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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ologue

꼬마아이

몇 주 전에 일어난 일인데 잊고 지내다가 연예인 유병재님이 일일 키즈카페 알바를 하는 모습을 보고 갑자기 생각나서 적는 글이다.


이브닝 근무 중에서 여섯시가 제일 바쁜데 보호자 면회 시간과 동시에 바이탈, 여섯시 비에스티, 인잭, 랩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호자의 요구를 하나 둘 들어주다 보면 나 혼자서 쳐내야 하는 일이 밀리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최악의 상황(일이 밀리는 게 가장 최악이다)을 모면하기 위해서는 빠른 속도로 움직여야 한다. 보호자와는 짧고 간결하게 말을 끝내고 보호자가 할 수 있는 일(예를 들어서 물떠오기)은 보호자가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바이탈을 하면서 여섯시에 들어갈 만니톨(뇌압하강제)을(를) 주입하려는데 자동문 앞에서 똘망똘망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꼬마아이가 보였다.


'아, 꼬마가 나를 쳐다보는구나.' 영혼 없이 일을 하려던 찰나에, "저기요." 말을 걸어온다.


어린아이가 나에게 말을 걸어온 건 간호사 인생에서 처음 있는 일이라 꽤 당황스러웠다.


"으응?" (글로는 표현 못하지만 말을 더듬었다)


"저 여기 들어와도 돼요?"

"어린아이는 여기 못 들어와요."

"저희 할머니가 중환자실에 계신대서요."

"할머니 성함이 어떻게 되나요?" 물어보니 꼬마는 적잖게 당황하며

"하..할머니 이름.. 할머니 이름이 뭐더라. 모르는데.." 라고 말하다 문 주변을 뱅글뱅글 돌아다니더니 이내 시선에서 사라졌다.


저런, 아가. 너의 할머니가 누군 지는 모르지만 만일 알고 있다면 '손자가 할머니를 많이 찾아요' 라고 말 한마디라도 해줄 수 있으련만.


나의 친할머니도 중환자실에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오지랖 같은 감정이입인지는 모르지만 그때 내 모습 같기도 하고. 할머니는 내가 너무 어릴 때 돌아가셨지만 저 아이의 나이 만큼까지만 살아계셨더라면 나도 저렇게 할머니를 찾으러 다녔겠지.


상상초월의 업무강도에 치여 영혼 빨린 듯한 표정으로 허겁지겁 일을 하는 하루살이 같은 삶이지만.. 내가 이러고 있는 틈에 내 옆에 누워 있는 수많은 환자들은 다른 누구에게 굉장히 의미 있는 사람일텐데. 누구 한명 돌아볼 수 없는 현실이 싫기도 하고 근본적으로는 이러한 문제있는 시스템이 개선됐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어린아이와의 짧은 조우가 많은 생각을 들게 하는 날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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