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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ologue

“아프실텐데.. 감안해주세요.”

나이트 근무. 이브닝때 신환이 우두두 와서 베드는 풀이다. 바이탈을 하고, 비에스티를 하고, 랩도 해야 하는 복잡한 시간대, 밤 열두시.


‘얼른 해야지.’ 늘 그렇듯 긴장감이 양 어깨에 무거운 돌덩이 처럼 내려앉는다. 피검사를 위해 본능적으로 팔을 살폈다. 모처럼 라인이 좋다. 한번만에 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신감이 생긴다.


그런데 손등을 보는 순간 나는 망했다를 연발했다. 수액이 들어가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반대팔도 봤는데 손등에 IV line이 있다.


이럴 때는 발에 있는 혈관으로 피검사를 해야 한다. 수액이 들어가는 팔에 검사를 하면 결과가 정확히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발은 혈관이 잘 안보일뿐더러 무척 아프다. 사실 발에 주삿바늘을 갖다대는 건 자신 없다. 그래도 다행인건 이분은 발등에도 혈관이 잘 보인다. 그나마 다행이다. 움직이지만 않으면 성공이다.


최대한 정신을 집중해서 한번만에 성공했다. 그런데 갑자기 날 부른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내가 뭘 잘못했나 싶다. 그런데 별 부탁은 아니였다. 손등에 붙여져 있는 반창고를 떼달라는 것. 그거야 항상 하는 거니까.


아무 생각 없이 ‘네’ 라고 말했는데, 뭔가 괜히 자신감 넘치게 말한 것 같다. 팔에 털이 집중되어 있었다. 하필 반창고도 털에 밀집하여 붙여져있다. 아프다고 화내면 어쩌지. 아, 두렵다. 나는 사소한 행동에도 자기방어하는 습관이 생겼다.


“제가 떼드릴수는 있는데 반창고 쪽에 털이 많아서.. 네. 좀 아프실거예요. 감안하셔야 하세요.”


흠, 내 말이 웃겼나보다. 픽 웃는다. 그 사이에 최대한 살살 뜯었다. 다행이다.


일 하나 끝냈다. 오분이 십분 같은 순간이였다. 어쨌든 한번만에 끝내서 다행이다. 그리고 무턱대고 화내는 환자가 아니라서 더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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