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다

'가임기 여성지도' 행자부, 이번엔 '하이힐 신은 간호사'

http://m.nocutnews.co.kr/news/4722752#_adtep


*뉴스를 보고 난 후의 생각


행정자치부(행자부)가 가임기 지도 사태로 한 차례 곤혹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가임기 지도 사건이 무엇인 지 모르는 분들에게 간략히 설명하자면..



*가임기 지도 사건


2016년 12월 말에, 행정자치부가 가임기 여성(20~39세까지)의 수를 지역별로 공개하고 심지어 순위까지 매긴 일입니다.


'국민들에게 지역별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알기 쉽게 알려주고 저출산 극복을 위해 다 함께 참여하는 분위기 조성'을 목적으로 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글쎄요. '저출산=여성 개인이 아이를 낳지 않은 탓'으로만 돌리는 것 같네요.


지역별로 순위는 왜 측정하죠? 아이 많이 안 낳는 지역의 여성은 반성하고 아이 낳는 것에 힘쓰라는 뜻인가? 여성 많은 이 동네로 가서 결혼하라는 뜻인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상한 점이 많습니다.


게다가 저 지도에 포함된 사람 중에서는 아이 낳기를 원하지 않거나, 혹은 낳지 못하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 지도에 내가 포함되지 않았으면 하는 여성도 많을 것이고요. (저만 해도 그렇습니다.)


출산 지도는 논란 끝에 결국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사과 한 번 없는 데다가, 저런 편협한 사고방식으로 새로운 정책을 만들어봤자.. 흠.. 과연 좋은 대안이 만들어질까요? 개인적으로 그다지 긍정적인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최근 1월에는 이런 사진까지 게시했습니다. 무려 페이스북 공식 페이지에서요.

그림의 출처는 노컷뉴스에서 발췌했습니다. 원래는 행자부가 공식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저 사진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한편으로는 힘이 쫙 빠졌습니다.


내가 힘들게 일해봤자, 뒤에서 보이지 않게 애써봤자 알아주는 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지는 오래됐습니다. 저만 힘든 것도 아니니까요. 여유롭게 자리에 앉아 있는 저 보안요원님도 사연이 많겠죠,라고 생각합니다 전. 애초부터 저의 고생길을 누군가가 알아주길 바란 적도 없고요.


하지만 성 평등과 직업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야 하는 정부기관이 저런 그림을 대놓고 게시한 것 자체가 모순 같아요.


밥 굶어다며 일해도, 환자에게 맞아가며 일해도 부질없구나. 결국 내 직업은 나라에서조차 왜곡된 시선을 취하는구나, 싶었습니다. 아무도 모른다 해도 나라님은 알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내가 이런 취급 받아려고 간호사를 했나 자괴감이 들더군요. 저는 큰 걸 바란 게 아닌데 말입니다.


지적할 점이 너무너무너무 어마 무시하게 많습니다.


요즘 간호사들 간호화도 불편해합니다. 안 그래도 이제 막 간호사 대나무 숲에서 봤던 글이, '간호화가 불편하다'는 학생 간호사의 하소연이었습니다. 저만 해도 간호화 때문에 발가락 모양이 변형되고, 물집도 여러 번 터졌습니다. 제 꿈이 윗사람 돼서 간호화 없애버리는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하루하루 버티기도 벅차서 하우 적대는 일개 간호사 1인입니다..) 그런데 검은 하이힐이라뇨? 저 높은 뾰족구두로 cpr을 칠 수 있을까요? 아니 cpr은 고사하고 routine 일은 제대로 할 수 있기나 할까요?


간호사 캡도 가당찮습니다. 전국에서 모 병원만 유일하게 하고 있다는 간호사 캡인데요, 이것도 상당히 불편합니다. 수많은 선배 간호사들이 건의하여 간호사 캡이 폐지됐을 텐데, 그림에 떡하니 부활시켜놓네요. 보는 제 머리가 욱신거리는군요. 제 생각 한마디 더 덧붙이자면 수많은 사람들이 캡을 간호사의 상징인 양 미화하는데, 현직 간호사 입장에서는 저건 거추장스럽고 업무에 방해만 될 뿐입니다. 심지어 학생 시절 치매 환자가 제 캡을 잡아 빼 던질 뻔한 일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저 캡은 열심히 일하고자 하는 노동자의 안위까지 상실시킬 수 있는 무지막지한 도구입니다.


제가 가장 화나는 건 간호사를 화장 진하게 한, 하이힐 신은, 치마 입은 '여성'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편견의 집약체인 듯 싶군요. 우선 성별을 여성으로만 그려 놓은 게 화가 납니다. 남자 간호사도 많습니다. 몇 년 전에 뉴스 기사에서 봤는데, 삼성서울병원 수술방 수간호사 선생님이 남자라고 그랬던 것 같아요. 간호학과 가도 남학생들 많아요. 그리고 요즘에 치마 입은 간호사 본 적 있나요? 치마 입으면 기본적인 일이 안 되는데요. dt 뜨는 환자가 공격해오면 치마 입은 간호사는 방어 못 해요. 그래서 바지 입어요. 앞에서 언급한 하이힐 역시 기능도 기능이지만 간호사라는 직업을 여성성이 다분하다는 성적 고정관념을 나타낸 예라고 봅니다. 이 정도면 간호사=주사 놓는 여자,라고만 생각하는 것 같네요.


저 그림은 여자 남자 간호사 모두가 있어야 하고 (지면 관계 상 어쩔 수 없이 여자만 그렸다 치면) 해당 간호사는 치마가 아닌 바지를 입을 것이며, 간호화를 신고, 캡도 빼야 올바른 듯싶네요.


행자부는 하루빨리 여성 혐오, 직업적 무지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




제 글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가 되어 간호사의 처우 개선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막 신규를 벗어난 힘없는 일개 간호사 1이지만, 이 공간에서나마 계속 제 의견을 피력해 나가렵니다.


입 꾹 닫고, 눈 꼭 감고, 귀 막고 사는 것보다는 이런 소심한 행동이라도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런 게시물도 수시로 남기려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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