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안정된 월급 앞에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취준생이 되었다고 하지만 사실 제대로 회사를 지원한 경험은 없었으니 처음이나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수능 준비를 하면서 세상에는 SKY 말고도 다양한 대학교가 많다는 걸 깨닫는 것처럼,
취업 준비를 하게 되니 유명한 대기업 말고도 세상에는 정말 많은 회사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 많은 회사를 무차별적으로 다 지원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름의 기준을 정했다.
첫째, 관심 직무 (데이터) 관련 사업을 하거나 부서가 존재하는 회사
둘째, 그렇지 않더라도 언젠가 그런 사업을 할 것 같은 회사
셋째, 그리고 이왕이면 대기업
지금 생각하면 여기서 관심 비즈니스를 조금 더 한정하고 갔다면 좋았겠지만, 당시에는 그럴 여유까지는 없었다.
당시 데이터 관련 인력을 뽑기 시작하는 움직임이 생기기는 했지만 아직 폭넓게 드러나고 있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위와 같은 조건을 정하고 서류를 쓴 곳이 30개가 되지 않았다. 보통 이력서를 수십 개는 넣는다고 하는데 배가 불렀을 수도 있겠다.
공백이 많았던 이력서도 채웠고 인턴도 했으니 그래도 괜찮지 않겠냐고 생각했지만 역시 취준의 문턱은 서류부터 넘기가 쉽지 않았다.
서류에서 계속 고배를 마셨다. 이렇게 떨어지고 속상할 때 가장 효과가 있는 건 바로 다른 서류를 지원하는 일인데 원하는 조건의 공고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공채 지원을 시작하고 초반에 우수수 떨어지고 나서야 겨우 한두 개씩 합격 연락이 왔다.
그래도 일단 서류 통과를 했다 싶으면 인적성 시험은 다 통과하고 면접까지 갔던 게 다행이었다.
그렇지만 최종 합격까지 살아남은 건 오직 한 개의 회사뿐이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내가 원하는 직무 관련 사업을 크게 하고 있지는 않아 보이는 회사였다.
그래서 최종 합격 통보를 받고 마지막으로 고민했다. 만약 가지 않으면 다시 취준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자신이 없었다. 다시 취준을 한다고 원하는 직무 관련 공고가 갑자기 늘어날 거란 보장도 없고, 이미 졸업을 미룬 상황이기도 했다.
우선 합격한 회사에 입사를 하자고 결심했다.
원하는 일과는 거리가 멀어질 거라고 예상했다. 그래도 하면서 적응해보고 정말 아니다 싶으면 팀 이동을 선택하거나 퇴사하고 대학원을 가자고 다짐했다.
그렇게 최종 합격한 회사에 입사했고, 예상했던 것처럼 원했던 업무와 180도 다른 보안 시스템 운영 업무를 맡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