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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다

알코올 중독

내 글을 읽는 분들도 '살면서 반드시 이것만은 지키며 살아야겠다'는 결심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나의 생활신조 0순위는 바로 '되도록이면 술을 마시지 말자'다. 사실 '술에 입에 대지도 말자'였는데 친구를 만나거나 회식을 할 때 소량으로 마시는 술은 부득이하기에 내용을 바꾼 것이다.


술을 싫어하게 된 계기는 여러 가지 사건이 복합되어 있다. 첫 번째는 초등학교 2학년 때 보리차인 줄 알고 마셨던 맥주의 맛이 매우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구토하고 난리부르스를 떨었던 기억이 난다. 첫인상부터 별로였다. 참고로 고등학교 1학년 수학여행 때 반에서 술을 안 마신 사람이 6명이었는데 그중 한 명이 나였다. 당시의 상황을 되짚어보자면 여행 첫날에 잘 자고 있는데 '너네들도 나와!!!!'라고 큰 소리로 외치는 담임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에이 개꿈이겠지. 그런데 뭐 이런 꿈이 다 있냐.' 유쾌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고자 눈을 감으며 애써 잠을 청했다. 하지만 그건 실화였다. 부스스한 꼴로 눈을 비비며 거실로 가니 '너네들은 같은 반 친구들이 술 마시고 있는데 왜 안 말렸어?'라고 덤터기 씌어서 같이 혼났던 기억이 난다. 이상 억울한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 사춘기 고등학생은 또래 친구로 학교생활을 버티는데 나는 술 앞에서는 친구고 뭐고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만큼 술이 싫었다.

두 번째, 밥상머리 앞에서 아버지께 '너는 나를 닮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술을 마시면 얼굴이 빨개져. 이건 술을 분해하는 효소가 유전적으로 부족하대.'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왔다. 이 때문에 나는 술을 가까이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것의 정확한 기전은 대학교 3학년 때 정신간호학 파트 중 알코올에 관해 공부하다 보니 알게 되었다. 나는 숙취 유발 물질인 아세틸알데히드를 분해하는 효소가 남들보다 부족했던 것이었다.

세 번째 이유가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다. 처음 대학병원으로 실습 갔을 때 봤던 알콜성 간경변 환자들의 모습을 보고 술을 진정으로 피하게 됐다. 피부 전체에 황달이 있는 상태에다가 팔과 다리는 앙상히 마른 채 복수가 차서 배만 불룩 튀어나온 모습이었다. 초점 없는 눈빛으로 멍하니 병원 천장만 바라보는 장면을 보고 술이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한 하루에 소주 7병을 마신 환자가 30대 초반의 나이에 간경변 환자가 되어 남자 친구의 간호를 받고 있는 것을 보고 '알코올은 평범하고 소중한 일상도 빼앗아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술을 더 멀리하게 됐다. 남자 친구와 혼인신고서를 작성하며 활짝 미소를 짓던 그녀의 모습을 보고 축하보다는 그저 마음만 아팠었다. 그 모습을 보고 수없이 많은 감정이 들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참사랑이다. 트루  러브.', '저 남자는 여자의 말기 병도 사랑한다. 나도 저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저 남자를 십 년 전에 만나서 의지를 했더라면 이와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와 같은. 하지만 이건 나의 쓸데없는 상상의 나래일 뿐. 이 모든 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은 술이다. 그놈의 술. 사실 환자를 대상으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매우 실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모든 상황이 술과 관련된다면 예외다. 술은 절대로 마시면 안 된다.


알코올 중독을 개인적으로 정의 내리자면 '서서히 하는 자살행위'라고 말할 수 있겠다. 알코올 중독자는 코와 입으로 피를 토하고 배는 복수로 차서 숨을 헐떡이고 알콜성 치매로 가족도 알아보지 못한 채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자신의 몸이 그렇게 바뀌어간다는 것을 애초부터 알았더라면 알코올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그 정도로 알코올은 인간을 극악무도의 길로 몰아간다.


자신의 몸을 해하면서까지 그렇게 인생을 힘들게 했던 계기가 무엇이었을까? 요즘 성행하고 있는 알코올상담센터, 알코올 중독 치료도 중요하지만 이전에 술을 마실 틈을 주지 않는, 신바람 나는 사회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범 인류애적 상상도 해본다.




약 한 달 전, 한 남환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분과 나는 응급실에서 처음 대면했다. 응급실에 가서 수혈을 할 피를 함께 확인할 의사를 기다리는 틈에 얼굴과 공막에 황달이 가득한 사람을 마주하게 됐다. '저 사람인가. 응급실에 알콜성 간경화 환자가 있다더니.'


역시나 내 촉이 맞았다. 팩셀 사인을 받고 후다닥 부서에 들어가니 그분이 침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머리 전체에 있는 흰머리가 희끗희끗해 60세는 넘어 보였는데 우리 엄마 뻘이었다.


