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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다

전혀 기쁘지 않았다

http://m.news.naver.com/memoRankingRead.nhn?oid=011&aid=0003122445&sid1=102&date=20170928&ntype=MEMORANKING

"예쁜 아가씨"

라고 환자가 말을 걸었다.

1초간 멈칫하다가 "네."라고 말했다.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묵묵히 요구에 응했다.


"저는 '예쁜 아가씨'가 아니라 '간호사'입니다." 말하면 "제가 말실수했군요. 죄송합니다."라고 정중히 사과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나에게 시비 거냐고 고래고래 소리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럼 나는 환자에게 불친절한 간호사로 소문나겠지. 윗선에 찍히겠지. 친절에 목숨 건 간호 집단은 원래 그런 곳이니까.


일하면서 깨달은 한 가지가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사건에 연루되기보다는 한 번 참고 넘어가는 편이 일하는 시간이 단축된다는 것. 하지만 효율을 밥 먹듯 추구하다 보면 점점 나의 주관은 사라진다. 이것을 세 글자로 '찌든다'라고 한다.




좋게 생각하려 했다. 환자는 본인 아픈 것만으로도 벅차다. 남들 살필 여유가 없다. 그런 와중에도 저분은 '나'라는 사람의 외모가 머릿속에 떠올랐나 보다. 맞아. 욕이 아닌 게 어디냐. 친근감의 표현이라 생각하자.


라고 합리화를 했지만 결론은 세 글자였다. '불쾌해'


병원 안에서 일하는 나는 예쁜 아가씨가 아니다.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간호사다. 대변, 소변, 혈액, 분비물, 못 볼 것 다 보지만 감정 동요 없이 일을 처리하는 직장인이다.


일하면서까지 품평당하고 싶지 않다. 얼굴과 성별로 평가받고 싶지 않다. 온전히 일로 나를 판단했으면 좋겠다.


이런 나보고 모 포털사이트 댓글에는 '메갈년', '한녀' 라고 한다.


그들이 뭐라고 우기든 상관없다. 나는 이렇게나마 소심한 저항을 펼쳐나갈 것이다. 나비의 날갯짓 하나가 지구 반대편에서 태풍을 만들어내듯 나의 글 하나가 '여자'간호사로 일하는 자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리라 믿는다.


내 의견을 당연하게 말할 날이 왔으면 좋겠다. "저는 예쁜 아가씨가 아니라 간호사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사과받을 날이 왔으면 좋겠다. "죄송합니다. 제가 많이 부족했군요. 젠더 감수성에 대해 공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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