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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ologue

나도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일지도..

 수동혈압계로 혈압을 재는데 할머니 한분께서 팔을 쓰다듬는다. 처음 있는 일이라 할머니 얼굴을 보니 날 보는 눈빛이 매우 따스하다. 내 나이가 그리 많지는 않아도 ‘이 사람이 날 어떤 기분으로 쳐다보는지’ 정도는 구별할 수 있다. 나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다. 환자에게 이런 눈빛을 받는 건 매우 드물다. 그래서 상당히 낯설다. 솔직히 말해서 멸시하는 눈빛이 대부분인데..


 다른 할머니 한분은 아예 내 손을 잡으려고 한다.   내가 할머니에게 통하는 얼굴인가? 오늘 무슨 날인가 보다. 연예인이 이런 기분일까? 수많은 사람이 날 좋아하는 눈빛으로 쳐다보고 손 한번 더 잡으려고 애쓰는 걸 보며 ‘훗, 내 인기’ 하며 흐뭇해하는 그런 연예인 말이다. 그런데 할머니 한분 가지고 연예인 운운하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진짜 연예인이 이 글을 보면 코웃음칠지도 모른다. 여하튼 이상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냥 가면 너무 메마른 사람이니 화답으로 손 한번 꽉 잡아드리고 이내 다른 일을 하러 갔다.


 내가 지쳐 보여서 힘내라는 뜻으로 호감표현을 하는 것으로 생각해야겠다. 그래요. 저로 인해 조금이라도 힘이 난다면 언제든 그렇게 하셔도 돼요. 저도 조금은 힘낼게요.




 쭈그려 앉아서 foley catheter에 있는 소변을 비우려는데 할머니께서 갑자기 ‘고맙습니다’ 하신다. 침대 위에서 아래로 시선이 향하는 것을 보니 일하는 날 지켜보셨던 것 같다. 어떤 게 고맙냐고 되물으니 알 수 없는 말투로 꿍얼꿍얼 하신다. 이 상황이 웃겨서 픽, 웃음이 나왔다. 소소한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 같다.


  오늘은 덜 바빴다. 하지만 힘든 하루인 건 평소와 다를 바 없다. 솔직히 내 글의 90% 이상은 힘들다는 말 뿐인 것 같다. 하지만 힘든걸 힘들다 그러지  좋다고 포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신체, 정신, 영혼에 여유 없는 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좋은 말을 들으면 힘이 난다. 괜히 쓸데 없는 생각이 많은지라 ‘내가 이런 말을 얼마만에 들어 보나.’, ‘내가 좋은 말을 들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따위의 생각도 해본다. 이런 깊은 생각을 할 정도로 내 삶은 엉망인가 싶기도 하다. 얼른 여유를 찾아야 할 텐데. 어느 노래가사처럼 거리도 걸어보고, 향기로운 칵테일에 취해도 보고, 한편의 시가 있는 전시회장도 가고, 밤새도록 그리움에 편지도 써 보고 싶다. 소소한 일상이 몹시 그리운 밤이다. 그냥, 오늘은, 나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존재였다는 걸 알게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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