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영어 교사 Jan 14. 2021

친구의 아이 05

진영 1월 2일 part 2.

행정실의 잠금 버튼이 제대로 눌러졌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고 진영은 문에 등을 기대고 섰다. 숙취가 거의 사라진  속을 혀로 핥으며 소리에 집중한다. 혹시라도 일을  마치기 전에 누가 들어오기라도 하면 끝장이다. 사방팔방으로 튀어 오르려는 가슴을 손으로 간신히 누른  한쪽 벽면에 있는 직원용 캐비닛을 열어보기 시작한다.

오늘 학교에 도착해서 자리에 앉았을 때까지만 해도, 아니 본관 건물로 들어서는  순간까지도 이럴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던 터였다. 본래 계획은 입학 부서의 부장에게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학교 재단과 연이 닿아 있는 그녀에게는 입학생 하나를 추가로 받아주는 것쯤이야 쉬울 테니까. 하지만 부장의 문을 두드리려던 순간 진영의 의식은 보다 확실한, 틀림없이 은영을 입학시킬  있는 길로 그를 잡아 이끌었다. 발걸음을 옮겨 행정실로 들어선  순간부터 진영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소명(召命) ‘은영을 무조건 데리고 오는 이었다.




잠금장치가 채워지지 않은 캐비닛들을 하나하나 열어보던  진영의 눈에 두툼한 서류 뭉치가 들어왔다.  집게로 고정된 서류 뭉치의  위 장에는 ‘입학 성적이라고 쓰여진 메모지가 붙어 있었다. 불합격된 학생의 서류도 있길 간절히 바라면서 그는 가장  쪽에 있는 지원자들의 서류부터 들쳐보기 시작했다. 다행히 모든 지원자들의 서류가 성적순으로 합쳐져 있었고, 얼마 지나지 찾아낸 은영의 지원서에는 중학교 성적이 굵고 검은 펜글씨로 박혀있었다. 196.3.
바로  책상에서 문구용 칼을 가져온 진영이 조심스럽게 글자를 긁어내기 시작했다. 사각사각 소리만 공간을 한동안 가득 메웠고 이후 수성 사인펜이 종이를 스치는 소리가 , 소리가 잦아든 책상 위에는 198.3점이라는 점수가 적힌 은영의 입학 지원서가 놓여 있었다.

지원서를 다시 서류 뭉치에 끼우고 집게로 단단히 고정한 뭉치를 캐비닛에 넣다 진영의 등에  줄기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종이를 넣고 캐비닛의 문을 닫는 그의 손에는 장갑이 씌어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칼을 꺼내 들고 숫자를 긁어내기  무의식적으로 장갑을 벗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이미 상황은 돌이킬  없는 지경까지  있었다.  숨을 쉬며 다시 장갑을 끼고, 캐비닛 손잡이와 , 사인펜을 대충 닦아내고는 서둘러 교무실로 돌아갔다. 또다시 쿵쿵거리며 뛰는 심장 소리에 맞춰 걸으면서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느끼려 애썼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문제없잖아? 

자리로 돌아와 이런저런 생각에 몸을 흔들다 책상  달력에 표시된 붉은색 동그라미에 시선이 갔다.

‘1 14 신입생  배치고사 - 전교사 출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배치고사를 치기 전까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은영을 예비 신입생으로 바꿔 놓아야만 한다는 생각에 마음 가짐을 다시 잡아본다. 진영은 다시 가방을 둘러메고 자리를 정리했다. 최대한 자신이 오기  그대로의 상태를 만드느라 애를 쓴다. 오늘 그는 여기에 오지 않은 것이다.



집으로 향하는 전철을 타고는 내려야  역을 서너  지나쳐 남천역에서 내렸다. 출구로 올라와 가장 먼저 눈에 띄는 PC방으로 향했고,  원의 선불 금액을 계산대에  던져버리고 가장 구석진 곳의 컴퓨터 앞에 앉았다. 어차피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까. 
컴퓨터의 전원이 켜지자마자 부산광역시 교육청 홈페이지를 검색했고, 민원을 넣을  있는 메뉴를 찾았다. 최대한 교사임이 드러나지 않게, 중학교에 다니는 여자 아이의 말투를 흉내 내가며  글자,  글자를 입력했다. 중간에 오타가 부분적으로 눈에 거슬리긴 했지만, 오히려  만족스러웠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경상 외국어 고등학교에 지원했던 학생입니다. 학교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고 인터넷 카페에서 입학 점수 커트라인을 확인했는대요, 아무리 생각해도  점수가 커트라인 점수보다 높은  같아서요 ㅠㅠ 교육청에서 학교로 한번 연락해주시면 정말 좋을  같아요!! 참고로  점수는 198 정도입니다. , 그리고  개인 정보는  지켜주세요. 감사합니다.>

얼른 컴퓨터를 꺼버리고 최대한 얼굴을 숙인  PC방을 나왔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해 배가 뒤틀리는 것처럼 고파왔지만 선뜻 식당에 들어서기가 망설여졌다. 전철을 타고 집으로 향하는 가슴이 뛰는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는  같았다. 집으로 들어가는  앞에서 심호흡을 하고 거실에 앉은 아내를    체하고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대체?’

뒤늦게 찾아온 죄책감이 그를 힘들게 했지만 조금만  힘을 내기로 한다. 진영은 휴대폰을 꺼내 문자 메시지를 입력한다. 은영에게 직접 전달하려고 했지만, 무언가 불법적인 일에 아이를 끌어들이고 싶지 않아 상우의 연락처를 검색하고, 전송 버튼을 눌렀다. 주사위를 던졌다. 아직  숫자가 무엇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알게 되겠지. 온몸을 피로로 칭칭 감은  같은 느낌에 씻는 것도 잊어버리고 깊은 잠에 빠진다.

<상우야  진영인데. 아무래도 뭔가 착오가 있었던  같던데? 오늘 학교 가서 은영이 지원서 봤더니 점수가 198점이더라고. 학교에서  연락갈꺼니까 은영이한테 전해줘, 전화  받으라고.>



매거진의 이전글 친구의 아이 0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