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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지 좀 말자

"왜 무시해" 병원 응급실서 행패 부린 40대 男 검거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sid1=001&oid=421&aid=0002945894

응급실을 그만둔 수많은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진상환자였다. 특히 술이 들어간 진상환자. 사직은 수많은 일로 인해 귀결된 나의 자유의지에서 나온 행위인지라 누구의 탓을 돌리기에는 뭐하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정말 못견디겠더라. 단언할 수 있다. 당신들 탓이오.

수많은 진상들에게 치여 마음이 곪아도 버티면서 일을 하시는 분들이 존경스럽다. 그 때의 나는 그러지 못했지만.


당시의 기억을 더듬어 짧은 기간에 겪은 몇 가지 일을 나열하고자 한다.


상황1)

 쌍꺼풀 수술을 하고 나서 (일주일 뒤에 실밥을 뽑아야하는데 기다리는 동안) 실밥에 피가 흘러서 내원한 10대 후반의 환자가 있었다. 실밥 부위에 피가 흐를 수 있으니 유의하라는 건 성형외과에서 주의사항으로 고지하는 항목이다. 그래서 환자에게 의료진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실밥 부위를 깨끗히 닦고 소독하는 것 뿐이였다. 단순처치 후 시간이 조금 흐르니 증상은 가라앉았다.

 3차 병원인지라 병상 회전율이 빨라야 하고(중환이 다섯명씩 동시에 오는 전쟁터 같은 곳이다) 더군다나 이분은 경환 중에서도 경환이기에 퇴실을 권유하니 보호자가 다짜고짜 "꼴랑 한거라고는 소독 뿐이고 돈을 이렇게나 받아먹으면서 벌써 가라니요?" 병원이 흔들리도록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요즘 원무과에서는 접수할때부터 응급의학관리료로 인해 치료비가 비쌀 수 있음을 사전에 설명한다) 결국 그분들은 새벽을 병원 침대에서 보내고 아침에 퇴실했다.


상황2)

 이틀 전에 복통으로 응급실에 와서 치료를 받고는 재발해 다시 내원한 환자가 있었다. 딸이 환자였는데 아버지 되는 사람이 나에게 다짜고짜 "내가 이틀 전에 얘 데리고 왔는데 치료를 개판으로 해서 애가 다시 아프잖아. 도대체 어떤 약을 쓴거야? 인간들은 친절하지도 않고 싸가지가 없어. 친절하게 하라고." 라며 자신의 격앙된 감정을 퍼부었다.

 초면에 반말인 것은 둘째치고-이곳에서는 인간 대접 받길 포기함. 포기하면 마음이 편하다-난 전혀 모르는 사실인데 도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거지? 그저 어이없고 당황스러웠다. 마지못해서 딸이 "이분은 몰라. 아빠 그만해." 라고 말리는데 보는 내가 다 부끄러웠다.


이정도면 양반이라고 해두자. 세번째 사례는 보호자의 폭력성이 여과없이 드러난다.


상황3)

 물집이 생긴 2도 화상을 입은 남환이 있었다. 내가 근무했던 곳에서는 이런 경우에 1회용 드레싱 세트를 열어서 거즈를 펴고 차가운 생리식염수를 부어 드레싱을 만들어 환자에게 적용한다. 상황을 입력하고 환자 자리를 지정한 후에 내가 기본적인 처치를 하고 나면 컴퓨터 화면으로 증상을 캐치한 인턴이 오는 시스템이다.

 그 과정에서 보호자는 얼음주머니로도 적용할 수 있는 거냐 물었는데 인턴이 무어라고 말을 했는 지는 잘 모르겠다. 여하튼 결론부터 말하자면 본인이 원하는 얼음주머니가 아닌 차가운 생리식염수로 환자 진료를 한다며 보호자가 화가 나서 주먹을 쾅쾅 치며 울분을 삭혔었다. 일이 커져서 나중에는 레지던트 2년차가 상황설명을 했었다.

그 과정에서 보호자는 레지던트에게 "야 이 새끼야."라며 주먹을 쥐며 위협했고 레지던트는 참다참다 폭발해서 "뭐 이 새끼야." 라고 되받아쳤다. 그때부터 말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보호자: "이 개새끼가?"
레지던트: "욕하면 다냐? 나는 욕 못할 줄 아냐? 이 새끼가 보자보자하니까."
보호자: "아, XX. 경찰 불러, 경찰 불러."
레지던트: "그래 불러 새끼야. 누가 잘못했나 보자."

