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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는 쓰지만 열매는 달다

브런치x어라운드

내 이야기를 전개하기 전에 초등학교 6학년, 그 어린 나이에 이미 깨달았던 명제를 하나 말해보자 한다.


피라미드 조직의 제일 윗사람이 바뀌는 건 내 인생에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특히 나 같은 유형에게는 더더욱 해당되지 않는 일일 터. 나는 철저한 '계'였다. 계가 무어냐고? 쉽게 말하겠다.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할 때의 그 '계'.


 본디 성격이 소심한 나는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갈 수 있는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는 급우들도 별로 없었다. 나에게 접근해오는 같은 반 사람들은(친구라고 말하기도 싫다) 순수한 의도가 아니었다. 그들이 나의 험담을 해도, 나쁜 별명과 행동을 취해도 나는 싫은 소리 못하고 부모님에게 말 한번 하지 못했다. 순순히 참고 견디고 남몰래 울었을 뿐. 이런 나 같은 유형이 바로 계다. 길가에서 삥을 뜯어도 저항 한 번 못하고 천 원을 건네줬던, 좋게 말하면 순둥이 나쁘게 말하면 요즘 용어로 찌질이라고 불리는 그런 계가 나였다.


 사실 이 얘기는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부모님도 모른다. 말해봤자 판도라의 상자 같은 것이라 이 곳에서 처음으로 털어놓는다.


 여하튼 이런 나날들 속에서 최고 갑인 교장선생님이 바뀌어봤자 나에게 돌아오는 건? 전혀 없다. '을'인 담임선생님이 그나마 나에게 영향을 미칠 뿐. 나를 괴롭히던 애와 삼자대면시켜 친하게 지내라고 강제로 화해시켰던 그 선생님이 내 인생을 좌지우지했을 뿐. 나는 그때의 트라우마로 아직도 사람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다. 반평생이 지난 지금도 나는 이 일을 못 잊는다.


 결론인즉 나는 윗사람에 대한 불신만 가득 찬 염세적인 사람이라 땡볕에 얼굴이 타가며 슈퍼 갑인 그분을 반길 이유를 전혀 찾지 못했다. 아니 반기기 싫었다. 소심한 불만의 표출로 입술을 오리처럼 삐쭉 내민 채, 뙤약볕이 내리쬐는 운동장 속에서 죄 없는 흙만 운동화로 '툭', '툭' 건드렸다.


"안녕하십니까? 새로 부임한 교장 강0구입니다."


 마이크로 말하는 흔하디 흔한 멘트가 내 귓가에 웅웅 울리는 느낌이 매우 불쾌했다. 나는 이때 예상했어야 했다. 그것이 바로 개고생의 시발점이라는 것을.




 슈퍼 갑으로 인해 등교 전 새로운 규칙이 생겼다. 그것은 바로 운동장 돌기. 나는 6학년이니까 여섯 바퀴를 돌아야 했다. 책가방을 싸고 등굣길을 걷는데 이대로 다른 학교로 가고 싶었다.


'전학생인 척할까? 순간이 잠깐 부끄럽지만 그래도 운동장은 안 돌아도 되지 않아도 된다!' 이런 이상한 상상을 하다가도 금방 체념하고 현실을 직시했다. 별 수 있는가? 초등학생이 어른 말씀 들어야지.


 가방을 던지고 축구를 하는 남자아이들의 공을 피해 다람쥐 쳇바퀴 도는 마냥 운동장을 뺑글뺑글 돌았다. 저 아이들은 아침부터 참 부지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부터 축구하면 지치지도 않나? 시시콜콜한 생각을 하면서.


주변을 살펴보니 운동장을 도는 척하고는 도망가는 같은 반 친구가 눈에 띄었다. 나도 같이 가고 싶었지만 동조하지 않았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심장이 쿵쿵쿵 뛴다. 우측 배가 아려온다. 나는 착한 아이니까 여섯 바퀴를 다 뛰었다. 온몸에 땀이 차는 느낌이 여간 불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그 후로 매일 6바퀴를 돌지는 않았다. 컨디션에 따라 달랐지만 그래도 최소 두 바퀴는 돌았던 것 같다. 나름대로의 양심을 준수하면서.


