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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편지글

(1) 곽** 선생님께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저 **입니다. 제가 졸업한 지도 벌써 6년이나 흘렀습니다. 시간 정말이지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한 달 전만 해도 하루 종일 심장이 꽁꽁 얼어붙을 정도로 날이 추웠는데, 벌써 부지깽이만 꽂아도 싹이 난다는 청명(淸明)입니다.

 요즘 제가 자주 가곤 하는 집 근처 월요 시장에서는 어르신들께서 향긋한 나물을 팔기 시작하셨고, 출근길에는 하얀 목련꽃과 흩날리는 벚꽃잎이 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새 생명이 움터오고, 봄내음이 짙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수선했던 나라도 새 국면을 맞이하는 듯싶습니다. 3년 동안 차갑게 침식했던 세월호의 인양도 이루어지는 중이며, 장미 대선으로 새 출발을 준비하는 단계가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새 학기의 시작 단계시지요? 요즘 학생들은 말썽 없이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지요? 궁금한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선생님은 따뜻한 분이셨으니 주변에 좋은 분들, 착한 학생들만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사실 편지를 적기 전에 우려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선생님께서 저를 기억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간도 많이 흘렀을뿐더러 저는 공부를 잘 하지도, 얼굴이 특이하지도, 키가 매우 크거나 작지도 않은 데다가 전교생이 경악할 만한 사고를 친 적이 없는, 존재감 없던 학생이었으니까요. 그래서 구체적으로 제 정보를 언급합니다. 조금이라도 기억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에서요. **고등학교 20**년 졸업생, 3-1반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졸업하고 나서 선생님을 한 번도 찾아뵙지 못했다는 점에서 죄송한 마음이 항상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페이스북에서 '내 마음의 선생님'이라는 공모전을 보게 되었고, 이건 저를 위한 대회라는 판단 하에 용기 내서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제 글을 보고 기뻐하셨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입니다. 그런 점에서 제 글이 매체를 통해 선생님께 반드시 전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마음은 진심이고, 그 누구보다도 간절합니다.


 선생님께 수학을 배울 당시에, 제 수학 실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렸지만 자세한 이야기를 언급한 적은 없었습니다. 저는 수학에 대한 적개심이 가득한 채로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아마도 예비 고1 때 수학 학원에서 공부할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며 쫓겨났을 때부터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수학 자습하라고 준 시간에 미술 과목을 공부할 정도로 수학을 싫어했습니다. 담당 선생님께서 반 친구 전부 앞에서 저를 언급하며 부끄러움을 준 적도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수학 숙제를 하기도 싫어서 답지를 베끼고, 심지어 하지 않아서 엎드려뻗쳐를 한 적도 많았습니다. 하루 종일 손들고 벌을 서는 일도 다반사였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인가 3학년 때는,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수학을 못한다는 이유로 호되게 혼난 기억도 있었습니다. 사춘기 시절의 반발감에 엄청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일련의 사건으로 저는 수학을 싫어하다 못해 무서워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소위 말해서 '수포자'였지요.


 이런 제 입장을 감안해주시고, 수능 막바지 야자시간에 교무실에서 수학을 1:1로 가르쳐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당시 선생님은 1학년 담당이셨고, 밤에도 행정적인 업무가 많으셨는데도 저에게 싫은 내색 한번 하지 않으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심지어 제가 교무실에서 선생님께 수학을 배우러 가는 것을 싫어하는 선생님도 있었습니다. 이런 일 때문에 학교 선생님은 공부 잘하는 친구들만 좋아한다고 생각하며 불신했었습니다. 사실 선생님께서 아무런 경쟁력 없는 저를 이끌어주신 점에서 의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한결같은 모습에 이내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래도 나를 진심으로 생각해주시는 분이 계시는구나.'라는 생각에 든든했습니다. 그리고 밑바닥 실력이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자는 건설적인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얼마간 배우다가 제가 중도포기를 하고 그만 배우겠다고 했을 때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어떻게든 제 시간을 배려하고 위해 주신 선생님을 외면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컸습니다. 그래서 수능이 끝나고, 혹은 졸업하고도 제대로 인사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선생님께서 주신 가르침은, 수학의 기초를 배우는 것 이상이었습니다. 학교라는 보호막을 뚫고 무한 경쟁으로 나아가는 인생의 첫 관문에서 선생님께서 저를 어떻게든 좋은 쪽으로 이끌어주시려고 애쓰셨다는 것을 졸업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게 됐습니다.


