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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ologue

언니를 사랑하는 동생의 마음

마음이 쓰이는 보호자 한분이 있다. 그분은 꽃무늬 옷을 입고 발간 립스틱을 바르시는 고운 할머니다. 어르신은 항상 저녁마다 인공호흡기에 생명을 의지하고 계시는 한 할머니를 면회오신다. 그분은 바로 할머니의 친동생이다. 환자에게 애살 있는 보호자는 많지만 그분은 특유의 슬픈 말투로 매일마다 '언니야', '눈 좀 떠봐'라고 말씀하신다. 이제는 그 시간에 그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어색할 정도다.

어르신은 면회시간을 가득 채우고 가지도, 초과하지도 않는다. 항상 면회시간이 끝나기 5분~10분 전에 '언니야, 잘 있어. 내일 또 올게.'라고 말씀하시고는 집에 가신다. 그래서 더 아련한 느낌이 든다.


그러게 혼자 살지 말라고 했어요. 사람 만나라고 했더니 안 그러다가 이렇게 됐잖아.


보호자분께서 어느 날 나에게 하신 말씀이다. 잘은 모르지만 환자분은 사별(혹은 이혼)을 하신 모양이다. 어르신은 혼자 지내는 동생이 항상 마음에 쓰였을 것이다.

환자는 우리 병원에 두번째로 오셨다. 처음에는 alert로 오셨지만 심장 스탠트 삽입술을 권유하는 의사의 소견을 완강히 거부하신 채로 귀가하셨다. '나는 정상인데 시술을 왜 해.'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 후 이틀만에 의식 없이 실려와서는 CAG 시술을 하셨고 아직까지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나도 형제라고는 여동생 뿐인지라 그분들이 더 신경쓰였다. 인공호흡기에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혈육을 보고 어떤 감정이 들었을까? 내 동생이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어르신에게 힘이 되어줄 수는 없지만 좋은 말 한마디라도 해드리고 싶었다.


용기내서 말을 꺼냈다.


환자분의 친동생분이세요? 항상 어르신을 굉장히 애살 있게 돌보시는 것 같아 보여요. 저도 이 세상에 여동생 하나뿐인지라 마음이 쓰여요.


라고 말하니 인자하게 웃으시며 그렇냐고 되물으신다. 할머니는 오늘도 여전히 '내일 또 올게. 언니야.'라고 말씀하시고는 나에게 '오늘도 수고하세요.'라고 꾸벅 인사하셨다.

동생의 병상 생활에 마음이 찢어질듯이 아프겠지만 감정동요를 하지 않는 어르신이였다. 장기전으로 가는 병간호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느낌이랄까. 그것조차 하나뿐인 언니를 향한 사랑 표현 방식 같아보였다.


오늘은 환자의 피검사 오더가 늦게 나서 부득이하게 면회시간 도중에 피검사를 했다. 보통 보호자 면회 시간에는 피검사를 피한다. 잠깐 보는 순간인데 침습적인 행위를 하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 그 이유다. 오늘은 어르신도 피검사하는 모습을 보셨다. 그분은 오히려 '간호사님들 수고 많으십니다.'라고 위로의 인사를 건네주셨다.


바이탈을 해야 하는 바쁜 시간이지만 한 마디라고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사람의 청각은 가장 마지막에 사라진다는 상식이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말을 꺼냈다.


사람의 청각은 가장 마지막이 없어진다고 해요. 지금 답변을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귀는 열리셨을테니 짧은 시간이지만 좋은 말씀 많이 해주세요.


할머니는 내 말에 '그 말이 진짜입니까?'라고 되물으시고는 누워 있는 환자에게 '언니야. 깨어나서 우리 좋은 곳 많이 가자', '얼른 일어나.'라고 말씀하셨다. 기적이 일어나서 좋은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마음 뿐이였다.

여기까지 적으면 가슴 뭉클한 이야기겠지만 마지막으로 나에게 말씀하신 한마디가 내 마음을 눈물로 적시고야 말았다.


여기 지금 누워 있는 할머니의 며느리가 백혈병으로 병원 생활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며칠 전에 병상에서 돌아가셨으라. 한 집에서 이렇게 두명이나 누워있고..


오늘이 바로 장례를 치르는 날이였다고 한다. 어르신은 '언니는 며느리가 간 줄도 모르고'라고 연신 말씀하셨다.

하늘도 정말 무심하시지.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지요? 극복할만한 것이라면 감수할 법도 하겠지만 이건 정말 해도해도 너무한 상황이다.




portable chest x ray(이동식 엑스레이 장치)의 방사선을 피하기 위해 주변에서 면회를 하고 있는 보호자들을 벽 뒤로 피신(?)시켰다. 할머니도 포함이였다. 긴 간병에 지치셨는지 난간에 기대는 모습이 파김치 같아 보였다.

 긴 병에 장사 없다고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할머니는, 아니 동생은 언니를 포기하지 않았다. 말 없는 시한폭탄은 언젠가 터질 것이다. 그런 날이 오더라도 언니를 사랑하는 동생의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다른 사람은 몰라주더라도 최소한 나에게는 깊은 의미로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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