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lamnjoy Feb 24. 2024

양극성장애(조울증)과 ADHD

정신병도 두 개가 같이 나타날 수 있나요?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나는 누구일까? 내게 역경과 시련이 올 때마다 나는 저런 심오한 질문에 휩싸이곤 했다. 도대체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떤 음식에 알레르기가 있고 입고 싶은 옷은 무엇인지. 이런 겉핥기식 질문을 하다 보면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가변적인지 깨닫는다.


7살에 제일 좋아했던 공룡 모형과 지구본을 지금은 좋아하지 않는다. 17살에 좋아했던 음악을 이제는 듣지 않는다. 27살에 소중히 여겼던 신발들을 이제는 신지 않는다. 참 신기할 노릇이다. 각각의 시기마다 다 나였고 내가 아니었던 적이 없다. 그저 몸이 성장하고 경험치가 조금 더 쌓였을 뿐이라는 점을 제외하곤 달라진 것이 없다. 진짜 나는 누구일까?




나에게 방황의 시기가 왔다.


나에 대한 정확한 정립이 되지 않아서인지 일정 시기가 되면 폭풍우가 몰아치듯 나에게 방황의 시기가 왔다. 잘 다니던 학교를 떼려 치우려고 하고 잘 다니던 직장을 떼려 치웠다. 그때마다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변명처럼 한 말은 "내가 진짜 원하는 건 이런 게 아니야"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진짜 나에 대해선 하나도 모르면서 저런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해 던진 말이 지금은 참 초라하게 느껴진다. 고맙게도 저런 순간이 올 때, 내가 삶의 방향키를 180도 돌렸을 때, 그저 나를 묵묵히 바라봐준 가족이 있어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게 병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에서 보자면, 그나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의 내릴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글을 쓰고 읽는 순간을 즐거워했다는 것이다. 이는 그나마 숨 막히는 삶에서 유일한 도피처가 되어줬다. 그리고 또 하나 나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나에게 양극성 장애(조울증)와 ADHD가 있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이런 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렇게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양극성 장애와 ADHD라는 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어찌 보면 앞으로의 글이 환자의 투병일지가 될지 모르겠지만, 내 기록들이 버티면서 살아갈 미래의 나에게 좋은 디딤돌이 되길 바란다.  




내 행동과 생각들이 병으로 인한 증상이었다.


ADHD 진단은 받았지만 아직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은 것은 아니다. 이전까지 다녔던 병원에선 나를 ADHD가 있고 중증 우울증이라고 했다. 그렇게 우울증 약과 ADHD 약을 먹으면서 아침에는 몸뚱이를 일으키는 것이 무슨 코끼리를 들어 올리는 듯했고, 저녁이 되면 모든 게 의미가 없다는 한탄만 내내 늘어놓았다.


또한, 식욕은 줄어들고 체중은 5kg 정도 줄어들었다. 회사에 앉아있는 내내 내가 왜 여기 있어야 하는지 퇴사하고 싶다는 말만 속으로 되뇌었고 이런 증상은 그나마 업무를 많이 할수록 줄어들었다. 그나마 업무가 많은 날은 딴생각이 나지 않아 다행이었지만 업무량이 적은 날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ADHD는 맞지만 양극성 장애는...


회사를 결국 그만두고 병원을 다른 곳으로 바꿨을 때 나는 검사(CAT 검사와 웩슬러 지능검사)를 제대로 받으면서 ADHD가 확실히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새로운 병원에서는 내게 조울증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ADHD에 양극성 장애가 같이 있을 경우 ADHD 특성이 양극성 장애의 조증과 유사할 수 있어 진단을 내리기 쉽지 않다고 들었다. 그래서 새로운 의사 선생님은 양극성 장애가 있는 것으로 보이나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 1년간 양극성 장애의 조증과 울증이 나타나는 순환을 살펴보고 진단하자는 말을 들었다.  




그래도 알게 되었으니 그게 어디일까.


어찌 보면 까다로운 병이 1개도 아닌 2개나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절망스럽기도 했지만 나의 병을 알았음에 감사했다. 그동안 나에게 왜 예전처럼 집중을 못하는지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스스로 채찍질하던 행위를 어느 정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물론 여전히 나에게 병이 있다는 것을 깜빡하고 스스로 자책을 하기도 한다).


정말 나를 찾아가고 나를 사랑하는 일은 남을 알아가고 남을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평생을 함께 할 동반자는 배우자도 부모님도 아닌 나 자신인데 어떻게 그렇게 나에게 가혹하게 대하게 될까? 앞으로의 글들에 내가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내용이 담기길 염원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