부인의 옆에는 열 살 배기도 안 된 아이가 있었다. '손자인가?'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열세 살 안 되는 아이는 면회가 불가능하다는 내 말에 하나뿐인 아이라 제발 면회만 시켜달라고 사정하던 모습이 영락없는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윗선의 허락을 받아서 두 모자는 동시에 면회를 갈 수 있었다. 나는 환자의 자리를 안내함과 동시에 환자 옆에 서서 혈압이 낮아 수액 300cc를 로딩(속도를 가장 빠르게 트는 것)되는 것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계속 보지 않으면 수액이 과량으로 들어가 큰일 난다)


"아빠~"


고사리 손으로 환자의 커다란 손을 잡는 모습에 어린 시절의 내 모습 같았다. 나도 저 아이와 비슷한 나이에 어머니와 떨어져서 어머니의 병세가 나아지기만을 기도했었는데.


 재작년, 웨이팅 기간에 나는 패키지로 유럽 여행을 갔다. 그때 눈에 띈 사람은 한 모녀였다. 삼십 대 중반 후반쯤의 엄마와 아홉 살 난 아이였다. 엄마와 함께 동행하여 즐겁게 여행하던 아이의 모습을 보고 '나는 저 나이에 엄마의 병마로 가족과 떨어져서 친척 집을 전전했었는데 저 아이는 참 부럽다. 엄마와 유럽도 가보네.'라는 이상한 상대적 박탈감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중환자실 안에서 아빠에게 미소 짓는 이 아이는 나와 퍼즐이 맞추어졌다. 영락없는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었다.


동정이 아닌 진심으로 안타까워 환자와 아이의 거리를 한없이 멀게 만드는 side rail(침상 난간)을 내려줬다.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환자의 볼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 장면에 눈물이 핑 돌았지만 티를 안 내려고 눈만 깜빡깜빡하며 눈물을 참았다.


이토록 순수한 사랑과는 대조적으로 환자는 부인과 세상에서 가장 현실적인 대화를 지속하고 있었다.


"나를 왜 병원에 데려왔어. 나 계속 여기 있어야 해."

"잘 왔어. 지금이라도 와서 치료받으니 다행이야. 늦었으면 진짜 큰일 날 뻔했어."

"아이 잘 봐줘."

"그럼, 잘 보지. 걱정하지 마."

"멀리서 왔으니 오늘은 찜질방에서 자."

"그래야지."

"우리 이제 집 팔아야 돼. 텐트에서 살아야 해."

"(남편 손을 꼭 잡으며) 괜찮아. 텐트 짓고 살게, "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에게 (치료비는) 정말.. (한숨)"

"(애써 웃으며) 우리 OO가 돈 많이 벌어다주겠지."


현실적인 와중에서도 부인은 남편을 배려하고 있었다. 듣는 내가 뭉클했다. 이처럼 화목한 알코올 중독자의 스토리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수액이 로딩되듯 면회시간도 로딩되고 있었다.


"아빠 사랑해"

"나도 사랑해"

"내일 올게"

"안 와도 돼. 애기 잘 봐줘."


이대로 밖에 가려는 보호자들의 모습에 이대로는 아쉬워서 "마지막으로 다 같이 손 잡고 면회 마쳐주시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내 말처럼 손을 잡으며 사랑한다는 말을 연신 외치며 잠깐의 조우를 끝냈다.


이제부터는 환자와 나의 단 둘의 대화이다.


"환자분, 퇴원하시거든 진짜 술 마시지 말아요."

"왜?"

"애기가 이렇게 어린데.. 대학 가는 모습은 봐야죠."

"걔는 걔대로 잘 살겠지."

"아니에요. 아이한테는 아빠가 필요해요. 진짜 술 마시지 말아요."

"나랑 같이 노는 무리들은 나보다 더 해."

"얼마나 마시는데요?"

"응? 나? 걔네들이랑 마시면 1차, 2차, 3차, 4차.. 쭉쭉쭉.."

"이제 그분들이랑 연락도 끊으셔야 해요. 술은 진짜 안돼요."


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진심인데, 그분은 나에게 농을 던지는 모습이 애써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위트를 잃지 않는 사람을 좋아한다. 나 자신이 그러지 못하기에 그런 사람을 보면 귀감이 된다. 나에게 이상한 농담을 던져도 속은 그 누구보다 타들어가겠지. 저렇게 귀여운 아이가 있는데.. 술이 더 원망스러워지는 하루였다.




긴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니 그 환자는 없었다. 아마도 병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해서 완쾌는 불가능한 병이지만 앞으로는 술을 끊고 적절한 프로토콜로 치료를 받아 증상이 쾌유했으면 좋겠다. 자식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쭉쭉 졸업하는 모습을 오랫동안 봤으면 좋겠다. 부인과 화목하게 대화하는 기간이 지속됐으면 좋겠다. 그저 나 혼자만의 생각을 해 본다.


이처럼 화목한 한 가정을 깨는 근본적인, 극단적인 원인은 술이다.

술을 마시지 마라고, 술은 안된다고 말하는 내 말이 상식적이고 상투적으로 보이겠지만 수많은 내 간접경험들이 집약체가 되어 방출하는 진심이다. 나의 외침을, 간절함을 진지하게 받아줬으면 좋겠다.


아무쪼록 내 글을 보는 독자들은 인생이 힘들더라도 절대로 술에는 손을 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 결말은 언제나 후회일 것이 자명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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