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생각하다

진실되어야 하는 이유


어떤 일에서든 진실하라. 진실한 것이 더 쉬운 것이다. 어떠한 일이든 거짓에 의해서 해결하는 것보다는 진실에 의해서 해결하는 편이 항상 보다 직선적이며 보다 신속하게 처리한다. 그리고 남에게 하는 거짓말은 문제를 혼란시키고 해결을 더욱 멀게 할 뿐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나쁜 것은 겉으로는 진실한 척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하는 거짓말이다. 그것은 결국 그 인간의 평생을 망치게 될 것이다.                   -톨스토이


간호사는 다른 그 어떤 직업보다도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 절대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내가 순간적으로 저지른 것으로 인해 환자에게 직접적인 위협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자에게 아무런 이상이 나타나지 않으면 다행이지만 적신호 사건이 되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사실, 이상이 없으면 다행이라고 적어놨긴 한데, 내가 일을 저지른 이상 나에게 드는 자괴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간호사로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이고, 이렇게 털어놓기 매우 부끄럽지만 나는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고민한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데이는 항상 붐빈다. 보호자로, 회진 오는 의사들로, 수많은 아침 injection으로.


어떤 할머니에게 줘야 할 인잭이였다. 5% D/W 50cc에 항생제 1 vial을 mix 해야 하는데, 50cc를 빼지 않고 100cc에 항생제를 그대로 mix 한 적이 있었다. 경험자로서 말하지만 그런 일은 순간적으로 일어난다. 내 생각이지만 액팅을 제법 한다 싶은 2년 차에게 많을 듯싶다. 신규 간호사는 어지간해서 이런 실수를 하지 않을 거라 생각 든다. 그들은 N/S을 재고, 믹스하고, 챔버를 통과시키는 과정 하나하나에 상당히 공을 들이기에 확인, 또 확인하기 때문이다. 대신 시간이 엄청 많이 들겠지만 말이다. 이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이골이 난 사람이 잘 저지른다. 손이 익어가는 대로 하다가 나중에 눈치를 채고 아차! 한다.  습관적으로 투약 티켓을 보고 일을 해도 이럴 수 있다. 이럴 경우에 어찌해야 하냐고? 수액을 당연히 폐기하고 새로 믹스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그 순간에 올바른 판단을 하지 않고 잔머리를 굴리기에 급급했다. 그게 의료사고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침이라 보호자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한두 명이 아니다. 차지 선생님께 말씀을 전해드리려 해도 그분들 역시 바쁘다. 메모지에 적는 것도 시간이 걸린다. 일분일초가 귀중한데.. 인젝만 해도 바쁜데.. 그 와중에 환자들이 잔심부름을 부탁해온다. 기본적인 바이탈을 해주고 보조를 해 줄 학생 간호사가 오려면 삼십 분은 지나야 한다. 방심한 사이에 인잭은 수도 없이 밀려간다. 그 와중에 얼마 전에 입사한 신규 간호사는 나를 찾는다. 머리가 핑핑 돌고 어지럽다.


아, 바빠 죽겠네. 그냥 50cc 빼고 줘버릴까? 어차피 이거 맞는다고 잘못될 것도 아니고. 안 들키면 장땡이지 않은가? 만일 내가 이런 사고를 쳤다고 말하면 나를 얼마나 무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악마가 나를 유혹했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서는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심호흡을 하고 5초만 더 생각해보기로 했다.

최대한 이성적으로 생각하고자 마음먹으며.


5, 4, 3, 2, 1. 땡.

시계의 초침이 오른쪽으로 다섯 번 착착 지나가는 찰나의 순간이지만 나는 정말이지 괴로웠다.


하지만 그런 과정 끝에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수액을 우선 폐기하고, 우리 부서에 prep(prepare, 비치되다; 간호사들은 흔히 프렙 된다,라고 말한다) 약 중에서 내가 줘야 하는 항생제가 있는지 찾아서, 있으면 그렇게 주기로 했다. 없으면 차지 선생님께 말씀드리는 것으로 하고.


서랍장으로 가서 찾아보니 그 anti(antibiotics; 항생제)가 눈 잎에 보였다. 마음속으로 감격의 눈물을 흘렀다. 흑흑, 샹샹바, 있어서 다행이다. 없으면 망할 뻔했네.


얼른 믹스해서 할머니께 달아드렸다. 이번에는 정신 차리자, 정신 차리자, 하면서. 제대로 확인, 또 확인하면서.


할머니는 원래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은 분이셨는데 요사이 눈을 뜨며 나에게 말도 걸고 하신다. 그동안 왜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았냐고 여쭤보니, 말하기 귀찮았다고 하신다. 쿨한 분이기도 하지, 허허. 여하튼 할머니는 매일 아침에 면회 오는 아들과 대화를 하고 계셨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무슨 짓을 하려고 했지?' 싶었다.




임상간호사 생활을 한 지 1년 남짓 흘렀지만, 아직 액팅 일을 완벽하게 하지는 못한다. 사실 이 직업은 연차가 쌓여도 배워야 할 것들이 산더미다. 로봇도 이 일을 완벽하게 해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1년 전의 지금보다는 나아졌겠지만.. 하지만 나도 인간인지라 실수를 한다. 예를 들어서 라인을 잡을 때 환자의 혈관이 터지거나, 지혈을 제대로 못해서 피가 흐른다거나 하는 일이 있겠다. 사실 전자와 같은 경우는 환자의 몸이 따라주지 못할 때도 있다. 피부가 약하다거나, 혈관이 잘 터지는 체질이 따로 있다.


나 혼자 있을 때 이런 일이 생기면 그나마 낫다. 스스로 무능함을 탓하며 혼자서 수습이라도 할 수 있으니. 그런데 머피의 법칙처럼 내가 그럴 때마다 학생 간호사나 신규 간호사가 따라붙었다. 처음에는 자존심에 금이 갔다. 나의 이런 모습을 보여주다니! 잘 하는 것을 보여줘도 시원찮은데, 따위의 생각이 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런 말을 하기 시작했다.


"허허, 다른 곳에서는 잘 하는 모습만 봤겠지만 가끔 이런 것도 봐야 인간적이에요. 나중에 간호사 되거든 저 같은 실수 안 하면 되는 겁니다."

"나중에 독립하거든 저처럼 안 하면 되는 거예요. 미리 경험했다고 생각하세요."


내가 이 얘기를 하는 이유도,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와 일맥상통한다.


만일 간호사가 될 사람이 이 글을 본다면 나 같은 생각을 하지 마라고 말해주고 싶어서 용기 내어 이렇게 내 얘기를 한다. 절대로 이런 생각을 하지 말기를. 아, 매일매일 했던 일인데,라고 생각하지 말기를. 수혈 같이 중한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가볍다고 생각되는 잘못도 절대 행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리고 거짓말을 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결국 들통나게 되어있다. 그러니 애초부터 거짓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된다.


동시에, 이런 생각을 했던 스스로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한다. 앞으로는 이런 생각조차 하지 않으리라는  굳은 다짐을 하며 글을 마친다.









작가의 이전글 생각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