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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레국화 Nov 21. 2023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하여

우밍이, 『도둑맞은 자전거』

전쟁 때 폭격으로 왼쪽 귀가 거의 들리지 않게 됐지만 나는 지금도 밤이면 코끼리 떼 소리를 듣는다. (...) 버마의 우기는 한 번도 내 마음을 떠난 적이 없다. 아마도 그 때문에 이후의 삶이 현실감이 없는, 한바탕 꿈처럼 느껴진 것 같다.(p.279)     


전쟁아버지 세대에 남긴 상처를 추적하는 아들 세대 이야기. 대만 최초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후보에 오른 우밍이의 장편소설 『도둑맞은 자전거』(허유영 역, 비채, 2023)다. ‘마음껏 사랑할 수도, 마음껏 애도할 수도 없었던’ 아버지의 가려진 시간들이 자전거를 매개로 소환된다.


이 소설의 화자는 ‘샤오 청’이라는 이름의 소설가다. 그의 아버지는 약 20여 년 전, 일터이자 아홉 식구의 집이었던 타이베이 중화상창(中華商場) 건물이 철거된 어느 날 ‘행복표’ 자전거와 함께 사라진다. 청은 한 자전거 수집가를 통해 아버지의 것으로 보이는 자전거를 찾는다.      


청은 그간 자전거가 거친 주인들과 관련 인물들을 찾아다닌다. 그는 ‘압바스’와 ‘사비나’를 만난다. 이들 셋은 모두 태평양 전쟁의 영향에 있던 부모를 둔 전후(戰後) 2세대 예술가다. 청의 부친은 일본 전투기 공장에서 소년공으로 일했다. 압바스와 사비나는 각각 종군 사진기자와 소설가를 꿈꾸며 부모 세대가 겪은 상처를 더듬어 간다. 청은 전쟁 1세대 ‘스즈코’와도 만난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의 ‘행복표’ 자전거의 마지막 흔적을, 인간사를 넘어 대자연에까지 새겨진 전쟁의 상흔을 마주한다.


자전거는 희망의 상징이다.

시대의 기억이 망가지고 버려지지 않기를 바라는 희망. 이 희망을 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덕에 자전거는 전쟁 1세대에서 2세대로 넘겨져 보존될 수 있었다. 그리고 사비나가 털어놓는 전쟁의 이야기가 그녀의 아들인 전후 3세대 청청의 귀에 가닿을 수 있었다. 그래서 자전거 수집가의 입을 빌린 이 말은 실은 저자의 메시지다.

   

요즘은 이런 오래된 철마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이것들이 곧 거리의 야사이며, 지금 내가 거두지 않으면 이내 사라져 버릴 것이고 그것은 곧 그 시대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사라진다는 뜻이라고.(p.158)


자전거는 역사의 삐걱거림을 고치겠다는 인간 의지의 상징이다.

그래서 아버지의 ‘행복표’ 자전거를 수리해서 타는 청의 모습은 이 소설을 지배하는 거대한 은유다. 부모 세대가 남긴 서사의 불완전함을 채우려는 열정이 결국 우리 세대의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소설에 녹아있는 대만의 어두운 역사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소환하며 국경을 초월하는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일치(日治) 시기’로 불리는 일본 식민지 시기, 광복 후 시민들이 대량 학살된 2・28사건 등은 해방 전후 격랑의 우리 현대사를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태평양 전쟁과 6・25 전쟁을 겪으며 무참히 죽어간 창경원의 동물들까지도. 중화상창이 철거되고 이후 가족과 이웃 공동체가 해체되는 대목은 청계천 개발의 역사와 닮았다. 많은 소상공인들이 밀려난 도시 개발의 그림자다.      


저자는 대만의 근현대사에서 의도적으로 지워진 이들의 목소리를 발굴하는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1971년생인 그는 대만 권위주의 정부 집권기의 문학, 역사 검열 속에 성장하였다. 그리고 스스로를 “글쓰기를 통해 과거에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일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평범한 사람”(p.459)이라 칭한다. 은폐되었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그의 치열한 문학적 노력은 아버지의 상처를 이해해 나가는 청의 끈덕진 노력에 그대로 묻어난다.      


이 소설은 독자에게도 우리 시대의 노력을 포기하지 말자며 다독이는 듯하다. 윗세대의 집단 기억에 남은 ‘코끼리 떼 소리’를 이해하기 위한 바로 그 노력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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