용유에 투하되어 한결 오염된 모습으로 우리의 손에 쥐어졌다고. 멈추라고 말할 순간도 없이 순식간에 더럽혀진 음식 앞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서 한 입 베어 물어 삼켜보더니 입에 머금었던 음식물을 뱉어냄과 동시에 나머지 역시 쓰레기통에 곧바로 던져버렸고, 나는 꾸역꾸역 인도의 맛을 느껴보겠다는 일념 하에 억지로 욱여넣었다. 결국 친구는 (아마도) 그 음식이 원인이 되어 그날 저녁 심한 물갈이로 인해 화장실에서 밤을 지새워야 했다. 그 음식인지 쓰레기인지를 다 먹어치웠던 나는 그로부터 3일 뒤쯤 물갈이를 겪었다고. 인도 커뮤니티를 통해 들은 바로는, 다들 그렇게 여행을 시작한 지 일주일 안에 물갈이를 거치게 된다고 했다. 현저히 떨어지는 위생상태와 수질로 인해 인도에서는 겪어야만 하는 일종의 통과의례와도 같은 셈이다.


우리는 델리에서의 3일 동안, 현지 음식에 관한 부분은 과감하게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위생 문제도 심각하긴 했었지만, 거의 모든 현지 음식들에 들어가는 커리를 비롯한 향신료들은 한국식 카레를 평생에 걸쳐 즐겨 온 나에게도 견뎌내기 힘든 수준이었다. 심지어 맥도날드 햄버거에도 커리와 향신료가 들어간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커리의 맛과 향에 몸서리치던 우리가 하나의 오아시스를 발견하기라도 한 듯 뛰쳐 들어선 맥도날드에서마저 향신료 지옥을 맛봐야만 했다. 호기롭게 메뉴판 가장 위에 있는, 햄버거라는 이유로 주문했던 '마하라자 버거'에도 커리와 각종 향신료는 빠지지 않았다고. 끝끝내 인도 현지 음식에 좌절하며 생각보다 이른 시기에 항복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여행 초반에 일찌감치 현지 음식들은 포기한 채, 각각의 도시에 자리 잡고 있는 한식당들만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먼 나라 인도에까지 와서 한국 음식만을 먹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지만, 각종 도전들로부터 도출해 낸 최선의 결론이었기에 우리는 그런 사실들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거기에도 고난이 하나 있었으니... 우리나라에서 흔히 밥을 지어먹는 품종인 자포니카쌀은 인도에서 재배되고 있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인도에서는 한눈에 보기에도 우리가 알고 있던 쌀과는 명확히 다른 인디카쌀이 재배가 되고 있는데, 인디카 쌀은 우리가 흔히 먹는 쌀과는 다르게 찰기도, 윤기도 없으며 밥을 지어도 수분기가 없어 풀풀 날아다닌다. 인도인들이 손으로 밥을 집어먹게 된 것도 찰기 없이 날아다니는 쌀의 품종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언뜻 보면 흰색 애벌레 같기도 한 게 영 정감이 가지가 않는 생김새다. 처음 먹을 때에는 마치 모래를 퍼다가 먹는 듯도 하고, 바깥바람에 일주일 정도 건조된 밥을 먹는 듯도 하여 적응하기가 여간 쉽지 않았다고. 먼 고국 땅에서 당연하게 섭취했었던, 입안 가득 따뜻하고 촉촉한 식감을 가져다주는 밥이, 인도에 와서 사무치도록 그리워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인도의 각종 힘겨운 환경들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음식에서 만족스럽지 못했었다는 점이 인도 여행의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어떤 여행이든 먹는 것들이 부실하면, 그 어떤 사건이나 기억들도 좋게 남기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나는 이미 일본의 오사카에서 절실히 느껴본 바가 있었다. 그때는 가난으로 인해 제대로 먹지 못했었다는 점에서 인도의 상황과는 약간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내가 먹을 여건이 되지 않아 먹지 못하는 것과 주위에 먹을 것이 없어서 먹지 못하는 것, 어느 쪽이 더 괴로운 상황일까. 양쪽 모두 경험해 본 나는, 일말의 희망조차 품을 수가 없는 후자가 훨씬 더 괴로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행에서 식도락을 빼면 대체 뭐가 남는단 말인가.


KakaoTalk_20241125_223529321.jpg 그래도 먹다 보니 적응이... 어떻게든 되었던 쌀.


