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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쓰북 Sep 03. 2022

5. 회사 일은 혼자 공부해서 시험보는 것과는 다르다

열심히 준비한다고 좋은 성적이 나오는 것만은 아니더라

인도에 출장을 세 번 다녀오면서 진행했던 업무의 성과는 솔직히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물론 내가 출장을 갔던 업무의 목적은 PoC로, 일종의 가능성을 보기 위해 진행한 부분이기도 했지만 그게 연속성을 가지고 이행되지 못한 건 지금도 아쉬움이 있다.


내가 맡았던 업무를 조금 더 상세하게 이야기하자면 현지의 데이터를 활용해 예측모델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런데 현지의 데이터는 국내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처리해야 할 요소가 많았고, 의미 있게 쓸 수 있는 데이터도 많지 않았다.

데이터에 관한 배경 지식을 얻는 과정에서의 인터뷰도 순탄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맡겨진 일이고, 도저히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고서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서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고객사 담당자와 머리를 싸매며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문제가 풀리지 않는 순간에는 조금 내려놓고 퇴근한 후에 휴식을 취하고 내일을 기약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끝까지 붙들고 있다가 11시가 넘어서 퇴근하고 자정에 도착하면 바로 눈을 붙였다. 

혼술이나 야식으로 스트레스를 풀 생각도 하지 못했다. 무조건 일찍 일어나 출근해서 다시 일을 붙잡아야만 했으니까.

그래서 팀 워크숍 1박 2일 행사 때도 토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집에 가서 몇 시간 쉬고 바로 출근해서 일했던 기억도 있다.


예측모델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에 필요한 데이터의 형태를 설계하고, 그에 맞춰서 각 시스템의 데이터를 조합해야 한다.

겨우 데이터를 짜 맞춰서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통해 예측 성능을 체크하는데 결과는 나빴다. 

처음부터 당연히 좋을 수 없기에 성능을 올리려고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다행히 조금씩 성능은 개선되었지만 결국 일정 한계선에서 더 오르지는 않았다. 나쁘지는 않지만 추후에 더 개선은 필요한 정도의 성능으로 마쳤다.


이제 업무를 마무리해야 하는 때가 왔고, 인도로 마지막 출장을 다녀왔다. 그런데 마지막 출장에서 또 확인해야 하는 일들이 발생했다.

그래서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바로 일찍 회사로 출근해 하루 종일 바쁘게 업무 처리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분명 마지막 출장을 다녀왔음에도 여전히 바쁘고, 심지어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시간이 7시 가까이 되어 있었다. 

뒤늦게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회의감이 파도처럼 나를 덮쳤다. 분명 잘해보자고 나름 최선을 다했는데 뭔가 잘한 건 없다. 출장을 다녀왔는데도 이렇게 야근을 하고 있는 게 싫었다.

그런데 그 회의감에 사로잡혀있을 시간이 없었다. 해야 할 일은 남아있었기에, 나는 저녁이라도 먹고 오자는 생각으로 사무실을 잠시 나왔다. 갑자기 따끈한 라면과 김밥 한 줄이 당겼다.


그리고 사무실 밖으로 나오자마자 팀장님을 만났다. 다른 팀장님들과 같이 일찍 1차로 반주를 하신 후에 이동하시는 상황이었던 것 같다.

저녁을 먹으러 가냐고 물어보셔서, 김밥에 라면 먹으러 간다고 하니 그러지 말고 비싼 거 챙겨 먹으라고 만류하셨다. 

나는 진짜 그게 먹고 싶었는데... 결국 근처에 순대국밥 맛집으로 가서 저녁을 해결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래도 다행인 게 배를 든든히 채우니 부서졌던 멘털의 조각이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이때다 싶어서 다시 열심히 일했다.


밤 10시가 넘었을 때 겨우 한숨을 돌리고 이제 마무리는 내일 와서 해도 되겠다고 생각한 순간, 사무실 문이 열리고 팀장님이 들어오셨다.

팀장님은 아까 나를 만났을 때 왠지 마음에 걸렸다고, 늦게까지 일을 할 것 같아 신경이 쓰여서 들렀다고 하셨다.

그때 팀장님한테 말씀드렸다. 자꾸 이렇게 야근하게 되는 건 내가 무능해서 그런 것 같다고. 그런데 이렇게 붙잡으면서도 성과가 좋지 않을 것 같아 죄송스럽다고.

나의 말을 가만히 듣고 계셨던 팀장님은 한숨을 쉬며 말씀하셨다.


"회사 일이 어디 시험공부를 해서 치는 것도 아니고, 혼자서 할 수 없는 걸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되게 만드는 게 회사야. 그러니 본인이 부담을 너무 짊어지지 않았으면 해."

"그리고 자네를 하루 이틀 본 것도 아니고 그동안 함께 했던 시간이 있는데 내가 모르겠어? 나는 본인이 생각하는 것의 80%만 하면 좋겠어. 아니, 70%만 해도 괜찮아."


그때는 그렇게 말씀해주시는 게 그저 감사했고, 큰 위로를 받았다.

그런데 그 말씀에 오랜 회사 생활에서 나온 노하우가 담겨있었다는 점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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