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의 시작 시점이 있을까?
그날, 나는 내게 우울증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26살, 나는 로스쿨을 가기 위해 가열차게 공부를 하고 있었다. 법학적성시험을 매일 풀다 보니 예전과 달리 내가 텍스트를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한 문단을 읽고 나면 무슨 내용인지 몰라 다시 첫 문장으로 돌아가곤 했다. 이런 증상이 계속되자 나는 난독증에 걸린 것인 줄 알았다.
게다가 머릿속에선 내게 부담을 주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로스쿨에 가기로 마음먹었다면 적어도 이런 대학 이상은 들어가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네 실력으론 변호사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다 등등. 아버지는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꿈꿔온 직업에 대한 갈망을 내게 쏟아부었다. 그리고 이런 압박에 나의 불안은 더욱 심해졌다. 참고로 말하자면 우리 집은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가정이라 아버지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불안이 극한으로 치닫고 몸과 마음 모두가 지쳐있었다. 머릿속에선 이 시험을 망치면 나는 끝이야, 이게 마지막 기회야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집중을 하려고 노력할수록 내가 읽는 글자가 한국어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이해되는 게 없었다.
시험 날, 청심환도 먹고 최대한 불안을 떨쳐버리려고 했지만 결국 시험은 망쳤고 집에 돌아오는 길 내내 울었다. 26살 한 없이 어린 청춘의 나이에, 바보같이 내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시험성적표가 나온 날, 나는 방 안에 틀어박혀 있다가 거실로 나와 아버지께 로스쿨 포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더는 못하겠다고. 아직 원서도 넣어보지 못하고 지래 짐작으로 포기하겠다고 하니 아버지는 크게 화를 내셨다. 그런 식의 태도라면 넌 사회 어딜 가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고 결국 낙오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 말에 이제껏 아슬아슬하게 버텨오던 ‘나’는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돌이켜보면 내 우울증과 불안 증세는 시험을 준비할 때부터 증세가 심각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낙오자라는 아버지의 말 한마디에 완전 K.O. 되어 더는 일어날 수 없었다. 우울증이 뭔지 불안이 어떤 증세를 가져오는지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방 안에 틀어박혀 3개월을 지냈다. 말 그대로 히키코모리에 가까웠다. 식욕이 사라지고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특히 아침이 되면 정말 죽고만 싶었다. 낙오자라는 말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고 그때마다 정신을 다른 곳으로 돌릴만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게 바로 잠이었다.(추후에 우울증에서 과수면 증상이 나타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게다가 수면패턴은 완전히 엉망이 되었다. 새벽 6시까지 깨어있다가 가족들이 활동하는 아침이 되면 잠을 잤다. 그렇게 4개월째 되었을 때 나는 병원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첫 우울증 진단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