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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울조 Feb 28. 2024

우울증이 맞네요.

정신과에 가면 나를 알 수 있을까?

정신과의원을 내 발로 찾아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이유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정신과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 때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정말로 정신과를 예약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이유는 지금 생각해 보면 어처구니가 없는 이유였다. 팔이 부러지거나 위경련이 생기면 병원에 가는 게 당연한데 대부분이 정신작용 즉 호르몬 불균형 등으로 인해 생긴 두뇌에 병이 생기면 병원 가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 나 또한 이런 바보 같은 편견을 가진 사람이었다.



마음에 걸렀던 편견을 밀어내고 나는 정신과를 무작정 찾아갔다. 첫 정신과 방문에 내가 크게 놀란 것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정신과에서 치료를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초진을 받을 수 없다는 것에 두 번째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가장 빠르게 예약을 잡을 수 있는 날도 최소 두 달 뒤였다. 나는 지금 당장 치료을 받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데 2개월을 기다려야 한다니 정말 절망스러웠다. 그래서 예약제가 아닌 당일 진료를 하는 정신과를 겨우 찾아갔다.



예약이 다 찬 첫 번째 정신과와 달리 당일 진료를 받는 곳은 정말 허름하고 90년대 낡은 병원과 같은 모습이었다. 정말 으스스한 곳이었다. 하지만 얼마 기다리지 않고 초진을 볼 수 있었다. 초진의 경우 간단한 설문지를 작성하게 된다. 우울증 척도 검사와 불안에 대한 검사, 두 개의 설문을 마치고 의사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처음 하는 일이 그렇듯 의사 선생님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하고 어떻게 나를 진단하는지 알 수 없어 인사만 하고 그냥 앉아있었다.




의사 선생님의 첫 번째 질문은 ’무슨 일이 있었나요‘였다. 그 질문에 나는 펑펑 울었다. 시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이전과 다른 나의 모습 등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말들이 줄줄 쏟아졌다. 한바탕 운 다음 조금 민망해져 의사 선생님께 죄송하다는 말을 했다. 나이가 지긋하신 의사 선생님은 내 말을 들어주긴 했지만 좀 거리를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힘드셨겠어요. 우울증이 맞는 것 같네요.“라는 의사 선생님의 무미건조한 말에 내 눈물은 쏙 들어갔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은 우울증이라면서 약을 처방해 줬다. 나는 누가 볼까 싶어 병원 내에서 받은 약을 가방 안에 숨겨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나는 법원의 재판을 받은 피고인처럼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우울증 확정판결을 받은 우울증 환자가 되었다. 나는 내 이마에 우울증이라는 낙인이라도 있는 듯 숨고 싶었고, 누가 나의 병을 알아볼까 두려웠다. 어제까지는 그냥 우울하고 무기력한 사람이었는데 정신과에 가서 약을 받은 오늘부터는 우울증 환자가 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내가 병 때문에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 것이지 이게 내 원래 모습은 아니라는 것에 안도했다.




내가 처음으로 우울증 진단을 받은 날이었다. 그날 이후부터 나는 병원과 약을 바꿔가며 내게 딱 맞는 약과

의사 선생님을 찾기 위한 여정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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