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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다

자살을 생각했을 때

“일이 안 늘어나.” 신규 때 가장 많이 했던 푸념이다. 불안한 나머지 밤에 한숨도 못 잤다. ‘내일도 같은 실수를 하면 어쩌지?’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도둑고양이는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다 지쳤는지 하염없이 울었다. 달빛은 창문을 뚫고 눈물로 젖은 내 얼굴을 비췄다. 이게 무슨 꼴이람. 더 이상 자취생활을 계속할 자신이 없었다. 결국 쓰레기차가 쓰레기를 수거하는 새벽 다섯시까지 눈을 감지 못했다. 이런 날이 수도 없이 반복됐다.


나는 산 송장이였다.




수간호사, 올드, 동기 모두 날더러 일을 못한다며 손가락질했다. 내가 지나갈때마다 사고만 친다고 말했다. ‘씨발’, ‘000 미친거 아니야?’ 따위의 폭언도 들었다. 암기에 약한 내가 수많은 약물 코드를 외우는 건 지옥이였다. 질문에 대답을 제대로 못했다며 간호사실에서 소리를 지르는 건 예사였다. 굳이 해명하자면, 강압적으로 대하니 긴장해서 머릿 속이 하얘졌다.


 난 언제나 그랬다. 공부하라며 컴퓨터 화면을 숨긴 아버지가 싫어서 오히려 공부를 안 했다. 수학 점수가 낮다며 교실에서 면박을 주던 선생님으로 인해 그날부터 수학 공부를 포기했다. 하지만 이건 사람 생명을 다루는 일이니 그러지는 못했다. 나름대로 외운답시고 자취방에서 공부를 했는데 도무지 머리에 들어가지 않았다.


어쩌다가 겨우 한 번 대답하면 꼬투리를 잡기 위해 생각지도 못한 부분을 물어봤다. 결국 눈물 콧물이 다 쏟을때쯤이야 지옥 같은 시간이 매듭지여졌다. 그것도 그나마 착한 선임이 말려서 마무리된것이다. 그러지 않았으면 나는 새벽 내내 시달렸겠지.


나를 정말 싫어했던 그 간호사는 반성문을 제출하라고 했다. 무슨 이유로 쓰라고 한 지는 모르겠다. 상황이 너무 오래돼서 기억도 안 난다.


그들의 인격모독이 잘못된 게 아니라, 애초부터 내가 거기에 존재한 게 잘못이였다.


결국 난 일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낙인찍었다. 내 자신이 무너졌다. 인생을 살아갈 이유가 없었다.


‘원래 신환은 네가 받아야 하는 거야!’

‘미친거아냐?’

‘야! 너 왜 인사를 안 해?’

‘너 일 못하는 거 소문 다 났어.’

‘씨발.’


엿같은 소리가 귓가에 웅웅 울렸다. 듣기 싫었다.

이런 말을 듣고 왜 살아야 하나 싶었다.


죽으면 이 일도 다 해결될 것이다.

원통한 내 원귀가 개같은 것들을 응징할 것이다.

그래, 죽자.

자살할 방법을 생각했다.


화장실 샤워기에 목을 감아 죽을까?

천장이 낮아서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자취방에 뛰어 내려 죽을까?

그럼 분명 응급실로 이송되겠지.

끔찍한 얼굴을 보기 싫다.

손을 그을까?

그래, 손을 긋자.


어설프게 손을 그었다. 생각보다 아프진 않았다.

피만 살짝 맺혔다.

더 깊게 그어야 하는데 그럴 힘이 없었다.


자살한 사람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죽겠다는 수많은 생각을 실천으로 옮긴 행동가!

그들이 존경스러웠다.

난 패배했다.

결국 자살에 실패했고, 하염없이 울었다.


몸을 쭈그리고 한참동안 통곡했다. 머리가 띵했다. 거울을 보니 이게 사람의 꼴인가 싶었다. 다 보기 싫었다. 거울을 던졌다. 쨍그랑 하고 파편 한알 한알이 쌀알처럼 흩어졌다.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다. 빗자루로 거울 조각을 쓸어담았다. 콩알 같은 조각을 만지작거렸다. 우연이 만들어낸 작품 치고는 참 예뻤다. 희죽 웃었다. 꽃만 달면 난 광녀라고 생각했다. 굳이 정해야 한다면 노란 호박꽃이 어울리겠다.




생각을 해보니 간호사 일은 게임 퀘스트가 아니였다. 레벨업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루 하루 천천히 요령이 생겨나고 있었다. 애초부터 싹을 잘라버렸으니 알 턱이 있나.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렇게나 힘이 들었다면 진작에 탈출해야 옳았다. 버틴다고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몰랐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살아있다. 원혼이 되어 괴롭혀주지는 못하지만 어쩌다가 글을 쓰게 됐다. 내 기억을 끄집어내서 누군가가 이걸 본다면 그것 또한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누군가에게 말한다.


인격모독 하는 직장에 계속 다니지 마세요.

자살할 정도로 힘이 들면 그냥 그만두세요.

하루라도 빨리 사직하세요.

당신은 건강한 인생를 영위할 권리가 있습니다.


태움을 당했다면 최고의 복수는 당신의 기록을 후대에게 남기는 겁니다. 진실은 언제나 드러나는 법이고 역사는 항상 올바른 곳을 향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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