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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ologue

환청

오늘도 힘든 하루였다. 칼퇴에 감사하며 택시를 타고, 약간 떨어지는 비를 맞으며 집에 가는 길.


비를 맞아도 불쾌하지는 않았다. 일 하는 동안 이름 모를 수많은 균이 나에게 묻었을 거니까. 어차피 집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씻을 거니까.


멘탈이 붕괴된 표정으로 현관문을 덜컹 여니,

"현아, 치킨 먹어라."

반가운 엄마의 목소리 :)


세상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치킨!

내가 이걸 먹기 위해서 개고생을 했나 보다!


후다닥 씻고 맛있게 먹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를 위해 열심히 투표를 하면서. 그런데 그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슬슬 잠이 오기 시작한다. 뒷정리를 하고 방에 들어가려는 찰나에,


"띵-동-"


이상한 소리가 들려온다.

이건 우리 집에서 들릴 법한 소리가 아니다.

10초간 멍하게 있었는데, 갑자기 생각났다.


이건 바로 potable spo2(이동식 산소 수치 측정기) 기계 소리다.

abnormal 한 Heartrate(맥박)나 o2 sat(산소 수치)이 나타나면 울리는 그 소리다.

왜 이게 나한테 들리는 걸까?


사실 이런 적이 한두 번은 아니다.


벤틸레이터(소위 말하는 인공호흡기) 알람

CRRT(24시간 지속 투석) 알람

환자 모니터 알람

환자가 누르는 호출기 알람

밖에 있는 보호자들이 누르는 벨소리

카트 덜컹덜컹 끄는 소리

그 날 하루 종일 같은 목소리로 소리 지르는 환자 목소리

MRI 찍는 소리(환자가 obey되지 않고 계속 움직이는 바람에 나는 꼬박 30분을 MRI실 안에서 환자를 지켜보고 있었다. 찌렁찌렁 울리는 그 소리는 심히 끔찍하다. 난 그날 하루 종일 환청에 시달렸다.)

CT 찍는 소리


간호사는 퇴근하고도 병원에서 사는 기분이 들 때가 많다. 이런 환청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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