그나마, 인도식 밀크티 '짜이'와 인도식 요거트 '라씨'는 음식 지옥 속에서 우리의 자그마한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달달한 두 음료는 지친 여정 속에서 한 줄기 빛과도 같은 것이었다. 어느 도시 길거리에나 짜이를 파는 수레들이 즐비해 있어 유난히 추운 날이면 우리는 어김없이 짜이 한 잔으로 몸을 녹이곤 했다. 도시 간 이동하는 기차 안에서도 끓는 주전자를 들고 다니며, 짜이~ 짜이~ 소리를 내며 짜이를 판매하는 아줌마, 아저씨들을 심심치 않게 만나볼 수가 있다. 자이푸르에 머물 때에는 '라씨왈라'라는 유명 라씨 맛집에서 아침마다 라씨를 마셔댔고, 바라나시에서는 '바바라씨'라는 가게를 즐겨 찾았었다. 짜이와 라씨 덕분에 퍽퍽하기만 했던 인도 여행이 조금은 달콤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인도의 교통수단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멀리 떨어진 지방으로 옮겨갈 때에는, 슬리핑 버스나 기차를 이용해야 한다. 우리 같은 경우에는 슬리핑 버스를 한 번 이용하고, 나머지 경로들은 모두 기차를 이용했다. 슬리핑 버스는, 정말 막대한 모험심을 참을 수 없다면 평생에 한 번 정도만 이용해 보길 추천한다(추천 안 한다는 소리다). 사실 장점이랄 것은 하나도 없는 단점 덩어리 교통수단이지만, 그중에서도 최악인 것은 불편한 위험을 동반한다는 데에 있다. 운전기사 때문인지, 버스 자체가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인도의 도로가 매끄럽지 않은 탓인지, 어느 쪽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극심한 덜컹거림과 급정거, 급가속을 반복하는 탓에 '슬리핑'은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으며, 그것을 넘어 때때로 생명의 위협까지 느낄 정도로 심한 덜컹거림을 겪어야만 한다. 정말이지 인생에 한 번이면 족할 끔찍한 경험이었다고.


기차는 최선이 아니라 차악인 셈이다. 네다섯 번에 걸쳐 기차를 이용했지만, 단 한 번도 정해진 제시간에 온 적이 없었다. 10분에서 20분 늦는 것은 기본에, 한 시간 반이 넘도록 추위에 덜덜 떨며 태연하게 지각하는 기차를 기다렸던 기억도 있다. 탑승한 후에도 무임으로 승차하는 승객이 넘쳐나는 탓에, 제대로 된 자리에서 휴식을 취할 수도 없었다. 밤이 깊으면 좌석 위에 접혀 있는 수면칸을 편 뒤 누워서 잠을 청하는데, 하루는 웬 엉뚱한 아저씨가 내 자리로 올라와 침대 구석에 누우려기에 다퉜던 적도 있다. 어설픈 영어로 겟아웃오브히얼! 디스이즈마이플레이스!(여기서 나가! 여긴 내 공간이야!) 하며 일방적으로 소리쳤던 게 전부이긴 했지만 말이다. 다행히(?) 아저씨는 툴툴거리며 다른 장소를 찾아 떠났다. 시민 의식이라는 것이 모든 나라에 규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구나. 새삼 대한민국의 위대함과 그 국민일 수 있음에 감사했었던 기억이다.


KakaoTalk_20241125_223529321_03.jpg 인도 기차칸, 숙면을 취하는 봉필


먼 거리에는 기차와 버스를 이용하지만, 가까운 거리는 자동식 인력거인 오토릭샤 '툭툭'을 이용했다. 처음부터 릭샤의 기사들이 괜찮은 가격을 제시하는 경우는 절대 없다. 두세 번 정도의 기본적인 흥정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합리적인 가격을 들을 수가 있다고. 그나마 선선한 바람을 느끼며 도시를 구경할 수 있어 나름의 낭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툭툭의 최대 장점일 것이다. 약간의 위험성에 주의하긴 해야 했지만, 꽤 괜찮은 수단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글을 쓰다 보니 인도 여행의 단점만을 툴툴거리며 나열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실제로 장점은 찾기가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기도 하고, 조금의 거짓도 보태지 않았으니 스스로 떳떳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저 그대로의 감상과 기억을 통해 작성된 글일 뿐 어떠한 비난이나 공격적인 의도는 품고 있지 않다. 오히려 인도의 그런 단점투성이인 점이 나름의 매력이라면 매력이라고 생각하고 있기도 하다(정말이다). 정말로 위험하고도 더럽다는 느낌을 안고 매일매일 생존을 위해서 나아갔던 여행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남은 생에 한 번쯤은 인도로 다시 한번 돌아가 보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다. 발톱을 깎다가 문득 깊이 박혀있던 발톱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구수한 발톱 때 냄새를 맡아보기 위해 코에 가져다 대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더럽고 냄새나는 것을 알지만, 계속해서 맡아보고 싶은, 그런 마음 말이다. 좌충우돌의 여행이기는 했지만, 역시 좋은 친구와 함께였고, 좋은 사람들을 그곳에서 만날 수 있었으니 아무래도 좋았다는 결론을 내려볼 수도 있다. 극한의 환경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더 정감이 가고 애틋한 마음이 생기는 듯도 하다. 그런 환경에서도 대단하고 멋진 사람들은 언제나 존재하고, 또 그들을 조우할 수 있는 기회 역시 여행하는 모두에게 주어져 있다.


*물갈이 : 위와 장내에 발생하는 감염병으로, 주로 수질이 상이한 나라에 가면 겪곤 한다. 장염 증상과 똑같으며 알맞은 약을 복용하거나 몸이 그 수질에 적응하게 되면 자연적으로 치유되기도 한다.


KakaoTalk_20241125_223529321_02.jpg 2017년 12월, 인도 거리 어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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