 일은 어떻게 일단락됐긴 한데 그 레지던트는 윗선에 혼이 났다고 한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보호자의 진상을 말리는 과정에서 나도 주먹으로 위협을 당했으니 레지던트의 속사포가 그저 통쾌했다. 내가 하지 못한 말을 대신 해주는 느낌이랄까. 그 보호자에게는 술 냄새가 났다.

 이처럼 보안요원으로도 제지가 안돼 경찰을 부르면 그 사이에 오는 환자들에게 제대로된 간호를 제공하지 못하는 리스크가 발생한다. 물론 이런 일을 워낙 많이 겪은 사람들이기에 일은 계속 하겠지만 나쁜 영향을 받는 건 사실이다.

 어지간한 상황에서는 훈방조치한다. 환자에게 폭언을 듣거나 폭행을 당한 의료진을 보호하는 법이 있다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99프로는 참고 넘어갈 것이다. 그래서 이 기사가 더 새롭다. 오죽 심했으면 검거됐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본인 기분 나쁘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말자. 몸과 마음이 아픈 환자들에게 위협이 되지 말자. 힘들어도 참고 견디는 의료진에게 '내가 이렇게까지 일해야하나.'와 같은 허무한 감정만 심어주지 말자. 제발.



 모든 싸움은 술이 들어가면 커진다. 첫번째, 두번째 사례는 내가 기분이 나쁘지만 그래도 본인의 인격이라고 생각하며 넘어갈수는 있다. 최소한 폭력은 벌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술이 안 들어갔으니까.

 술이 들어가면 상황이 달라진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주취자가 환자든 보호자든 응급실에 오는 것은 그 자체로 본인 돈낭비이자 간호인력낭비다. 본인이 술을 자제하고 집에 옳게 간다면 애초부터 그런 일이 벌어지지도 않는다. 극단적이지만 술을 마시고 쓰러져서 뇌출혈이 발생할 일도 없다.

 물론 출혈이 발행했다면 신속히 응급처치를 해야한다. 하지만 단순 주취자인 경우, 그 사람 때문에 다른 환자에게 미약한 소홀함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설사 응급실에 온다 쳐도 진상은 부리지 말자. 조용히 진료 받고 가자.

 

 드렁큰. 응급실에 들어오는 주취자들을 부르는 용어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이런 사람에게 시간낭비하는 것이 너무도 아깝다. 아픈 사람들을 위해 하는 간호는 보람이라도 있지 이 부류가 오면 마음 속에 허무함만 커진다.

 이 사건도 마찬가지다. 술병으로 위협한 것을 보니 높은 확률로 술을 마신 것이 틀림없다. 평소 본인 술버릇 같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병원에서 행패부리는 건 잠재적 살인행위와 다를 바가 없다. 병원은 생명을 다루는 곳이다. 그 중에서 응급실은 빠른 시간 안에 처치를 해야 사람이 살아나는 곳이다.




 응급실에는 119 구급대원이나 경찰관이 수시로 들락날락거린다. 그들은 매일같이 드렁큰을 두고 간다.

 보통 구급대원들은 환자를 이송할 때 이러한 증상으로 왔다고 간단히 인계를 준다. 하지만 드렁큰의 경우에는 예외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드렁큰이 하얀 침대 위에 덜렁 놓여져 있을 때의 당황스러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인계도 없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그들에게 화가 났던 기억이 난다.

 경찰관은 신원파악을 할 수 없다는 이유로 드렁큰을 두고 갔었다. 신원파악을 경찰이 하지 누가 하나요? 라고 항의했지만 그들은 같은 말만 계속 반복하고는 후닥닥 응급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냥 나한테 버리고 가는거지 뭐.. 그때부터 난 극도의 스트레스에 휩싸인다.


 10원짜리 하나도 완벽하게 세어서 차팅해야 한다. 수많은 신분증과 동전들이 그저 원망스기만 하다. 할 일이 무진장 많은데, 이런 일 하느라 나의 금쪽같은 시간을 보내야 하다니.

 이건 시작이다. 환의로 갈아입혀야 하는데 술주정과 폭언이 시작된다. 한쪽 귀로 흘려보낼 찰나에 토를 하기 시작한다. 최악이다. 얼굴을 오른쪽으로 돌려 까만 비닐봉지를 갖다놓았다. 타이밍도 제대로다.

 18G 라인을 잡아야 하는데 수도 없이 움직인다. 한번만에 잡아야 하는데 이렇게 움직이면 할 일을 제대로 못한다. 진짜 싫다. 드렁큰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세상 사람들이 적당량의 술만 마시고 똑바로 집에 갔으면 좋겠다.


 결론은 뭐냐고? 세상에서 진상이 제일 싫다. 특히 술이 들어간 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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