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럴 필요까진 없었잖아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는 표현이 이보다 잘 어울릴 때가 있었던가. 저녁 식사를 마치고 평화로운 밤을 보내고 있던 12월 3일 밤 10시 30분경 급작스럽게 속보가 흘러나왔다. TV화면에는 비장한 표정을 한 윤석열 대통령이 무어라 말을 하고 있었고, 그 얼굴 밑으로는 빨간 띠지로 꾸며진 커다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속보] 현 시간부로 비상계엄 선포', 이게 무슨 일이야. 아닌 밤중에 계엄령이라니.
*출처 : 뉴시스 기사
딱히 주목할 필요도 없기는 하지만 계엄령을 선포한 이유를 요약해 보자면, 야당인 민주당의 예산 폭거와 특정되지도 않은 종북 반국가세력들에 대항하기 위함이란다. 헌법상 적과 교전 중이거나, 행정사법기능이 군병력을 동원하지 않고는 이겨내기 힘든 상황에서만 발동할 수 있는 '비상계엄'을 선포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근거라고 할 수 있다. 명백히 납득이 불가능한 이런 명령이 힘을 가질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 국민들은 바보가 아니다. 역사 속 군사 정권에서나 있었을 법한 이런 비이성적인 행태가 현대에 와서 용납될 리가 없다. 곧바로 국회에 (담장을 넘거나, 온갖 인파를 뚫고) 출석한 190명의 의원이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통과시키며 사태는 3시간 여만에 일단락되었다. 대체, 왜 이런 일을 벌인 걸까.
탄핵이든 하야이든, 아니면 체포 구속이든 윤 대통령이 법적인 책임을 벗어날 길은 없어 보인다. 대통령이라는 직은 물론이거니와 터무니없는 권력 남용에 대한 대가를 톡톡이 치르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 되어버렸다. 그에 관해서는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들이 유튜브나 기사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으니, 그런 것들을 참고하기 바란다. 이 글에서까지 이미 예정되어 있는 뻔한 이야기는 남기고 싶지 않다. 지금부터는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을 더해보려 한다.
아직까지도 왜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 들어 집중 조명되고 있는 김건희 여사 관련된 비난들과 여러 잡음들, 그리고 날이 갈수록 떨어지는 정치적 입지로 인해 심한 압박감이라도 받았던 걸까. 법에 대해서 전혀 무지하지 않은 사람이 이런 이성적이지 못한 짓을 벌였다는 사실에 쉽사리 납득이 가지 않는다. 국회에서 해제를 요구하는 안건을 통과시키면 빼도 박도 못하고 자신의 정치적 입지는 좁혀지다 못해 사라져 버리고 만다는 사실은 법조계 전문가가 아니라 할지라도 관련 법안의 첫머리 한두 문장만 읽어봐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어떤 이유로 이런 결정을 하게 되었는지는 당분간 꽤나 큰 미스터리로 남을 것 같다. 정당하고 합법적인 절차를 무시한 채 자신의 의견만을 내세우는 이런 어린아이 같은 행태는, 권력자로서 보여줄 수 있는 최악의 모습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많은 사람들의 표현처럼 그저 순간의 해프닝으로 기록될 뿐인 이번 사태는, 전 세계적으로도 우리나라에 대한 하나의 역대급 망신으로 남겠지.
최근 들어 혼란스러운 정세가 더더욱 혼돈으로 치닫게 될 것이라고 본다. 이번 사태는 나에게 한 편의 끔찍한 호러 무비의 예고편과도 같았다. 이런 명확한 빌미를 제공하지 않았더라면, 정치적으로 탄핵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상태였다. 각종 비리나 루머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실제로 윤 대통령의 선언문에서처럼 민주당이 예산 폭거를 행하고 있는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이기는 했으니 말이다. 좀 더 차분하게 대처하는 방법도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런 식으로 한쪽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심각한 실책은 어느 면에서 보나 긍정적으로 평가하기가 힘들다.
