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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쓰는 것보다 쓰는 것이 훨씬

Day3 출근길 버스 안에서

by 이빛소금

오늘은 출근이 늦다.


오랜만에 아침에 늦잠을 자고 이제 출근하는 버스 안이다. 어제는 리더과정 37기 쌍둥이 동기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준 정리컨설턴트였다. 우리 집에 와서 갑자기 막 물건들을 정리하고 버리기 시작했다.

나는 계속

“아, 이건 안 되는데.”

“이거 선물 받은 건데.”

“이 편지를 버리라고?

라고 하면서 코쳐블하게 정리하는 데에 동참했다. 마지막에는 선물 받은 책이랑 저자에게 사인받은 책까지 버리시기에 뜯어말렸다... 크크


지난번에 스레드에

사회에서 만난 사람과 친구가 되는 것은 정말 소중한 일이라는 문장을 쓴 적이 있는데, 이들이 그렇다. 만나기 직전에 들린 단골 독립서점인 홀로상점에 가서 그들에게 편지도 야무지게 썼다. 창 밖을 보는데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었다.


내일은 휴무이고, 오늘은 출근하면 어제 자료가 부족해 못다 한 서류 작업을 해야 한다. 이 구간에는 시야안과가 있는데 친구 중에 시야라는 이름을 가진 애가 있어 항상 생각난다.


브런치에 어제도 쓰고 그제도 쓰고 오늘도 쓸 수 있다니....! 참으로 기쁘고 뿌듯하다.


노래는 어반자카파의 ‘stay’를 틀었는데 자동으로 재생되는 비슷한 곳이 마음에 안 든다. 아무래도 내 취향이 아니다. 가수는 누구인지 밝히진 않겠다. 하지만 쓰고 있으니 그냥 들어야지.

안 되겠다. 노래가 마음에 안 들어서 글이 안 써진다. 노트북을 접고 가방 앞주머니 속 핸드폰을 꺼내서 플로앱을 켜 라흐마니노프를 틀었다.


왜 라흐마니노프를 트냐고?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라는 책에서 어떤 작가님이 그렇게 한다 해서 따라 하는 거다.




작업실을 정리하고 칩거 생활을 하고 있는 요즘은 아침이 가장 중요하다. 운칠기삼보다 기칠운삼을 믿는 나는 아침에 기세가 좋아야 그나마 하루의 운을 기대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차에 기름을 넣어주듯 나의 원동력을 만들어주는 의식을 치러야만 한다. 그 의식이 우아해서 조금 부끄럽지만 괜찮다. 아침만 그러하니까. ‘아침은 우아하게, 밤은 천박하게.’ 나에게는 둘 다 중요한 가치다.


의식의 첫 행위는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트는 것이다. 왜 라흐마니노프냐고 묻는다면 정서를 선동하지 않는 솔직한 연주라 느끼기 때문이다. 바흐나 에릭 사티, 드뷔시도 좋아하지만 그들의 음악은 정서를 안정적으로 조장해서 우아함을 클리셰로 경직되게 하는 느낌을 준다. 치과나 카페에 온 듯한 느낌 금물, 클리셰는 더더욱 금물. 심오하고 깊이 있는 테크니션인 라흐마니노프의 손을 잡고 일어나서 부엌으로 가 주전자에 물을 끓인다. 물이 끓는 동안 간단한 집안 정리를 하고, 차를 고른다.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 전고운 이석원 이다혜 이랑 박정민 김종관 백세희 한은형 임대형



어떤 작가님은 전고운 영화감독님이다.


상도터널을 지난다. 오늘은 늦잠을 자고 일어나서 배가 너무 고파 밥을 차려 먹었다. 자취하고 혼자 살면서 대부분을 사 먹거나 시켜 먹거나 했는데 별로 안 좋다는 걸 최근에 깨달아서 최근에는 주로 차려 먹으려 노력한다. 버스 안에서는 요구르트 냄새가 난다. 왠지 오늘은 너무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거 같은데...? 괜찮다. 안 쓰는 거보다야 낫다.

어젯밤에는 동기들이 떠나고 적막하고 정리덜 된 집에서 꽤 외로웠다. 스레드에 외롭다 글을 올리니 스레드 친구분께서 내일은 외롭지 않을 거라고 하니 고새 안 외로워졌고, 노래를 추천해 주셔서 들으면서 정리를 했다. 한강대교를 지나는 중인데 안개인지 미세먼지인지 꽤 뿌옇다. 스친 분이 추천해 준 노래는 곽진언의 노래 두 곡이다. 지금은 제목이 생각이 안 나네.


찾아보고 왔다. ‘가을 노래’랑 ‘눈 내리던 날’ 이 두곡이다. 나도 답가로 센티멘털시너리의 H를 추천해 드렸다.


고개를 뒤로 젖혔는데 통증이 좀 있다. 어제는 덜 아팠는데 자고 일어났더니 또 엄청 아팠다. 자고 일어나서도 덜 아프려면 아예 안 아프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오늘은 9시 반 퇴근이고 내일은 휴무다. 이제 슬슬 글 마무리를 해야겠다. 여기서 마무리 지을까 아니면 잠깐 저장하고 이따 수정할까? 아마 이따 수정할 시간이 없을 것 같으므로 여기서 마무리.


오늘도, 나는 쓴다.

안 쓰는 것보다 쓰는 것이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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