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원서를 내다 (2)
그곳은 면접을 보지 않는 학교였다.
첫 번째 합격 소식에 정말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컸다. 우리 집에서 땅끝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말로는 제주도 빼고 다 가겠다고 했지만 막상 현실이 되니 막막해져 왔다.
아버지 역시 나를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를 볼 때마다 인상을 잔뜩 구겼다. 어쩌다가 한 번 대화를 하면 첫마디가 항상 '공부를 안 해서 먼 곳까지~'였다. 냉정하게 말해서 맞는 말이긴 한데, 내심 상처를 정말 많이 받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곳으로 진학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를 빌려 말하고 싶다. "합격했는데도 가지 않아 죄송합니다. (나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 입학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감사합니다."누가 뭐라고 하든 망망대해를 걷던 나에게 첫 기회를 준 곳이니까.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대학에 합격한 다른 친구들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으고 있었다. 혹은 합격을 축하한다며 친척에게 선물도 받았다고 한다. 유명 대학에 합격한 친구는 합격 수기를 후배에게 알려주는 강연도 했다. 인 서울 대학에 붙은 친구는 벌써 서울로 자취방을 잡았다. 내가 짝사랑한 그 애는 수시에서 교대에 낙방해 마음고생을 했지만, 정시로 합격해서 기쁨을 두 배로 누리고 있었다.
나는 합격 축하는커녕 수능과 내신 관리를 소홀한 죄로 처절한 응징을 받고 있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친구들 사이에서도 나는 내세울 것 하나 없는 볼품없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좋아하는 그 애한테도 말을 붙이고 싶었는데, 자신감이 결여되어 그러지도 못했다.
강연을 하는 그 친구가 부러웠다.
인 서울 대학에 간 그 친구가 부러웠다.
'나는 저기 문턱에도 못 가겠지..'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그런데 웃긴 건, 그 와중에도 문득 이런 생각을 했었다. 나중에 간호사가 되면 학생들에게 강연 한 번 하고 싶다고. 간호사라는 직업을 설명하고, 내 이야기를 웃으면서 회고하고 싶다고..
여하튼 그 친구들과는 다르게 나는 붕어빵을 굽는 어머니를 도왔다. 손님이 없을 때는 간호과 입시 자료 검색도 하곤 했다. "고3인데 학교는 어디 가?"라고 묻는 손님에게 "하하.."라고 얼버무리며 그냥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붕어빵을 팔다 집으로 돌아가던 길. 핸드폰 진동이 울려서 확인해보니 모르는 지역번호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