선생님,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그동안 정말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선생님과 조금만 열심히 공부했어도 대학 문턱에 접근하기 쉬웠을 텐데, 라는 후회를 많이 했었습니다. 현실은 정말 냉혹했습니다. 제주도 빼고 전국 단위로 대학 원서를 썼습니다. 결국 입학식 3일 전에 전문대에 추가 합격했습니다.


 대학 시절, 저는 '리' 단위의 농촌에 위치하는 학교에서 풀벌레와 함께 학교생활을 했습니다.

 '친구들은 도시에서 즐거운 대학생활을 만끽하고 있었는데, 나는 이게 뭐야.'

 남들에 비해서 한없이 초라해 보여 좌절스러웠지만 고등학교 때 제대로 하지 못한 공부를 만회해야겠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이전처럼 절대로 스스로 포기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마음을 잡았습니다. 성공해서 찾아뵙고 싶었고, 밤새도록 공부해서 장학금도 여러 번 타곤 했습니다.

 대학교 3학년 때는 저와 방을 같이 쓰던 룸메이트가  고등학교 후배여서 선생님의 소식을 어렴풋이 접할 수 있었습니다. 직접 찾아뵙지는 못해도 그렇게나마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2015년 2월에는 간호학사로 졸업하고 그 해 11월에 광역시에 있는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잠깐 근무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4월부터 고향에 내려와 현재까지 응급중환자실 간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몇 달 전부터는 에세이 작가를 목표로 제 개인 페이지에서 입시 실패 경험에서 깨달은 교훈이나 제 분야(간호학)에 대한 글을 남기고 있습니다. 일부러 익명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저를 작가님이라고 불어주시는 분이 계셔 쑥스럽기도 합니다. 취미로 중국어를 배우고 있고, 글감을 얻기 위해서 집 앞 도서관에서 책도 자주 빌려 읽곤 합니다. 요즘에는 이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지난 몇 년간 쉼 없이 달려가다 보니 저도 어느덧 선생님과 같은 '스승 사'라는 한자를 쓰는 직업인이 됐습니다. 아직 배울 것이 많이 남았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저에게 지지를 아끼지 않았던 선생님 덕이 큽니다. 저도 환자들에게 기억에 남는 간호사가 될 수 있을까요?

 하루에도 수십, 혹은 수백 명의 사람을 대하는 직업인지라 수많은 학생을 대했던 선생님의 고충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저를 그냥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는데도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점에서 더욱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패트리샤 폴라코의 <고맙습니다 선생님>이라는 동화책이 있습니다. 작가의 실제 이야기를 쓴 책인데 난독증 소녀가 폴커 선생님을 통해 난독증을 극복했다는 내용입니다. 실제로 폴커 선생님은 사비를 털어 과외를 시키는 열과 성을 다했고 그녀는 유명한 동화작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폴커 선생님은 난독증이라는 이유로 다른 학생과 트리샤를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걸 보고 선생님은 폴커 선생님과 참 많이 닮은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부의 잘함과 못함으로 저를 판단하지 않으셨고 바르게 이끌어 주시려고 바쁜 환경에서도 열과 성을 다하셨으니까요.


 선생님은 저의 폴커 선생님이십니다. 많이 부족한 저를 진심으로 위해 주신 점 항상 잊지 않겠습니다. 저 역시 선생님처럼 어떠한 이유에서든 환자를 차별하지 않겠습니다. 환자에게 영감을 주는 간호사가 되겠습니다. 선생님은 제 마음속의 영원한 스승님이십니다.


반드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7년 04월 05일

비 오는 식목일에

**올림



 스승의 날 편지 공모전에 내려고 했었는데, 용기가 부족했다. 성공한 학생들도 많을 텐데 나 같은 애가 무슨, 이라는 생각이 컸다. 이렇게 평범한 내용으로 공모전에 출품한다는 것도 부담스러웠고 이런 식으로 우물쭈물하다 보니 기한 내에 올리지 못했다. 내년 스승의 날에는 더 나아진 모습으로 내용을 수정/보완하여 반드시 출품해야겠다.


 내용이 사라질까 봐 부득이하게 이곳에 글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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