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불공평하게 만들어졌다는군.(p.29)
1979년 발간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윤성원 역, 문학사상, 2004)는 젊은 날에 누구나 느낄 법한 생의 ‘불공평’과 ‘불가해성’을 다룬다.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 그리고 고통과 행복 ― 그 사이에서의 방황 말이다.
이 소설에는 ‘날 것’으로서의 하루키의 젊은 날이 담겨있다. 전업 작가를 꿈꿨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던 그는 스물아홉이 되던 해에 ‘정말 불현듯 쓰고 싶어 져서’ 이 소설을 썼다고 밝힌다. 20대 초반, 대학가를 휩쓸었던 68혁명을 통해 기성의 세계와 권위주의에 맞서보았던 하루키. 그의 젊은 날은 그와 동갑인 스물한 살의 주인공이 겪는 여름의 절정과 끝에 반영되어 있다.
이 소설은 68혁명이 힘을 잃어가던 1970년 일본, 주인공 ‘나’가 대학의 여름방학을 본가에서 보내며 겪는 18일간의 이야기다. 그는 ‘쥐’라는 별명의 친구, 그리고 레코드 가게 점원인 ‘그녀’와 교류한다. ‘나’와 ‘쥐’는 각자 학생 운동에 투신했지만, 투쟁의 동력은 식고 함께 했던 친구들은 흩어진다. ‘쥐’는 대학을 중퇴한 후 소설을 쓴다. ‘나’ 역시 쓰고 싶은 것이 있지만 뜻대로 되질 않는다. ‘그녀’는 ‘나’가 ‘쥐’와 함께 자주 가던 바에서 우연히 만난 여자다. ‘그녀’는 내면의 상처를 ‘나’에게 털어놓으며 가까워지지만, 방학이 끝날 무렵 홀연히 사라진다.
하루키는 공평무사하며 이해 가능한 세상과 결별하던 청춘의 순간들을 감각적으로 포착한다. 유년 시절, 놀이를 할 땐 승자와 패자가 뚜렷하게 나뉘고, 시험을 볼 땐 정답과 오답이 흑백으로 나뉜다. 스무 살 무렵부터는 그렇지 않다. 사랑하지만 돌연 이별할 수 있다. ‘그녀’가 떠나갔듯이. 어떤 죽음은 예고도, 인과도 없다. ‘나’의 전 연인의 죽음이 그러했듯이. ‘시절 인연’이라는 형용모순이 성립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경찰에게 맞기를 불사했을 정도의 열정과 이상을 공유했던 친구들과도 멀어졌으니.
십 대 무렵이었을까, (...) 조금만 약삭빠르게 굴면 세상은 내 뜻대로 되고, 모든 가치는 전환되고, 시간은 흐름을 바꾼다……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것이 함정이었음을 깨달은 건, 불행하게도 훨씬 나중의 일이다.(p.14)
하루키는 말한다. 인간은 삶의 불공평과 불가해성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지만, 그 속에서 행복의 미학을 발견할 수는 있다고. ‘쥐’는 세상의 관심을 받지 못할지언정 강한 인간이 되길 선택하며 자신만의 소설을 꾸준히 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데뷔작을 쓰지 못한 8년간의 슬럼프 속에서도, 하찮은 풀을 되새김질하며 생명을 이어가는 소를 기억하며 스스로 행복한 인간이 되길 선택한다. 하루키가 후일 만든 단어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과 연결된다.
다만 하루키는 ‘가르치려’ 하지는 않는다. 젊은이들이 방황 끝에 얻는 결론보다는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에 소설의 방점을 찍는다. 여기에, 은유와 중층적인 서사, 현실과 초현실을 모호하게 오가는 묘사 등과 같은 그의 소설 작법도 한몫한다.
그저 바람을 맞는 것이 아니라, 바람의 노래를 들으라는 것. 기성의 가치관과 무관하게 각자의 삶의 의미를 스스로 찾으라는 것. 이 소설은 지난 40여 년 간 구축되어 온 ‘하루키 월드’를 관통하는 메시지의 탄생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