정치적 전문가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는 정치관은 한 단어로 '균형'이다. 좌파와 우파, 민주당과 국민의 힘당, 다수와 소수, 그런 서로 간의 입장 차이에서의 균형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그 어느 쪽도 정치적으로 강하게 지지하고 있지는 않다. 그 두 집단의 존재 의의는 뚜렷하게 있으니, 어느 한쪽이 심각하게 무너지지 않는 선에서 지지와 철회를 반복할 뿐이다. 어떤 개인을 바라볼 때에 지나친 편견으로 바라보는 것을 현명한 처사라고 할 수 없듯이, 지나치게 한 쪽의 정치적 견해만으로 세상사를 바라보려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흔히들 진보가 옳다, 보수가 옳다 싸워대지만, 다 부질없는 짓이다. 상황이나 여건, 그리고 주체와 객체, 모든 것들을 총체적으로 따져보아야 옳고 그름 근처에 겨우 이를 수 있는 것이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이다. 그 복잡다단한 가치들을 하나의 정치 성향이라는 이유로 세상의 진리라도 되는 듯 믿고 나아가는 행위는 흔한 사이비 종교들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절대적인 선악의 개념이 없듯이, 전복당해 마땅한 정치 성향은 없다. 보수와 진보의 두 개념도 양립해서 나아갈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진정한 민주주의가 꽃피우는 것이지, 어느 한쪽이 완벽히 장악하거나 좌절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정의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디까지나 건전한 비판과 수용의 문화를 바탕으로 국회나 정치가, 그리고 나아가 사회가 발전하기를 희망할 뿐이다. 보수와 진보, 그 어느 쪽의 가치도 나는 필요하다는 입장.
다만, 최근 우리나라 사회를 뒤덮은 '감성주의'를 심히 경계하고 있다. 상식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여러 사태들이 뉴스를 도배하고 있는 현 실태를 보고 있자면 참으로 개탄스러울 수밖에 없다. 책임은 지지 않고 자신들의 권리만 내세우려 하는 대학교 학생들부터, 각종 연예계의 사건사고들에서 감성에 지배당해 올바름을 대변하는 가치들이 심각히 왜곡되고, 또 훼손되고 있는 것을 지켜보면서 참담한 심정을 금치 못하고 있는 요즘이다. 감성이 메마르다 못해 사라져 버린 사회도 그것대로 문제가 되긴 하지만, 모든 일들에 감성을 들이대며 감정에 호소만 하는 사회 역시도 올바르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해 상식적인 수준의 정치나 사회로 나아가는 쪽을 마음속으로 응원해 왔었다. 상식이 바로 선 상태에서 감성과 이성을 골고루 섞는다면 보다 조화롭고 평화로운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에, 제대로 된 근거나 합당한 이유 없이 남을 비난하거나 자신의 권리만을 주장하는 행태들이 사회 전반을 덮어버린 요즘의 세태가 나에게는 반갑게 느껴질 리 만무하다.
그래서, 무작정 끌어내리기 식의 억지 주장은 달갑지가 않다. 계엄 사태가 있기 전까지 민주당에서 부르짖었던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안건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혼란만을 부추기고 있다는 느낌이 상당히 강했다. 그를 정치적으로 옹호한다기보다는, 생떼에 가까운 민주당의 의견을 지지하지 않았을 뿐이다. 분명 나름대로 정치적인 책임을 질 만한 사건들이 있었고,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정도는 인지하고 있지만, 그 책임이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를 내려놓을 정도라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았을 뿐이다. 애초에 지금의 정권을 무너뜨린 뒤 대체할 만한 위인들이 있는가 하는 물음에 제대로 된 답변이 떠오르지 않으니, 그저 무너뜨리고 보자는 식의 근거 없는 탄핵을 지지하기는 나로서 상당히 어려운 것이었으니 말이다. 사태가 벌어진 지금은, 탄핵이든 하야이든, 그저 정해진 수순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을 할 뿐이다.
당분간은 온 나라가 시끄러울 것이다. 그저, 이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이 시기가 최대한 빨리, 그리고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며 지나가기를 소망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