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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는 서울대였습니다만,

24살에 치렀던 인생 두 번째 수능

by 봉필


"너도 참 대단하다"


수능 예비소집일, 동네에서 식자재 마트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친구가 시험장으로 지정된 학교까지 마트 봉고차로 태워다 주겠다고 하여 잠시 동행을 했었다. 다행히 집에서부터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의 학교로 수험장이 배정되어 수능 당일 아침에 피로할 일은 없을 듯했다. 친구는 군대를 막 전역하여 복학 전까지 남는 시간에 잠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수능 시험이 치러진 뒤에 나와 함께할 인도 여행을 가기로 계획해 놓은 상태였다. 나는 시험공부를 해야 했기에 비용적인 부분만 1/2로 나눠서 낼뿐, 여행 계획에 대한 전반적인 부분들은 친구가 도맡아 해야 했지만 녀석은 어쩐지 별다른 불평을 하지는 않았다. 계획에 힘을 쓰지 못하는 대신, 여행을 가서 맞닥뜨리게 될 고난들에 대해서 주저하지 않겠다는 나의 다짐을 믿어주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얼마 뒤에 떠났던 인도 여행 속에서 꽤나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냈던 고마운 친구다.


친한 친구들은 모두 대학을 1년 정도 다닌 뒤에 휴학계를 내고 군대에 갔었고, 내가 전역한 일자와 가깝게 전역을 한 뒤에 복학을 서두르고 있었다. 군대에 입대할 때에도, 전역한 이후에도 이런저런 고민들을 나에게 털어놓곤 했지만, 결국 또래 아이들과 함께 평범한 삶을 향해 닦여진 길을 선택했던 그들이었다. 당시에는 다른 길로 발을 뻗는 용기를 좀처럼 내지 못하는 그들이 조금은 답답하게도 보였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런 뻔한 선택일지라도 충분히 방황하고 고심한 끝에 당당히 내린 결정이라면 그 또한 용기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때의 나는 너무 어렸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다수의 선택들은 인생에 있어 가장 쉬운 것이라 단정 지었고, 그런 큰길로부터 벗어난 비탈길을 걷는 이들만이 도전적이고 대단하다는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더랬다. 이제는 그런 모두가 다 가는 길도 우직하게 걸어갈 수 있는 이들을 멋지게 바라볼 수 있는 꽤 괜찮은 안목이 생겼다는 생각이다. 다수가 걸어가는 길을 당당히 걸어가는 행위는 내가 삼십 평생을 살면서도 제대로 해낼 수 없었던 것이었기에, 약간의 과장을 보태자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살아있는 모두의 인생을 응원한다. 브라보 유어 라이프.


최근 떠올리게 되는 고민들이나 시답잖은 담소, 그리고 인도 여행에 관련된 이야기를 간략하게 나누다 보니 어느덧 지정된 시험장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친구에게 고마움을 담은 가벼운 인사를 건넨 뒤 나는 봉고에서 내렸다. 짐칸에 커다랗게 식자재 마트 홍보 문구가 붙어있는 파란색 포터를 몰고 친구는 또다시 일을 하기 위해 어딘가로 향했다. 떨리는 마음을 안고 학교 정문을 지나 건물에 들어서서 내가 시험을 볼 예정인 교실까지 눈에 담아두었다. 이제 내일이면 이곳에서 내가 9개월 동안 공부한 모든 것들을 쏟아붓게 되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몸도, 마음도 쉽사리 진정되지가 않았다. 학교를 나서서 집으로 오는 동안에도 싱숭생숭한 마음을 좀처럼 달래지 못했었다고. 잘 해낼 수 있을까. 수학 킬러 문항에 대한 대비가 아직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긴 한데. 내가 시험을 치를 학교와 교실까지 확인하고 나니 어쩐지 자신감보다는 걱정이 더 커져가는 듯도 했다.


하지만, 걱정한들 달라질 것은 없었다. 내일 시험이 치러진다는 사실은 하늘이 무너지거나 땅이 솟지 않는 이상(사실은 그렇다 해도 대한민국 수능은 강행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변하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과목 중간중간 쉬는 시간에 잠시 눈에 담을 영어 단어나 자주 까먹곤 했던 문법적 표현, 그리고 정리해 둔 요약 노트를 다시 한번 점검해 나갔다. 그러면서 동시에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계속해서 그려보았다. 국어, 수학, 그리고 영어... 3교시까지만 어떻게든 잘 치러내면 사회 탐구부터는 어느 정도 긴장이 완화된 상태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주요 과목 세 개. 그중에서도 특히, 수학...


"수능 시험 연기된다는데?"


