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지기는 싫고 권리는 누리고 싶고

어딘가 잘못된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by 봉필


현재 대한민국은 동덕여대 불법 폭력 사태로 미디어가 도배되어 있는 상태이다. 꽤나 다년간 상징적인 이슈였던 '젠더 이슈'와 어느 정도 맞물려 있기도 하고, 여성의 인권 운동인 '페미니즘'이 조합되어 있어 그런 사실들만으로도 충분히 주목받을 만한데, '폭력적인 행위'까지 곁들여져 언론의 표적이 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최고의 조건들을 갖추었기 때문에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이기는 하다. 역시나 흔해빠진 비난의 말들이나 어느 한쪽을 옹호하는 의견보다는, 이런 현상들이 나타나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 좀 더 고찰해볼까 한다.


먼저, 그 이념이나 사상적 문제를 떠나 방법론적으로 동덕여대 시위자들은 명확히 잘못된 행위를 일삼고 있다. 학원 소유의 건물을 무단으로 점거한다거나, 학교 내 시설들을 파손하거나, 교내 거리를 락카로 훼손하는 행위 등이 그러하다.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사적 재산에 대한 불법적인 침해 행위는 용인될 수 없다. 오히려 그런 도가 넘는 행위들로 인해 그들의 사상이나 메시지가 사회 전반적으로 훼손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어떠한 긍정적인 부분도 없지만, 명확하게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에서도 응원을 보내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하다.


특정 사상이나 이념이 정당하다면, 그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정당하다는 식의 논리를 내세우고 있는데, 이는 상당히 위험하다. 그 두 가지가 별개의 행위라는 점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결여되어 있는 듯하다. 어떠한 생각이나 사상이 옳다고 해서 그를 위해 행하는 모든 일들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정당한 이념을 설파하기 위해서는 정당한 수단을 역시 사용해야 마땅하다. 자유주의를 수호하는 법치국가에서는 실로 당연한 이야기인 것이다. 자신의 의견이 옳다는 믿음 하에 다른 이의 의견을 묵살하고 강요하는 것은 민주주의라기보다는 특정 프로파간다에 의해 행해지는 독재에 가깝다. 기억하자, 목적과 수단은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 목적이 옳다고 해서 그 목적으로 인한 모든 수단이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이번 폭력적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은, 본인들이 주장한 목적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폭력 행위 그 자체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고 하는 것이지, 페미니즘이나 젠더 갈등적인 측면과는 하등 연관이 없다. 그저 그들이 불법 시위 간에 저지른 행위에 대해서는 법치국가의 국민으로서 마땅히 책임을 져야만 한다. 여성으로서 여대에서 교육받을 권리(이런 권리가 실질적으로 맞는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논외로 하고)를 위한 행위는 어디까지나 그런 법적인 책임 위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자신들은 모든 사람들이 적용받는 법으로부터는 예외적일 수 있는 자유를 원하면서, 누리고 싶은 것들은 원하는 만큼 누리겠다는 돼먹잖은 생각은 과감히 청산해야 한다. 책임 없는 자유는 방종일 뿐이다. 그리고 그런 방종이 만연한 사회는 언제나 혼돈만이 가득한 카오스가 되고 만다.


