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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성적표를 뒤로한 채 인도로

숨 돌릴 틈도 없이 시작된 서바이벌, 혹은 어드벤처

by 봉필


'인도'라는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현재는 약 14억 2천만 명의 인구수를 보유한(2022년 통계청 기준), 지구상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 여전히 카스트라는 봉건적 계급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 소를 신성하게 여기는 힌두교의 나라, 여성 인권이 낮아 관련 범죄들로 뉴스에 자주 나오곤 하는 나라, 부처인 고타마 싯다르타가 생전 활동했던 나라. 다양한 수식어들이 이 나라를 말해주지만, 3주 동안 인도 북부를 여행했었던 나에게는 '이 세상 어느 곳보다 더러운' 나라로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다. 길거리 여기저기 사람과 소의 배설물들이 덕지덕지 범벅이 되어 있거나 쓰레기를 태우다 만 재가 길거리에 낭자해 있고, 한눈에 봐도 좋지 않아 보이는 공기는 언제 어디서든 매캐하게 부유하며 코를 찔러댔다. 왜 굳이 이런 나라에 여행을 갔었냐고? 그야, 재밌을 것 같아서.


다음 해에 복학을 앞두고 있었던 한 친구가, 여름이 끝나갈 무렵 한창 수능 공부 중이던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당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던 그 녀석은, 12월에 3주 정도 시간을 들여 동남아 여행을 갈 계획인데 함께 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해 왔다. 일본 워킹 홀리데이를 다녀왔던 내가 외국 여행을 하는 데에 흥미를 가지고 있을 것 같아 연락을 한 것이라고. 당연하게도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그런 솔깃한 제안을 거절할 리가 없는 나였다. 일찍이 일본에서 5개월가량 다양한 경험을 채워가며 머물다가 귀국한 이후, 다른 나라에서도 재미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들뜬 기대감을 간직하고 있었던 터. 언젠가 시간이 될 때 주변국들을 여행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들을 떠올리곤 했었던 나였다. 나는 흔쾌히 함께 여행에 가는 것에 동의했으나, 그 목적지에 대해서 약간의 첨언을 덧붙였다.


"그럴 바엔, 인도에 가는 건 어때?"


약 3주 정도의 기간 동안 동남아에 있는 여러 나라를 둘러볼 생각이었던 친구는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등지를 여행하는 대략적인 계획을 이야기해 주었다. 하지만, 당시 나의 여행 철학과는 맞아떨어지지 않는 콘셉트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3주 동안 긴 기간을 들여 자유 여행으로 다닌다는 점에서는 꽤 괜찮은 계획이었지만, 어쩐지 짧게 짧게 여러 나라를 거친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적어도 한 달 정도의 시간을 들여야 한 나라에 대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일본에 머무를 적에 깨달았더랬다. 짧게 많은 나라를 경험하는 것도 좋긴 하지만, 한 나라에 오래 머물면서 그 나라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하는 쪽에 더 큰 의미, 그리고 재미가 있지 않을까. 나의 그런 생각들을 이야기하며 친구를 설득해 낼 수 있었다. 당시 '윤리와 사상'이라는 수능 과목에 푹 빠져있었던 터라, 동양 철학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석가의 본고장인 인도를 퍼뜩 떠올려 친구에게 대안으로 제시했었던 것이다. 쉽지 않은 여행이 될 것은 미리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런 고난과 함께이기에 또 여행에 재미를 더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설레는 생각으로 머릿속을 가득 채워나갔다고. 녀석도 고심 끝에 나의 생각에 동의했고, 우리는 그렇게 3주 간의 인도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나는 수능일까지 공부를 지속적으로 해나가야 했기에, 여행에 관련된 모든 계획은 친구가 오롯이 떠맡게 되었다. 다시 생각해 봐도 참 고마운 녀석이 아닐 수가 없다. 땅덩어리가 넓은 인도의 모든 지방을 3주 안에 둘러보는 것은 무리였다. 친구는 인도 북부 지방을 서쪽에서부터 동쪽으로 가는 루트를 계획했더랬다. 주요 대도시들 위주로 일정을 계획한 뒤 이동 일정에 맞춰 기차를 인터넷으로 사전예매하고, 비행기표에 관한 부분도 전적으로 친구가 주도하여 알아본 뒤 나에게 알려주는 식이었다. 나는 간단히 클릭 몇 번으로 모든 계획들에 숟가락을 얹을 수 있었다고. 계획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는 미안한 마음에, 현지에 가서는 적극적인 태도로 여행 중에 닥치는 돌발 상황을 헤쳐나가겠다는 말로 나의 역할을 스스로 어떻게든 만들어냈다. 계획에 힘을 써준 친구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으로, 실제 인도에 발을 들인 뒤부터는 직접 부딪치는 일들은 모두 자처하여 떠맡은 나였다. 지나고 보니 역할 분담이 확실했던 꽤 괜찮은 여행 콤비였다는 생각이다.


