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늘 같은 온도로 유지되지 않는다.
"나는 특별히 사후에 또 다른 세계가 이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고요, 사람이란 어느 조건을 가지고 어느 상황에서 살아가건, 어느 정도로 공허한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인생에도 성질이라는 것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본래 허망하니 허망하다며 유난해질 것도 없지 않은가, 하면서요.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이 책 속 '사랑'이란
삶을 구원하지도,
허망함을 완전히 밀어내지도 않는다.
그저 허망하다는 사실을 알고도
곁에 남아 있는 태도에 가깝다.
은교와 무재의 관계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사랑의 모습과는 다르다.
격렬하지 않고,
확인되지 않으며,
끝내 명확한 말로 묶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감정을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이 둘은 분명 서로를 향하고 있다.
기대고, 기다리고,
서로의 삶을 건너뛰지 않는다.
다만 그 사랑은
뜨거워지기보다는
어떤 온도에서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사랑이 없어서 끝난 게 아니라,
같은 온도가 아니었기 때문에
끝내 이름을 붙이지 못한 관계처럼 느껴진다.
이 책 속 '사랑'이 애절히 다가오는 이유는
이 관계가 식어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애초에 사랑을
구원의 형태로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허망함이라는 감정을 제거해야 할 대상이 아닌
삶의 기본값처럼 받아들인다.
그래서 이 사랑은
무언가를 약속하지 않는다.
관계를 정립하지 않고,
영원을 말하지도 않으며,
확신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 대신
지금 이 삶이 허망하다는 사실을
서로 알고 있다는 점에서
묘하게 단단하다.
어쩌면 은교와 무재는
사랑해서 허망함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허망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사랑을 과장하지 않는 사람들 인지도 모른다.
사랑을 말로 증명하지 않고,
온도로 고정하지 않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곁에 남는 선택을 한다.
그렇기에 소설 속 사랑은 쉽게 타오르지 않으나,
쉽게 식지도 않는다.
사랑은 늘 같은 온도로 유지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 온도가 낮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문장 속,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고백은
우리가 흔히 하는 사랑에 대해 말하는 방식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신으로 바뀌는 게 아니라,
신념이 생기는 것도 아니라,
그저 이전과는 다른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지는 변화.
책에선
사랑이 삶을 특별하게 만든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 허망한 세계에서도
누군가를 완전히 지나치지 않고
살아가게 만드는 힘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