내가 운동장을 도는 것처럼 시간은 흘러 흘러 반년이 지났고 나는 졸업을 했다. 그렇게 슈퍼 갑은 내 인생에서 잊혔다.




중/고교와 초등학교의 차이점이라면 전자는 매년 체력장을 시행한다는 것이다. 체력장은 각 종목마다 일정한 기준에 따라 1점에서 5점까지 부여하고, 합산 점수가 높을수록 등급이 앞서는 방식이었다.


난 유연성 테스트는 항상 5점이었고ㅡ타고난 것 같다ㅡ철봉에서 버티는 것은 항상 점수가 낮았다. 3초 세면 툭 하고 떨어졌다. 굳이 비유하자면 홍시 떨어지는 마냥.. 단거리 달리기는 어릴 때부터 못했다. 운동회 때 항상 꼴찌를 도맡았고, 눈물도 많은지라 엉엉 울면서 달려오는 사진도 있을 정도였다. 체력장에서는 3점 정도를 얻었던 것 같다. 그 외에도 다른 종목이 있지만 친구들과 내가 가장 싫어하는 건 바로 오래 달리기였다. 땀이 비 올 듯이 쏟아지는 그 불쾌함과 다리의 모든 부분이 저려오는 근육통이 너무도 싫었다. 동시에 여러 명이서 뛰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기는, 이상한 승부욕도 평화주의자인 나에게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막상 뛰다 보니 계속 뛰어졌다. 나도 놀라웠다. 중간에 멈춘 것도 없이, 앞만 보고 뛰어다니니 달려지긴 했다. 중학교 시절 내내 5점 만점에 4점은 나왔다. 사실 그 이유는 잘 몰랐다. 나는 단거리에 비해 의외로 오래 달리기는 잘 하네?라는 생각만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뿐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역시 어김없이 오래 달리기를 시행했다. 다른 반 학생들과 함께 체육수업을 했던지라 체력장도 한꺼번에 시행했다. 이 때도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 승부욕을 마음속에 간직하면서 달렸다. 시간이 점점 지나니 내 앞에 있던 친구가 내 뒤에 있기 시작했고, 잘 달리던 친구가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동조하고 싶지 않았다. 내 길만 달리자 다짐했다. 한 번도 쉬지 않고 운동장 여섯 바퀴를 돌았다. 남학생을 제외하고 전체에서 한 자릿수 내로 일찍 피니쉬를 찍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나 자신이 그저 놀라웠다. 특출 난 것 하나 없는 내가 운동장을 상위권으로 돌았다니. 나보다 늦게 도착한 남학생도 있었다. 결국 체력장 점수도 1등급을 찍었다.




내 취미는 산 타는 것이다. 내리막길은 엄마의 스킬을 따라가지 못한다. 즉, 산을 많이 타 본 사람을 따라가지는 못한다. 하지만 진짜 체력이 필요한 산 올라타는 건 엄마보다 세 배는 빠르다. 신경 쓰지 않고 앞만 보고 오르다 보면 엄마와 저 멀리 거리가 벌어져 있다. 그러다가 십여분 간 엄마를 기다리고, 다시 산을 타는 과정을 반복하곤 한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오래 달리기에 상대적으로 강했던 이유는 선천적인 능력이 아니었다. 억지로라도 했던, 쓰디쓴 습관이 쌓이고 쌓여서 지금의 나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서 슈퍼 갑 교장선생님께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동시에, 수많은 어른들을 일반화하여 당신을 판단하고 폄하해서 죄송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는 것을 가르쳐준 당신이 진정한 참 교사라고, 지금 이 자리를 빌어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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