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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울조 Mar 02. 2024

다시 찾아온 우울과 무기력

우울증도 재발이 되나요?



항우울제를 일주일 정도 먹으면서 나는 이전보다 조금 더 나은 생활을 할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몇 주가 지나도 침대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고 수면 패턴은 완전히 뒤집어져 여전히 미국 시차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밤에 일어나면 라면을 하나 끓여먹고 침대에 누워 아침 해가 뜰 때까지 핸드폰으로 웹툰이며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현실을 도피했다. 동이 틀 무렵 내 정신 상태는 더욱 극악으로 치달았고, 정말 세상이 끝나길 간절히 빌었다.



우울증의 약효는 한달이 지나서야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머릿속에서 끊임 없이 떠오르는 부정적인 생각들과 불안이 좀 잠잠해졌고, 수면제를 먹으면서 올바른 수면패턴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거기에 더 큰 변화는 아침에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된 것이다. 약효가 잘 듣는다고 해서 내가 예전처럼 에너지가 넘치고 사고가 명료해지는 건 아니었다. 약은 내 머릿속에서 부정적인 생각을 지워주었을 뿐만 아니라 아예 아무 생각도 나지 않게 해주었다. 나는 두뇌에 마취주사를 맞으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무기력함은 좀 가셨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떤 활동을 하거나 움직일 힘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3달간 우울증 약을 먹었고점점 생기가 나타나면서 의사 선생님은 내게 완치 판정을 내렸다.



그 당시 나는 정말 우울증이 나았다고 생각했다. 기분이 좋아지고 에너지가 넘치고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취업을 하려고 이력서를 60군데 돌리고, 면접을 보러 다녔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집에서 벗어나 독립을 하고 싶었다. 이 시기에 나는 갑자기 머리 회전이 핑핑 빠르게 돌면서 천재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길을 걸을 때도 자연의 바람, 새소리, 꽃내음 등 모든 게 하나하나 생생하게 다가왔다. 나는 이때 이게 진짜 내 본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회사에 취업을 하고 수습기간이 지날 무렵 밀려오는 업무와 내 능력을 계속 시험해보며 자신의 권위를 세우려는 상사 덕분에 나는 다시 정신과를 찾았다. 회사 생활이라는 것이 일보단 인간관계로 오는 스트레스가 더 큰 만큼 매일 이런 상사를 본다는 게 나에겐 죽을 맛이었다. 갓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경험 없이 들어간 회사에서 모든 용어가 낯설고 분위기를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나의 상사는 술독에 빠져 사는 사람으로 일주일에 4일을 술을 마시고 출근하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은 거의 매일 아침을 숙취에 시달리며 오전 업무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거나 나에게 던져주고 책상 앞에 엎드려 자곤 했다. 주어진 업무를 다 하고 퇴근할 시간이 되어 인사를 하고 가려고 하면 이제야 멀쑥한 얼굴로 어떻게 자기보다 일찍 퇴근을 할 수 있냐며 추가 업무를 더 얹어주었다. 그 이후로 나는 한번도 제시간에 퇴근을 한 적이 손에 꼽았다. 거기에 더 최악인 것은 회식 자리에서 벌어졌다.



일주일에 한번 회식을 하며 술을 마시지 않는 내게 계속 강요를 했고 한번은 아예 소주가 가득찬 술잔을 내게 쥐어주며 이 잔을 원샷하지 않으면 자기의 명령에 불복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사람은 그 잔을 마시지 않고 버티는 내게 계속 폭언을 퍼부었다. 나는 머릿속이 멍해지며 갑자기 우울의 늪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내 앞에 앉은 상사와 나의 아버지가 겹쳐보였고 그들의 폭언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나를 보며 나는 더 무기력해졌다. 어떻게 회식이 끝난지도 모르게 나는 집에 도착했다. 그리곤 옷도 갈아입지 못한채 침대에 누웠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출근을 했고 그 상사를 또 봐야 한다는 생각에 회사 앞 지하철 역사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전동차가 지나갈 때마다 저 전동차에 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면서 회사 근처에 당일 진료가 가능한 정신과 의원을 찾아 예약을 했다. 일단 회사 안으로 들어가자 나의 상사가 출근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날은 온종일 퇴근 시간만 바라봤고 6시가 되자마자 짐을 싸서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나는 우울증 완치 판정을 받고 거의 1년만에 다시 의사를 찾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의사는 내게 다른 병이 같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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