e2eadc01-d187-418f-8196-08dfcbe20bf4.jpg 동덕여대 사태 '뉴시스' 기사 사진


이번 사태를 들여다보며 책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니, 문득 뉴진스와 어도어 간의 분쟁 문제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 어느 편에도 서고 싶지 않으며, 오히려 뉴진스의 음악을 자주 듣는 팬으로서 사태가 원활히 해결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다만, 책임에 대한 이야기만큼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민희진 전 대표의 행보를 들여다보면, 책임은 있는 힘껏 회피하면서 권리는 누리고 싶어 하는 모순적인 태도를 목도할 수가 있다. 그가 뉴진스와 이룬 업적에 대해서는 충분히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음악들을 만들어 대중음악과 회사에 큰 기여를 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다만, 그녀가 한 사람의 대표로서 자격이 있는가 생각해 보면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자회사 소속 아티스트들이 모회사로부터 보다 나은 관심과 가호를 받기 위해서는 대표의 중개자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때때로 의견 충돌이 일어나거나 직무상으로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불만을 표출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회사 방침에 의거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디테일한 부분은 외부자인 나로서는 알 수가 없지만, 어쨌든 그녀는 그런 부분에서 실패했고 모회사 경영진의 눈밖에 난 셈이다. 거기서부터 사실 모든 문제는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뒤에, 법적인 진위 여부를 떠나 자회사 경영진과 모회사에서 뉴진스라는 그룹을 빼내는 작당모의를 한 것은 사실이고, 그에 대해서는 명백히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고 할 수 있다. 어떤 모회사 경영진이 자신들의 회사 운영방침에 따라주지 않고 반발만을 표출하는 자회사 대표를 반가워하며 끌어안겠는가. 게다가 투자한 자본도 없이 성과 하나만으로 자신들이 일구어 놓은 것을 가로채려 한다면, 그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배반 행위에 해당하는 것이다. 하지만, 민희진 전 대표는 그런 사실들을 철저히 외면한 채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려 하지 않았다.


자신이 했던 작당모의나 잘못된 행위들은, 단순한 사담, 직장인끼리의 가벼운 농담, 아무 의도도 갖지 않은 떠가는 말들로 치부했고, 모회사 경영진들의 행위는 하나하나 모두 죄악시했다. 극한의 자기 합리화를 통한 명백한 흑백논리를 펼쳐댔다. 자신은 선이고, 모회사는 악이다. 그러니 자신이 곧 정의이다. 뉴진스는 자신과 함께 해야만 한다라는 꽤나 억지스러운 프레임을 만들어냈고, 생각보다 그 전략은 대중들에게 잘 먹혀들었다. 다소 의아한 결과이기는 하지만, 민희진 대표의 책임 의식이나 리더십에 대해서 나는 상당히 회의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다.


훌륭한 리더십은 뛰어난 팔로우십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한다. 잘 따를 수 있는 사람이 리더가 되었을 때에도 구성원들을 잘 이끌어가는 법이다. 그런 면에서 민희진 전 대표는 처참히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책임은 회피하면서 대표이사로서의 권리는 포기하고 싶지 않아 끝까지 항거를 하고 있는 꼴이니 말이다. 대표 이사로 남고 싶었으면, 모회사의 경영방침에 어느 정도 따라주는 태도도 필요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 최소한의 책임도 저버리고 자신의 과오도 인정하지 않은 채 권리만을 요구하는 모습은 마치 떼를 쓰는 어린아이와도 같아 보인다.


스크린샷 2024-11-27 191516.png 민희진 전 대표 관련 기사 캡처


최근 뉴진스 역시 내용증명을 통해 모회사에게 겁박 아닌 겁박을 내어놓았는데, 심히 안타까울 뿐이다. 자신들의 시너지는 민희진 전 대표가 내어준 결과라는 의견에는 동의한다. 다만, 모회사의 자본이 없었다면 본인들의 존재 자체가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그런 기반에 대해서 생각지 않고, 사실상 자신들이 을의 관계에 있는 계약에 대해 일방적으로 해지라는 말도 안 되는 표현으로 모회사를 겁박하는 행태는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서 권리만을 누리려고 하는 얄팍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이런 행태들이 유행하고 있는 원인은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용서와 관용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런 이야기는 한 유튜버가 언급했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의 잘못에 대해서 용서를 해주기보다는 싸잡아 비난을 하여 마침내 그 사람을 나락에 떨어뜨리는 과정을 더 선호하게 되는 기조가 팽배해짐에 따라, 쉽게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지고 반성하는 사람이 줄어들지 않았나 싶다. 기실 민희진 전 대표가 모든 잘못을 인정하고 기자회견을 시작했더라면, 뒤의 호소들에 사람들이 주목하기나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부정할 수 없기는 하니 말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수를 하기 마련인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여론이 너무 인색한 면이 없지 않다. 스스로에게 적용하는 만큼만 남들에 대한 잣대를 유지해도 꽤 괜찮은 사회가 만들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동덕여대 사진 출처 : 뉴시스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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