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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다

간호직 공무원

 사직하니 다들 뭐 하고 살거냐고 묻는다. 간호사를 할거냐고 묻는다. 솔직히 말해서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몇몇 사람들은 작가를 하라는데, 내가 ‘작가’를 할 만큼 실력이 특출난 것도 아니라 고민이 많다. 요즘 글에 재미를 붙이지 않아서 작년에 비해 감도 많이 죽어서 움츠려든 것도 있고.


나 뭐 먹고 사냐.




 대학 졸업 전에 패기롭게 이름난 대학병원에 취업 했다. 학교 플랜카드에 내 이름이 걸릴 정도로 난 빛나는 사람이였는데, 그것도 잠시였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났다. 대학병원 두 군데를 거치고 녹초가 된 상태로 지금의 날 마주한다. 그때의 나는 부와 명예가 중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라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많은 월급을 받고, 자취방 옆 백화점에 가서 돈을 턱턱 써도 내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광역시로 놀러 온 그녀에게 ‘네가 사고 싶은 것 마음대로 사.’라고 말했고, 당시의 순간만큼은 그 아이에게 멋진 언니가 됐지만 점점 불편해져만 갔다. 내일 또 데이 근무를 해야된다는 중압감에 사로잡혀 내 마음은 곤두박질쳤다.


생각해보면 내가 스트레스 받는 요인은 의사, 같은 간호사, 환자, 다른 직종에게 갑질당하는 것이였다. 누군가에게 억울하게 혼이 날 때마다 심적으로 우울분만 가득 찼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욕 한번 쓸 줄 몰랐던 내가, 대학 다닐 적에는 마음 속으로 욕을 하기 시작했고 병원에 다녀서는 사람 없는 곳에서 “씨발.”, “아 좆같아.”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 다음으로는 삼교대가 있었다. 나이트 세번을 마치고 원오프를 한 후에 데이 여섯개를 해야만 했다.  이른바 나오데. 어느날 정 안되겠다 싶어 듀티를 바꿔달라고 하니 ‘남들도 다 힘들게 일한다.’는 말 뿐이였다. 간호사가 아닌 다른 직종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으면 ‘그럼, 그만두면 되잖아.’라고 말했다. (결국 그만뒀지만 말이다) 그게 맞는 말이지만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학생간호사인 동생에게 털어놔도 ‘왜? 난 나이트 하고 싶은데?’라는 말 뿐이였다. (그래, 네가 뭘 알겠니.)


삼교대의 중압감으로 불면증과 우울에 시달렸다. 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받고 싶었지만 기록에 남을까 전전긍긍하다 삼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한시간 동안 전화상담을 했다. 하지만 큰 힘을 얻진 못했다.


여태 있었던 일을 반추하다 깨달은 사실은


이래서 다들 공무원을 하려는구나.


그 한마디였다. 보호자, 환자, 의사, 같은 간호사에게 갑질을 (당하지 않거나) 덜 당하는 직업. 나오데 없이 주말에 꼬박꼬박 쉬고 휴일 보장이 되는 직업. 공무원 연금으로 노후 걱정 없는 직업.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내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간호직 공무원.


반오십 먹고 이제서야 깨달았다. 왜 엄마 아빠가 공무원을 하라고 수도 없이 말한 이유를. 나를 보다 덜 고생시키려고 말씀하신건데 나는 그저 잔소리로만 들었다. 왜 그땐 몰랐을까.


한번 해볼까? 아니, 떨어지면 어쩌지. 돈 벌면서 할까? 다들 열두시간 공부해서 시험치는데 내가 그렇게 해서 붙을까? 난 이미 사회에 찌들었는데. 어쩌지? 마음만 갈팡질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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