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우디아 피녜이로, 『엘레나는 알고 있다』
딸이 죽었다. 경찰의 수사 결과는 자살. 그러나 엄마는 이를 믿을 수 없다. 그녀는 진실을 추적하러 나선다. 파킨슨병에 걸린 육신을 약기운을 빌려 일으켜 본다. 아르헨티나 작가 클라우디아 피녜이로의 장편 소설 『엘레나는 알고 있다』(엄지영 역, 2023, 비채)의 줄거리다.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파이널리스트에 오른 작품이다.
작가를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는 두 가지다. 하나는 라틴아메리카 문학이다. 그녀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세계 문단의 주목을 가장 많이 받는 작가 중 하나다. 넷플릭스 영화화된 이 소설을 비롯해, 대부분의 작품이 영상화되었다. 전 세계에 번역 출간된 작품 수가 보르헤스와 코르타사르 다음으로 가장 많다. 또 다른 키워드는 페미니즘 문학이다. 그녀는 여성인권 운동가이자 페미니스트다. 보수적 가톨릭 문화권인 아르헨티나 사회에서, 그녀의 문학은 임신 초기 임신 중지 합법화 및 여권 신장에 기여하였다*.
이 소설은 추리 소설이자 여로(旅路) 소설이다. 주인공 엘레나가 딸 리타의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자신을 조력해 줄 또 다른 여성 이사벨을 찾아가는 하루의 이야기다. 리타는 파킨슨병, 그것도 파킨슨플러스**를 앓고 있는 엘레나의 간병을 혼자 감당하며 그녀에게 수족이 되어준다. 엘레나는 딸을 자기만큼 아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다. 엄마니까. 그래서 리타가 비 오는 날 성당 종탑에서 목을 맸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평소 비 오는 날엔 피뢰침이 무서워 성당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던 리타였다. 더 이상 엘레나는 공권력에 기댈 수 없다. 그리하여 사적인 조력자를 찾아간다. 그녀에게 ‘빚’이 있는 사람, 이사벨이다. 과거 엘레나 모녀는 이사벨의 낙태를 막아줬다. 과연 엘레나의 계획은 성공할 수 있을까?
누가 리타를 죽였나? 이 질문은 이렇게 고쳐 읽는 것이 좋다. ‘무엇’이 리타를 죽였나? 작가는 ‘강요된 모성’이 죽였다고 말한다. 선택이 아닌 강요에 의한 모성은 한 여성의 삶을 앗아가 버릴 수 있다. 리타는 생애 내내 모성을 강요받는다. 그녀는 불임의 몸이 되면 안 된다는 이유로 갖은 검사에 시달렸다. 그리고 이제는 “네가 어머니의 어머니가 될 차례(p.233)”라는 말을 듣는다. 이사벨도 마찬가지였다. “난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아요(p.182)”라며 울부짖었지만, 원치 않는 결혼, 임신, 출산, 육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들은 사회가 책임을 방기한 상황에서 돌봄 노동에 시달리는 여성들을 상징한다.
모성은 어떻게 강요되는가? 예컨대 이런 것이다. 리타가 평생 비 오는 날 성당을 두려워하게 된 이유는 단순했다. 아버지가 어린 시절 무심결에 던진 ‘벼락 맞는다’는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사실도 아닌 사소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겐 평생의 행동 양식이 된 것이다. 모성도 마찬가지다. ‘모든 여성은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 이 거짓 명제는 많은 여성들에게 어린 시절부터 스며든다. 종교, 사회, 남성, 심지어 같은 여성으로부터. 그리고 생의 굴레로 작동한다. 이는 너무나도 일상적인 차원에서부터 부지불식간에 일어난다. 그래서 엘레나도, 즉 엄마도, 모른다.
“당신은 제 몸을 이용하려고 오신 거잖아요(p.214).” 이사벨이 엘레나에게 던지는 말이다. 이 말은 소설 밖 우리 현실에서도 유효하다. 출생률과 가임기 여성 수를 공공기관별로 공개하는 방안이 기획재정부에 의해 추진되었다고 한다***. 이는 소위 일・가정 양립을 위한 방안이었다고 하지만, 여성을 출산과 돌봄의 도구로만 바라보는 시각을 반영한다. 이 소설은 이러한 모성의 강요를 직시하고, 모성 신화를 해체하도록 해 준다. 그리고 돌봄의 짐은 더 이상 여성의 몸을 이용해서가 아니라 우리 공동체가 함께 져야 한다고 말한다. “마치 거울처럼 독자들에게 우리가 사는 사회의 문제가 뭔지 비춰주고 변화의 필요를 느끼도록 하는 게 문학의 힘이죠.****” 작가는 자신의 이 말을 이 한 권의 소설로 두말할 나위 없이 증명했다.
*출처: 한국일보(2024.09.08.), "'행동하는 소설가' 아르헨티나 피녜이로 "문학의 힘은 혁명 아닌 점진""
**파킨슨병 증상과 함께 술 취한 사람처럼 걸음을 걷는 실조증, 혈압이 불안정한 자율신경장애, 기억장애나 환시, 소변을 잘 가리지 못하는 증상 등을 동반한다. (원문 주, p.227)
***출처: 경향신문(2024.01.14.). “‘공공기관별 가임기 여성수’ 공개하라니···아직도 이런 발상하는 기재부”
****출처: 한국경제(2024.09.08.). “"문학의 힘은 독자들에게 사회 문제를 비춰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