거실에서 뉴스를 보고 있던 어머니가 갑자기 소리쳤다. 처음엔 짓궂은 장난으로 받아들여 그게 무슨 소리냐며 상당히 재미없는 농담이라는 말로 얼버무렸지만, 아버지까지 합심해서 "정말이라니까-" 하며 한 목소리를 내자 나는 하던 것들을 멈추고 곧바로 거실로 뛰쳐나갔다. 정말이었다. 부모님의 말씀은 사실이었다. 믿을 수 없게도 TV에서는 포항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인해 수능 시험이 연기될 것이라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수능은 역대 세 번 정도 연기된 사례가 있었지만, 바로 직전인 전날에 연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뉴스 앵커가 말했다. 점심시간에 집 거실에 앉아있다가 의자의 흔들림으로 지진을 느끼긴 했지만, 별다른 뉴스가 없어 연기되는 사태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나는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감정을 선택하지 못한 채 일순 혼란에 휩싸였다.


포항 지진 사태로 인해 수능은 정확히 일주일 연기되었다. 예정에도 없던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갑자기 생겨난 것이었다. 수능 연기 뉴스를 보다가 급하게 정신을 차린 나는 골똘히 생각했다. 이것은, 전례 없는 정신 싸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내일 모든 것을 쏟아부을 작정으로 일정에 맞춰 공부해 왔던 수험생들 대부분이 흔들리고 있을 터였다. 나와 겨뤄야 할 상대들이 나보다 5살은 어린 미성년자라는 사실은 그 순간 나에게 엄청난 위안이 되었다. 그들에 비한다면 이런 정신적 싸움을 수십, 수백 차례는 더 겪어온 나는 훌륭한 베테랑이었던 셈이었으니 말이다. 충격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일주일 간의 계획을 수립하고 실천할 정도의 정신은 간신히 유지할 수가 있었다. 수학 과목에서 부족한 부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어려운 수학 문제 위주로 많은 시간을 들였고, 나머지 공부들은 잊히지 않도록 회독수를 정해 착실하게 수능 시험일을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갔다.


마침내 예정된 시간은 다가왔고, 어떻게 치렀는지도 모르게 시험일의 하루는 순식간에 흘러가 버렸다. 두 번째 수능이었다고는 해도 그 무게가 남달랐기에 당일의 넘치는 긴장감은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고. 모든 시험이 끝난 뒤에는 약간의 허무함과 그래도 배운 것은 잘 풀어나갔으니 준비한 만큼은 해냈다는 안도감만이 가득 찼을 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수험표에 깨알같이 써 내려간 정답지로 가채점을 했을 때에는 약간의 고민과 갈등이 생겨났지만, 일단은 잠시 덮어두기로 했다. 목표한 서울대를 갈 수 있을 만한 결과는 아니었다는 사실 정도는, 나중에 생각해도 결코 늦지 않는 것이었다. 수능을 치른 나를 위해 가족들은 맛있는 식사를 대접해 주었고, 친구들은 한 잔 술을 따라주었다. 그것으로 1년 여 가까운 고생은 눈 녹듯이 녹아내렸다고. 목표한 만큼의 성과는 아니었지만, 계획된 일정에 맞춰 완주해 낸 나 자신이 대견했다. 이미 결과는 나왔고, 붙잡고 고민할 시간은 충분히 넘쳐났다.


이 역시도 무작정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꽤나 강렬하고 또 즐거운 추억으로 내 머릿속에, 그리고 인생에 남아 있다. 시간과 정성을 제대로 들인 값진 노력은 어느 정도의 성과는 반드시 가져오며, 설사 목표한 만큼이 아니라 할지라도 따라오는 뿌듯함이 삶을 충만하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던 소중한 순간이었다. 여전히 무언가를 원할 때에는 노력해서 쟁취하면 된다는 신념을 지켜낼 수 있음에 감사했고, 또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음에 기쁠 따름이었다. '대학'이라는 뻔히 보이는 결과는, 어디까지나 뒤따라 오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노력의 과정 속에서 얼마든지 더 값진 것들을 발견해 나갈 수도 있고 인생에 있어 발전시켜 나갈 만한 것들이 무엇인지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도 얻을 수가 있다. 그러니, 어느 때이고 단순한 결과로 인해 기죽을 필요가 전혀 없다. 목표가 없는 것보다야 목표를 가지고 똑바로 응시하며 나아가는 삶이 더 빛나는 법이지만, 그보다 더 빛나는 삶은 그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고찰과 성찰을 거듭해 나가는 인생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KakaoTalk_20241123_000227626.jpg 당시 나의 공부 시간을 함께해 주었던 고마운 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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