정신없이 흘러간 수능일을 뒤로하고 나는 곧바로 여행 배낭을 싸기 시작했다. 수능일로부터 정확히 일주일 뒤에 우리는 상하이를 경유하는 비행기를 타고 인도로 향할 예정이었다. 가채점 성적표를 들고 수만휘(유명 입시 정보 카페)를 비롯한 입시 커뮤니티를 떠돌며 지망할 수 있는 대학을 알아보는 일들은 잠시 뒤로 미루어 두어야 했다. 당장에 인도에서의 삶을 헤쳐나갈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고민을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입장이었으니 말이다. 미리 다양한 영상들이나 책을 통해 접했던 인도는 그야말로 무법천지의 나라였고, 친구와 나는 살아남기 위해 나름의 대비책들을 꼼꼼히 세워나가야만 했다. 이것저것 준비하다 보니, 총 60L 가까이 되는 커다란 배낭은 금세 가득 차올랐다. 내 가방은 짐을 넣으면 넣을수록 위아래가 아닌 앞뒤로 부피가 커지는 형태의 백팩이어서 늘 뒤로 넘어질 듯 쏠리는 무게중심 때문에 큰 고초를 겪곤 했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누군가 여행을 위해 대용량 백팩을 찾는 중이라면 위아래, 그러니까 세로로 높이 뻗은 형태의 가방을 구매할 것을 강력히 추천하는 바이다. 양옆으로 퍼지는 형태의 백팩은 그야말로 여행의 복병이자 재앙이다.


정확히 12월 1일, 만반의 준비를 갖춘 우리는 인천 공항에서 경유지인 상하이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항공권 비용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 위해 우리는 경유해서 가는 비행기를 택할 수밖에 없었는데, 오히려 1박을 상하이에 머물면서 관광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며 들떴던 우리였다. '원영적 사고'라는 말이 유행하기 한참 이전에, 여행을 떠났던 이십 대 청춘들의 머릿속은 긍정적인 생각으로 잔뜩 젖어 있었다고.


상당히 기름졌던 만두와 우리나라에 비해 어딘지 딱딱한 분위기가 맴돌았던 공항과 지하철, 그리고 생각 외로 높다랗고 멋졌던 건물들. 하룻밤을 머물다 갈 뿐이었던 상하이는 그런 맛과 모습, 분위기로 나의 기억에 남아 있다. 정말로 잠깐 들러갈 뿐이었지만, 우리나라를 떠난 여행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실감하면서 설레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했던 1박이었다. 아마 인도에 가면, 이런 음식들은 못 먹어보겠지. 어쩐지 그런 씁쓸한 생각을 삼키면서도 두근거리는 모험심에 밤잠을 설쳤던 상하이에서의 하루였다고.


상하이에서 인도의 뉴델리 공항까지는 대략 6시간 정도가 더 걸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코노미석에서 그 정도 시간의 비행은 상당히 가혹한 시간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몇 달 전 제주도에 가는 이코노미석에서 한 시간 반 정도 앉아 있었던 경험도 지독히 괴로운 것이었는데, 인도 여행 때에는 어떻게 그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확실히 젊음이 좋긴 한가 보다. 그렇게 장장 6시간을 걸쳐 마침내 인도에 비행기가 착륙을 마쳤을 때, 창(窓)을 통해 보이는 인도 뉴델리에는 깜깜한 밤이 드리워 있었다. 그윽한 연기인지 안개인지가 온 마을을 뒤덮고 있었고, 어쩐지 공항 주변 풍경이 다소 스산한 기운을 풍기는 듯도 했다. 드디어, 인도에 도착했구나.


공항에서 걸어 나와 처음으로 마주했던 인도의 거리는, 정말이지 불길한 예감을 가득 머금고 있는 분위기였다. 주인 없이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검정의 날렵한 들개 무리들이 낯선 우리를 보며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이 짖어댔고, 지하철 역 입구 근처에는 아이를 안은 채 손바닥을 내밀며 구걸하는 여성들과 '툭툭? 툭툭?' 하며 오토릭샤(인도의 오토바이 택시)에 탈 것을 권유하는 릭샤 기사들이 한데 모여있었다. 나중에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안 사실이지만, 아이를 안고 구걸하는 여성들 중에는 자신의 아이가 아님에도 고아가 됐다거나 부모를 잃은 남의 집 아기를 안은 채 구걸을 위해 그런 동정 어린 모습을 연출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정말이지 상식을 뛰어넘은 극악무도한 사람들이 아닌가- 싶어 화가 나다가도, 그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모여사는 곳이 인도인가- 싶은 생각에 인간적인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다.


까만 밤, 희끄무레하게 연기인지 안개인지 모를 매캐한 냄새를 머금은 공기들이 떠갔다. 인도에서는 쓰레기 처리 인프라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아, 길거리에 쓰레기를 한데 모아놓고 불로 태워버린다는 사실을 책에서 미리 읽었는데, 실제로 그러한 모습을 마주하게 되니 참으로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델리 도심 골목골목은 어딜 가나 그렇게 매캐한 연기가 가득 차 있었다. 일단 우리는 서둘러 미리 예약해 둔 숙소를 찾아 나섰다. 첫날이었기에 안심할 수 있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숙소를 예약해 두었다고 친구는 나에게 알려주었다. 스마트폰 지도 화면을 들여다보며 앞장선 친구의 뒷모습을 따라가며 나는 마음속으로 말을 건넸다. 우리, 살아서 한국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거지? 어쩐지 든든해 보였던 그 뒷모습은 대답을 생략한 채 숙소를 찾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KakaoTalk_20241123_131335807.jpg 2017년 12월, 상하이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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