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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울조 Mar 10. 2024

ADHD랑 조울증

뭐 이렇게 아픈 곳이 많지?

ADHD가 있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전 글에서도 말했듯이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낸 나는 ADHD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도 없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말을 가능하면 따랐지만, 그렇게 큰 사고를 쳤던 일은 없었다. 그런데 ADHD라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내 속에 응어리졌던 감정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아버지께 성적표를 가져가면 못 하는 과목에서 지적을 받았고, 고등학교 시절 야간자율학습을 어떻게든 빼서 학교 밖으로 탈출했다.



게다가 회사에 취직해서는 말귀를 못 알아듣는 직원이 되어 혼이 났다. 상사가 문서를 요약해서 보고하라고 하면 그 자료를 읽는데만 하루 종일 걸렸다. 컴퓨터 화면에 비친 글자들이 삐뚤빼뚤 하게 보이면서 아무리 읽으려고 노력해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상사가 지시를 하면 까먹기 십상이었고 지시를 내려도 이해하지 못했다.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산다고요?


직장 근처 병원을 찾아 의사 선생님의 면담만으로 나는 ADHD와 중증 우울증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렇게 콘서타라는 ADHD 치료약을 먹고 난 뒤 나는 내 눈에 맞는 안경을 쓴 듯이 세상이 선명해 보였다. 진작 안경을 맞췄으면 좋았을 걸 왜 평생을 고생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콘서타를 증량하면서 우울증의 증상은 조금씩 사라지고 회사에 잘 앉아 있을 수 있고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내가 되었다.



특히 일을 할 때 새로운 자극이 있으면 거기에 정신이 팔려 마무리를 못한 일들이 많았는데 약을 먹고 난 뒤 내 앞에 있는 일에만 집중하게 되었고 사람들이 하는 말들이 귀에 제대로 박히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아무리 노력을 해봐도 사람들의 말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빠져나가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나마 내가 괜찮은 사람인 척을 하려고 사람들의 말을 듣는 척하며 공감하고 있다는 리액션만 계속했다. 그래서인지 대화를 할 때 사람들은 나를 본인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이해해 줘서 좋다고 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모르고 고개만 끄덕이는 내가 경청을 잘하는 사람이라니 참 아이러니하다.



저는 우울증이 다 나았다고 생각했어요.

우울증 약을 확 줄이면서 나는 병이 발현되기 전 상태(즉 원래의 나)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ADHD약은 높은 용량으로 유지되었지만 이제 우울증은 다 나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예전에 열정 넘치던 내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고 우울증은 사라졌다고 확신했다. 의사 선생님과 면담을 할 적에도 무기력함이 사라지고 뭐든 하고자 하는 의욕이 넘치는 상태로 이제 이전의 나로 돌아왔다고 대답했다. 그러다 보니 똑같은 이야기를 매주 가서 해야 한다는 것에 짜증이 났다. 그 후로 병원에는 약만 타러 가는 수준에 이르렀고 진료를 받는 텀도 한 달로 늘리게 되었다. 우울과 무기력이 사라지고 집중이 잘 된다고 느껴지면서 모든 감정, 날씨, 집중력, 자신감, 에너지가 고조되고 있었다.



마지막 의사 선생님과의 면담에서 약을 끊고 싶다고 이야기했고, 의사 선생님은 차분히 나의 케이스는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고 답했다. 그게 단초가 되었는지 나는 그다음 날부터 병원에 가지 않았다. 그리고 퇴사를 했다. 그전에도 회사를 다니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거의 모든 회사원들이 회사를 다니기 싫어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 경우에는 좀 달랐던 것 같다.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너무 싫었고 속에서 참을 수 없는 짜증이 치솟았다.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회사에서 내 시간을 이렇게 많이 빼앗아 가도 되는지 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뿜어져 나왔다. 물론 이 시기에도(아직 병원을 다닌 시기) ADHD 약을 먹으면서 회사에서 업무 처리와 인간관계 등은 겉으로 보기에 좋은 편이었다.




조증인 것 같은데...

먹고 사는 생계를 위해서라면 회사를 다니고 월급을 받는 게 그 당시 나에겐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회사에 출근을 할 때마다 화가 났었다. 갑자기 사업을 해야겠다는 말을 가족들에게 매 번 이야기 했고, 사회초년생에겐 꽤 큰돈을 주식에 투자했고, 새벽 영어학원을 등록해 다니고, 점심시간에는 헬스장에서 운동을 했다. 퇴근을 한 후에는 친구들과 약속을 잡았고, 여기가 마치 미국이라고 된 것처럼 음식점 웨이팅을 할 때는 모르는 사람에게도 스몰톡을 건넸다. 평소에 쇼핑을 좋아하지도 않는데 갑자기 평상시엔 입기도 어려운 화려한 색의 옷들을 한꺼번에 사기도 했다. 수면 시간도 길면 6시간 짧으면 4시간 정도였다. 머릿속에 생각이 빠르게 돌아가고 그 생각들 하나하나가 정말 뛰어나고 비범한 생각이라는 착각에 빠졌다. 그리고 이런 증상들이 사그라들 무렵 나는 퇴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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